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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대안은 없다’라고만 이야기할 생각인가요?

기사승인 2020.01.17  12: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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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시기상조]

2019년 8월 5일, 고용노동부가 2020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8590원으로 고시했다. 업종과 상관없이 모든 사업장에 2020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이미지 출처 = SBS뉴스에서 올린 동영상 갈무리)

최저임금 8590원의 해를 맞으며, ‘대안은 없다’ 라는 말에 작별을 고하며

8590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하는 질문으로 2020년을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바로 올해의 시간당 최저임금입니다. 무슨 일을 누구와 언제 어떻게 하건 ‘노동’을 하는 이상 누구나 한 시간에 적어도 8590원은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1988년 최저임금제가 시행된 이래 비록 액수는 매년 달랐지만 법으로 강제되어 온 사항입니다.

‘타이밍’, ‘비정규직’, ‘대안은 없다’의 참아 주기 힘든 유사성

최저임금제가 시작되기 전, 한국의 노동실태를 조사한 자료들을 보면 헛웃음만 피식피식 나오곤 합니다. 근로기준법은 전태일 이후에도 유명무실했으며, 박봉을 넘어 착취에 가까운 노동을 강제당했던 사람도 무척 많았습니다. 각성제인 ‘타이밍’을 먹어 가면서 일하거나, 졸다가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이 찔리는 사고를 당한 방직 노동자들의 사례를 쉽게 접할 수도 있었고요. 구사대를 동원한 ‘똥물 투척 사건’으로 유명한, 동일방직의 해고노동자 최연봉 씨의 증언에 따르면, 1972년 당시 노동자들은 기계를 청소하기 위해 정해진 출근시간 1시간 전에 출근을 해야 했고, 식사도 조장의 눈치를 보며 5분 만에 해결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사시간 30분 확보, 출퇴근시간 준수 등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싸움을 시작했고, 그 결과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노동자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건 80년대가 지나고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도 그렇게 크게 달라진 것은 생각보다 별로 없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양대 ‘비정규직 악법’으로 불리는 근로자파견법(1998)과 비정규직보호법(2007)이 이른바 ‘민주정부’ 때 시행되었고, 작년 2월에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탄력근로제는 어느 날은 덜 일하고 그 시간을 다른 날에 더 일해 노동시간을 주 52시간(법정 40시간+연장 12시간)에 맞추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전체 법정 근로시간만 넘기지 않으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 탄력근로제 확대 안은 ‘노동법 개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자, 최저임금 이야기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작년 여름에 열린 ‘2020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사용자 측은 매년 해 왔던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경제위기가 닥칠 것이다.”라는 주장을 반복했고, 문재인 정부도 자신들의 공약이었던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을 사실상 폐기했습니다. 공권력을 동원해 탄광노조를 박살내 '빌리 엘리어트'라는 명작이 나올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자, 영국 경제에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마가렛 대처의 “대안은 없다”, 이른바 ‘TINA’ 선언 이후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온 “경제가 위기인데 어떻게 임금을 인상하느냐?”는 압박에 굴복한 셈입니다. 죽은 대처가 살아 있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또’ 흔든 격이랄까요.

“대안은 없다.”라는 말이 대처만의 명대사는 아닙니다. 사실 하도 우려먹어서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는, ‘임금 인상하고 경제 민주화 하기 싫다.”를 다르게 말한 것뿐이거든요. 예를 들어 27년 전 미테랑 대통령 시기 프랑스의 국무총리였던 피에르 베레고부아가 “통화의 경쟁적 평가절하, 즉 임금 동결 외에 대안은 없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임자였던 에두아르 발라뒤르는 한 술 더 떠서 “청년층에게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베레고부아 총리가 2차대전 당시 사회주의 레지스탕스였으나 이후 민영화를 이끄는 시장주의자로 돌아선 사실,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가 사회당과 공화국연합 사이의 코아비타시옹, 즉 ‘동거 정부’였다는 점, 그리고 우클릭 끝에 결국 미테랑 이후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집권했다는 점 등에서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을 묘하게 곱씹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국 경제에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마가렛 대처의 “대안은 없다”, 이른바 ‘TINA’ 선언 이후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온 “경제가 위기인데 어떻게 임금을 인상하느냐?”는 압박에 굴복한 셈이다. (이미지 출처 = Flickr)

뭐야, 최저임금 1만 원 돌려줘요

그리고 2008년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세계적 경제위기가 물러갔다는 관측이 나오던 2011년 2월 4일,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노동자의 임금 상승률이 10년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10년 월 기본 급여가 평균 1.8퍼센트 증가했지만 물가 상승률을 감안할 경우 실질 소득 증가율은 0.3퍼센트에 불과하다.”라는 보도를 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마따나,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지만 최저임금은 작년의 8350원에서 약 2.9퍼센트 오른 수치입니다. 딱 그렇게 오르던 순간,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열겠다”던 선언은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지요.

보수 언론에서는 “2018년(7530원) 대비 2019년 최저임금은 10.9퍼센트가 인상되었고, 2020년에는 2.9퍼센트가 인상되었다. 이러한 인상률은 OECD 최고 수준이다.”라고 핏대를 세우던 기억이 납니다만, 사실 이는 너무나 전형적인 ‘통계의 함정’입니다. 애초에 낮은 임금을 받다가, 액수가 오르면, 금액 자체는 크지 않아도 비율은 급격하게 오르기 마련이니까요. 10.9퍼센트라는 큰 인상 폭도 따져 보면 인상 액수는 1000원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경사노위가 추진하는 탄력근로제 확대안이 국회에서 가결된다면, 임금은 인상이 아닌 사실상 ‘삭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주에 연장근로 12시간이 증발하는 게 3개월로도 억울한데 거기서 3개월이 더 늘어난다고 생각한다면 말이지요.

통계의 함정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18년 기준 한국의 평균 임금은 3만 9472달러로 OECD 평균인 4만 1553달러를 꽤 크게 밑돕니다. 그런데 이것은 ‘임금을 받는 모두’의 임금 평균입니다. 최저시급을 받는 노동자부터 삼성전자 부회장이던 2017년에 월급으로 1억 5900만 원을 받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까지 포함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함정이 있습니다. 거기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명목상 임금보다 실질 임금이 더 낮은 문제, 남성 대비 평균 68.8퍼센트(2019)만을 받는 여성의 만성적 저임금 문제 등까지 합치면 임금의 실질적 평균은 수치와 더 큰 차이가 날 것입니다.

민주주의 - ‘몫 없는 이들의 몫’을 위하여

먹고 사는 문제는 무척 중요합니다. ‘경제적 시민권’, 좀 더 원초적으로는 ‘생존권’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요. 그리고 동시에 정치적 영역이기도 합니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저서 "불화"에서 “부자들과 빈민들 사이의 투쟁은 정치가 계산해야만 하는 사회 현실이 아니다. 이 투쟁은 정치의 설립과 하나를 이룰 뿐이다. 몫 없는 이들의 몫, 빈민들의 부분이나 당파가 존재할 때 정치가 존재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또, 정치의 설립은 계급투쟁의 설립과 동일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계급투쟁 하니 어마무시해 보일지는 몰라도, 늘상 나오던 “대안은 없다”는 말을 반박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안은 없다고 못 박기 전에 생각은 해 봤냐고, 설마 민주주의를 또 ‘시기상조’라는 이름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가고 싶은 것 아니냐고요.

장성렬(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정치학과 사회학을 배웠고, 페미니즘과 아나키즘을 공부하고 있다. 권위와 폭력을 늘 경계하고 민주주의와 민주화에 대해 글 쓰며, 비슷한 주제로 사진을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활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청년담론> 평등문화위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장성렬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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