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안태환]

현재 기후위기로 인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본주의 문명이 심각한 국면에 처해 있다. 이로 인해 문명의 전환이 필요함을 우리 사회도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아직도 녹색당 이외에 주류 정당들의 담론에서는 잘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이런 한계를 보이는 데에 지식인들의 책임이 크다. 

최근 <프레시안>에 실린 <녹색평론> 대표인 김종철 님의 지적을 옮겨 본다. 

“고등교육을 받고 이 나라의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이른바 유식자들 중 대부분은 주로 근대 서양의 문화와 사상, 철학에서 자신들의 지적 정신적 자양분을 섭취해 온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근대문명=산업문명으로부터 생태문명으로 전환해야 할 시대적 요구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할지 모르지만 그 전환이 기본적으로 순환적인 농사의 재생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흔히 망설이거나 심지어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2020.1.25일자) 하지만 이 지적은 왜 지식인들이 그런 태도를 갖는지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근대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핵심적 가치(이데올로기로 표현되는)의 형성에 근대철학(데카르트, 칸트, 헤겔, 마르크스....)의 인식론이 기여했다. ‘이성’을 중심으로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확신했다. 서구 기독교 문화와 연동되어 일직선적 진보를 역사의 이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철학자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일찍이 근대성이 가지는 ‘해방성’을 회의하며 서구 문명(문화)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결정적 계기는 유럽문화/비유럽문화(원주민을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대중문화)의 차이에 대한 인식론적 각성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유럽문화/비유럽 문화 사이에 위계서열이 존재함을 비판하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이 이렇게 일찍부터 서구문명(문화)의 보편성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것은 가장 유럽문화를 자기 것(?)으로 인식하였던 대표적인 비유럽문화권이 라틴아메리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럽의 한가운데서 살면서 무엇인가 자신들의 문화와 유럽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문화는 메스티소(혼혈) 문화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은 자본주의 문명의 전성기였고 따라서 그 안에서 비주류 세력에 의한 강력한 회의의 비판이론(예를 들어, 68혁명)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런 유럽 내부의 비주류의 비판과 저항의 기세는 시간이 갈수록 퇴조해 갔다. 라틴아메리카 철학자들의 비판이론의 선두에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멕시코로 망명한 엔리케 두셀이 있다. 국내에 두셀의 번역서가 있다.("1492년, 타자의 은폐", 박병규 역, 그린비) 그의 철학을 ‘해방철학’이라 부른다. 무엇으로부터 해방하자는 것인가? 노동자 착취와 억압의 사유재산제로부터 해방하자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다. 근대성 자체를 비판하고 근대성이 가지는 폭력성으로부터 해방하자는 것이다. 

두셀에 의하면 “근대성의 대안은.... 근대성에 의해 부정당하고 희생당한 무수한 희생자들을 드러내어 근대성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희생자들은 주변부의 식민세계, 희생당한 원주민, 노예가 된 흑인, 억압받는 여성, 착취당하는 아동, 소외된 대중문화를 포함한다.” 두셀의 해방철학은 페미니즘 운동을 포괄한다. 그리고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현대 역사가 근대성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다.

엔리케 두셀. (이미지 출처 = Flickr)

두셀은 1965년에 “보편사 안에서의 이베로아메리카”라는 글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대한 역사주의적 환원론을 반대하고 역사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혁명론도 비판하고 민족주의를 신비화하는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과거의 영광을 신비화하는 보수주의도 반대하고 무조건적으로 원주민 문화를 찬양하는 원주민주의도 반대했다.

두셀은 세계사의 틀 안에서(지정학적 세계체제의 프레임 안에서) 총체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정체성을 재구성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핵심은 서구 문화에 경도된 엘리트가 아닌 라틴아메리카 ‘대중문화’를 인문학적으로 중시하는 것이다. 이런 두셀의 언급을 평면적으로 이해하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60년대 후반에 독일에서 유학을 하면서 폐쇄적 민족주의가 아닌 열려 있는 비판적 시각에서 라틴아메리카의 하위 ‘대중’을 중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1492년부터(유럽에 의한 라틴아메리카 정복 이후), 유럽인들이 서구 근대 문화를 최상위에 놓고 비유럽의 지식과 문화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역사의 ‘외부로’ 추방하여 원주민을 육체적으로 살육했을 뿐 아니라 원주민 문화를 무가치한 것으로 또는 위계서열의 맨 아래쪽에 위치시켜 ‘하위 주체화‘ 또는 ’인식론적 살해“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야만‘으로 인식했던 소외된 대중문화를 유럽문화와 대등한 위치로 놓고 연구하려는 것이니 기존의 연구태도와 아주 다르다. 그러므로 그의 철학을 해방철학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논문이 '제국의 문화, 자유주의 계몽문화, 그리고 대중문화의 해방'(1973)이다. 이 논문이 발표된 시기는 역설적이다. 아르헨티나가 아주 폭력적인 군부 독재로 들어가기 직전이었으니까.

근대성의 유럽 부르주아 백인 문화는 한마디로 “부자가 되려는 것’이다. 이 문화가 전 세계적인 지배문화가 된 것이 바로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문화를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 가우초, 메스티소가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두셀의 해방철학은 결코 관념적이거나 공허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인들이 바로 메스티소이기 때문이다. 이 메스티소 문화는 소수 백인 후손의 특권 과두 계급(올리가르키아)과 이들에 봉사하는 엘리트 관료의 자유주의 문화와 달리 라틴아메리카 도시 변두리와 시골의 문화로서 유럽의 외세에 자주 독립적일 뿐 아니라 가난한 ‘땅’을 지키는 공동체적 소농의 문화다. 라틴아메리카는 역설적으로 경제(산업)발전에 성공하지 못하여 많은 농민, 노동자, 소외된 자가 생겨났다. 이들의 문화는 한 발은 어쩔 수 없이 근대성에 포섭되면서도 다른 한 발은 유토피아적 외부에 위치하여 항상 근대 자본주의 문화를 넘어서려는 에너지와 동력을 가지고 있다.(이런 기질 또는 성향을 바로크 에토스라 부른다)

그리하여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계급투쟁 이론보다 이들 소외된 그러나 동시에 다수의 가난한 대중을 중시하는 포퓰리즘 이론이 강력하다. 가난한 대중의 문화가 ‘미래’의 문화이고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선도하는 문화다. 그리고 ‘부자 되기 문화’와 다르다는 점에서 두셀의 해방철학은 해방신학과 만난다. 이들 대중은 가난하기 때문에 자유롭다.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미래를 바라본다. 이들은 아무 것도 두렵지 않고 잃을 것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있는 사람들이다.

안태환(토마스)
한국외대, 대학원 스페인어과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 사회학과, 콜롬비아 하베리아나대 중남미 문학박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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