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놀라울 수 있는 능력을 구하시오”

교종, 2월2일 ‘세계 봉헌생활의 날’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2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제24회 ‘세계 봉헌생활의 날’ 삼종기도 가르침을 통해 세계 봉헌생활의 날은 마리아와 요셉, 시메온과 한나의 모범을 따라 복음의 권고를 고백하며 주님을 충실하게 따르는 모든 사람의 교회에서 ‘큰 보물’을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 복음(루카 2,22-40)은 예수님 탄생 40일 후 율법에 따른 하느님께 대한 봉헌을 알려 줍니다. 이는 전통적 율법에 따른 예식이란 의미 외 사람들이 마리아와 요셉, 시므온과 한나와 함께 그들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는 모델을 보여 줍니다. 복음사가는 복음과 운동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를 설명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루살렘으로 여행했습니다. 시므온은 성전에 와서 성령의 감동을 받았으며 한나는 종일 성전에서 하느님을 섬깁니다. 이런 식으로 주인공 4명은 기독교생활에 동화와 여행의 의지가 필요하며 항상 성령이 인도자가 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여행을 중단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세례받은 모든 사람은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33절) 아기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구원을 자신의 눈으로 보는 시므온의 노골적인 반응에 대한 놀라움입니다.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38절) 이러한 모습은 그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사로잡히고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에 놀라움에 싸인 것입니다. 놀라울 수 있는 능력은 종교적 경험을 장려하고 주님과 결실을 맺게 됩니다. 다른 한편 놀랄 수 없다는 것은 무관심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과 일상생활 사이에 간격이 멀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신비 앞에서 놀라움을 드러낼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인식하는 능력은 종교생활의 핵심”

교종, 2월1일 주님 봉헌 축일 전야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세계 봉헌생활의 날”로 기념하는 2월2일 ‘주님 봉헌 축일’ 전야미사에서 종교생활은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교종은 시메온이 성전에서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루카 2,30)라는 복음구절에 초점을 맞춰 강론했다. 교종은 세계 봉헌생활의 날을 기념하여 축성된 모든 남녀 수도자는 시메온처럼 ‘세상의 어떠한 선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을 발견한 단순한 남성과 여성이라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볼 수 있는 예수님을 인식하는 능력은 종교생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강론 요지.

‘구원을 보는 방법을 아는 것’이란 삶의 위대한 순간뿐 아니라 우리의 허약함과 약점에서도 우리 삶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작용하시는지를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종교생활에서 커다란 유혹입니다. 이는 열정, 기쁨, 믿음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 시메온처럼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은혜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자발적인 가난, 순결, 순종의 선물에 의미를 줍니다. 시메온처럼 하느님을 공경하면서 작고 겸손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일을 볼 수 있게 된다면 ‘봉사하기 위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찾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종교인들은 그 시선을 우리 세상에 가져오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시메온의 눈은 구원을 기대했기 때문에 마침내 구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오래 기다렸고 희망으로 가득 찬 눈을 가졌습니다. 성전의 시므온과 한나처럼 종교생활에는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희망의 근원이신 주님으로부터 결코 자신을 소외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형제자매 여러분이 성스러운 삶의 선물에 대해 감사드리고 은혜를 보는 법, 이웃을 찾는 법을 아는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희망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눈도 마침내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죄의식을 잃어버리는 타성을 경계해야”

교종, 1월31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31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우리시대 죄악 중 하나는 죄의식을 잃어버린 상태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종은 다윗과 같은 위대한 임금도 이런 유혹에 빠졌다며 하느님의 선택을 잊어버리고 편안한 삶에 빠져들어 죄의식을 잃어버린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강론 내용.

오늘 첫 번째 독서(사무엘하 11,1-4ㄱㄷ.5-10ㄱ.13-17)는 하느님의 선택을 잊어버리고 편안한 삶에 빠져든 이스라엘 다윗 왕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이는 다윗이 가장 심각한 죄를 짓고도 죄의식 없이 평온하고 조용한 삶을 누린 이야기입니다. 이는 죄와 악의 감각을 빼앗아 가는 세상적 현상을 말해 줍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해 인구조사를 실시했을 뿐 아니라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임신시키고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간음한 후 이를 감추려는 계획이 실패하자 살인까지 한 것입니다. 다윗은 죄의식 없이 이를 실행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그렇게 많이 거룩하고 좋은 일을 했던 위대한 다윗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이 일들은 밤 사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분노나 모욕과 같이 순간적으로 저지르는 죄도 있지만 세속의 정신으로 천천히 미끄러지는 죄도 있습니다. 이런 죄에 빠지면 암살도 마치 평범한 일상처럼 저지르게 됩니다. “천천히”는 죄인들이 자기 자신의 죄를 위로하고 설명하기 위해 이용하는 부사입니다. 많은 사람은 순간적으로 화를 내거나 모욕하는 등의 죄를 짓고 곧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거나 절반만 지불하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이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상태’로 빠져들게 합니다. 매주 일요일 미사에 참례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훌륭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비오 12세 전임 교종님은 우리시대 악 중의 하나는 죄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린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저지를 수 있고 결국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평생을 보내게 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의 일만 아닙니다. 이같이 ‘천천히’ 진행되는 죄악을 막기 위해서는 종종 ‘삶의 틈’이 필요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보내신 예언자 나단과 같은 사람이 그러한 잘못을 지적할 것을 요구합니다. 최근 많은 젊은이의 교육과 사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의 영적 분위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나를 도와주는 진실한 친구와 고백자, 남편, 아내 또는 자녀들의 비난 등 진실을 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까?” 다윗과 같은 거룩한 왕의 타락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하며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영적 분위기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잘못을 합법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분위기에 빠질 때 우리를 조금 때리는 이웃, 아들, 어머니 또는 아버지와 같은 예언자를 보내주시기 기도합니다.

 

“겸손의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말라”

교종, 1월30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30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이날 복음(마르 4,21-25)을 설명하면서 충성스럽고 사랑으로 충만한 진정한 그리스도인다운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라고 권고하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와 같은 척도로 자신도 판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마르 4,21)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삶의 어느 시점 특히 삶의 끝에서 각자 자신의 삶을 설명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 순간이 어떤 모습일지 성서가 알려 주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25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와 탈렌트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해 주고 있지만 오늘 복음 구절은 우리가 살아야 할 스타일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까? 나는 어떤 척도로 나 자신을 판단합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관대함을 바탕으로 하는 판단입니까? 아니면 낮은 수준의 측정입니까? 우리는 나쁜 일이나 좋은 일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살펴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모델이십니다. 우리 각자는 나름대로 자신과 사물,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용하실 판단의 기준이 척도가 될 것입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사람은 같은 방식으로 심판받을 것입니다. 동정심이 없고 출세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머리를 짓밟는 사람들은 동정 없이 판단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모델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판단과 측정방식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방식인지를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 할 것입니다.

겸손할 능력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스스로 자원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셨지만 이에 구애되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제시하신 예수님의 모델입니다.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동정심과 자비심을 가지고 각자의 삶을 살도록, 그리고 그리스도의 방식대로 살도록 은혜를 간구합시다. 또 예수님의 겸손하심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길이기 때문에 겸손의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주님께 간청합시다.

 

“사회의 버리는 문화에 맞서 싸워야”

교종, 호스피스 종사자들에게 인간존엄성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30일 바티칸에서 개최된 신앙교리성 총회에 참석한 호스피스 봉사자들을 접견하고 연설했다. 이 자리에서 교종은 우리는 인간의 삶의 무형의 가치와 말기 환자들과 고통받는 사람을 돌보는 책임과 돌봄의 문법을 다시 써야 할 필요성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설 내용.

현대 사회는 효율성과 유용성 측면에서 삶을 평가함으로써 인간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해가 점차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기 환자를 돌보는 문제에 대한 성찰이 중요합니다. 동정심을 간직하는 ‘마음의 시선’에 대한 개심이 필요합니다. 이런 개심을 통해 ‘존엄한 치료’가 실천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가운데 가장 미소한 존재의 존엄성과 위엄을 가진 생명에 대한 존중의 길로 나가기 위해 ‘중요한 범죄’에 관한 규범개정 연구를 계속해야 합니다. 현대문화에서는 삶은 더 이상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가치 없는 것으로 ‘폐기’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그리스도인 형제애 의무를 상실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폐기 문화’에 대한 항체를 개발하려면 사회가 보다 '인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인간생명의 무형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공존을 위한 연대가 적극적으로 실천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는 폐쇄되고 엄격한 체계가 아닙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하느님 말씀의 기초에 충실한 채로 계속 세대를 거듭하며 부활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동적인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은 질병이 우리 삶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에도 반영됩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손으로 데려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인간관계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정서적 고통과 영적 고뇌를 완화시키는 향유는 불치의 병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삶은 영원성 때문에 모든 조건과 위엄과 약점의 조건에서도 모든 가치와 존엄성 유지를 최대로 고려할 가치가 있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주제는 삶의 결정적인 말기단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는 책임과 돌보는 '문법'을 다시 작성해야 하는 교회의 의무를 강조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는 우리에게 마음의 시선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곧 동정심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동정심이 없는 사람은 보기만 할 뿐 참여하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그러나 동정심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지나치지 않고 마음이 움직여 가던 길을 멈추고 주의를 기울여 돌봄에 참여합니다.

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는 “삶의 여정에서 누군가의 어두운 시간에 한 번의 횃불이라도 밝힌 사람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친밀감과 나눔을 통해 인간답게 죽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에서 호스피스가 완화치료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말기에는 자격을 갖춘 의학적, 심리적, 영적 지원이 동반돼야 사랑하는 사람이 위로를 받고 지상생활의 마지막 단계를 품위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호스피스 센터들이 헌신적인 존엄의 치료가 실천되어 삶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키우는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전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님 자의교서 ‘성사의 성성 보호’(Sacramentorum sanctitatis tutela)에 묘사된 ‘가장 중대한 범죄들’에 대한 규범을 연구하는 교회의 지속적인 헌신에 감사합니다. 

현재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상황과 문제에 비추어 절차를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규범을 업데이트하는 맥락으로 진행되는 연구입니다. 저는 교회가 직접 관여하는 지역에 유효하게 기여하고 성찬례의 신성함과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데 있어 보다 엄격하고 투명하게 이 임무를 수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끝으로 저는 신앙교리성 성서위원회가 발행한 성서 인류학 기본 주제들에 관한 문서에 수고하신 분들께도 감사와 축하를 드립니다. 이 문서는 천지창조로 시작해 새 인간 그리스도, ‘인류역사 전체의 관건과 중심과 목적’이신 그리스도로 완성되는 거룩한 사업에 대한 국제적 전망을 한층 더 심화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귀중한 자산“

교종, 노인사목과 간호회의 참석자들에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31일 바티칸에서 열린 노인사목과 간호에 관한 회의 참석자들을 접견했다. 이 자리에서 교종은 연설을 통해 가정과 지역사회에 있는 많은 노인은 출생지와 배경, 경제적, 사회적 조건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삶의 여정에서 형성된 귀중한 보물이라고 강조했다. 교종은 인생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노년에 이른 것은 모든 사람에게 특권으로 많은 노인이 교회에서 항상 얼굴에 미소를 짓고 손으로는 복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연설 내용.

최근 세계는 젊은이들의 수가 줄고 노인인구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인구 통계가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따른 혼란과 노인에 대한 무관심과 거부 등 사회적 태도를 포함한 노인들이 직면한 문제는 노인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교회와 사회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회의는 많은 경험과 역사의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노인사목이 독립된 주제로 남아 있지 말고 사목적 심화와 분별의 여정의 출발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가족과 지역사회의 많은 노인들의 존재에 대응하기 위해 사목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노년은 축복입니다. 성서에서도 ‘장수는 하느님의 축복’이며, 노인들도 하느님 구원계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노인의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세대가 성령의 선물을 상호 교환하는 관계에서 하느님 사랑의 계획을 나누도록 부름받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노인과 젊은이들 모두 ‘교회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신앙으로 교육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노인들은 교회 보살핌의 대상일 뿐 아니라 복음전파 사역의 주체들이며, 하느님의 충실한 사랑의 특권을 가진 증인이어야 합니다. 노인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도권을 행사하십시오. 교구와 주교들이 여러분과 함께 목회활동을 장려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계속하십시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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