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결혼식. (이미지 출처 = Pexels)

철수 씨는 가톨릭 신자인 아녜스 씨와 약혼을 했고 혼인성사 날짜와 장소를 정해 뒀습니다. 철수 씨는 혼인성사를 위해 예비자 교리를 듣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아녜스 씨와 혼인성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혼인성사를 받기 전에 혼인신고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자신들이 살게 될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해야만 했던 겁니다. 교리시간에 철수 씨와 아녜스 씨가 이미 혼인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본당 사제는 철수 씨의 세례를 혼인성사 이후로 미뤄야겠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혼인성사 전에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건가? 혼인신고를 먼저 하는 것이 세례 받는 것에 영향을 미치나? 하는 혼란스런 질문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교회법 전공자와 상담을 통해서 답을 구해 보았습니다. 

교회법의 관점에서 혼인의 성립은 혼배성사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따라서 민법상의 혼인신고를 했다고 해도 아직 결혼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집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살 곳을 분양 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한 것이 문제될 리 없습니다. 그런데 민법상 혼인신고를 하는 것 자체는 혼인으로 간주하지 않지만, 혼인신고를 하고 동거를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교회에서는 동거를 사실상 혼인으로 봅니다. 즉, 혼인성사 전에 혼인 생활을 하는 것이라 혼인장애가 됩니다. 

혼인장애가 일어나면 실제로 혼인성사를 하기 전까지는 성사생활을 할 수 없기에 아녜스 씨는 영성체를 할 수 없고 철수 씨의 세례도 미뤄져야 한다는 맥락에서 앞서 설명한 일들이 벌어진 듯합니다. 여기서 확인하고 싶은 것은 철수 씨와 아녜스 씨가 혼인신고 후 실제로 동거를 하고 있는 상황인지 여부입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가능하면 혼인장애를 피하는 게 바람직해 보입니다. 집을 마련하고 우선 배우자 한 명이 먼저 그 집에 들어가 살고, 나머지 배우자는 부모님 댁에 있다가 혼배성사 이후에 함께 사는 경우도 봤습니다. 아무튼 혼인신고만 한 경우라면 성사생활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됩니다. 아녜스는 영성체할 수 있고, 철수는 세례성사 받을 수 있습니다. 본당사제의 해석과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함께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확실히 혼인을 앞두고 있기에 동거 여부를 그다지 중요한 조건으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혼인예식의 의미가 가벼이 보일 수도 있음을 환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혼인성사를 준비하는 모든 이가 이 기간을 정성껏 준비하고, 평생의 반려자가 될 이의 마음과 몸을 더욱 소중히 대해 주는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센터장, 인성교육원장,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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