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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 위의 꿈

기사승인 2020.02.06  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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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나이팅게일이 되고 싶어 직장 다니며 돈 벌어 간호대 가고, 설레던 첫발이 영남대병원이었던 친구. 반말에 태움이 일상이던 병원에서 노조 활동으로 구속, 해고된 친구. 함께 갔던 캄보디아에서 에이즈 감염에 질병으로 아픈 아이들을 보며 1년간 아이들을 돌봤던 친구. 그때 참 근사했다. 복직해서 꼭 꿈을 이루길.”

김진숙 지도위원이 트위터에 남긴 글입니다. 저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위터를 읽고 그 친구를 다시 만나기 위해 농성 해제를 앞둔 고공을 올랐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고공에 올라서 만났을 때는 얼굴이 부어 있었지만, 이번에 만난 친구의 얼굴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70미터가 넘는 고공 천막 안은 바람 소리가 요란했고, 천막이 들썩들썩했습니다. 비바람이 세찼던 날은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바람 소리가 무서웠어요. 잠을 잘 수도 없었어요. 마치 망망대해에 서 있는 것 같았어요.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바람 소리가 그렇게 무섭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마치 귀신이 있는 것 같았어요.”

고공 농성 220여 일을 맞고 있는 박문진 지도위원을 만났습니다. 고공 농성 해제가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박문진 지도위원은 1988년에 간호사로 입사했습니다. 1990년,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해고와 투옥 등을 거쳐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2021년 2월이면 정년을 맞습니다. 비록 복직 후 명예퇴직이라는 합의서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2021년 2월의 어느 날, 단 하루 만이라도 간호사복을 입고 그리던 현장에서 아름다운 정년을 맞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장영식

조금은 주저하다가 용기를 내어서 농성을 함께 했던 송영숙 씨가 농성을 해제하고 내려간 첫날 밤을 어떻게 보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울었어요. 밤새 울었지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고, 노조 때문에 너무 힘들게 사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어요. 13년 동안 같이 다니면서 박근혜 그림자 투쟁도 떠올랐어요. 같이 승리해서 내려가지 못하고, 몸이 아파 내려가는 모습이 너무 아팠어요. 고공 천막 안의 작은 텐트는 서로 나란히 누워 자기가 비좁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거꾸로 잤어요. 아침에 눈을 뜰 때는 송이의 다리를 붙잡고 ‘송아, 굿모닝~’ 하며 일어났는데, 다리가 없는 거에요. 송이의 부재를 느낄 때마다 허전하고 쓸쓸했지만, 2주 정도 지나고 나니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잔인한 질문이었지만, “내려가고 싶으시냐?”고 물었습니다. 친구는 주저 없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려가고 싶다"고, “내려가면 건강을 추스르고, 산에 많이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고공 농성 220여 일이 흐르는 동안 친구의 건강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해 있었습니다.

“고공 위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고도 물었습니다. “직장을 다닌 뒤, 해고자 복직과 노조정상화를 위해 싸웠어요. 그러나 지금은 공허하고 허전해요. 무엇인가 큰 것을 잃어버린 막막함 같은 것이 있어요. 제2의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해야 되는데, 막막해요. 꿈은 있는데, 굉장히 막막해요. 이 말을 김진숙 지도위원에게도 말했어요. 친구도 그렇다는 거에요.” 갑자기 먹먹함이 밀려왔습니다.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일반 노동자들과는 달리 해고 노동자들은 퇴직 후의 삶에 대한 준비가 막연하고 막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박문진 지도위원은 농성을 해제하고 내려가게 되면, 30년간 유예된 아프리카에서의 의료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귀촌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 등 오랜 친구들과 함께 가까이서 살면서 건강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이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장영식

노동해방의 꿈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김주익 열사가 85호 크레인 위에서 자진한 뒤에 보일러를 틀지 않고 냉방에서 지냈습니다. 따뜻한 온기가 필요한 여성의 몸을 돌보지 않은 것이지요. 박문진 지도위원에게 지난 꿈이 아니라 앞으로의 꿈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와 간호사회의 활동을 보면서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싶었어요. 내전이 치열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 놓으며 현장을 누비는 의료인들의 생명 사랑과 인간 존중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지요. 저도 언젠가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가졌어요. 30년간 유예된 꿈이에요.” 

나는 그이의 꿈을 듣고, 작년 7-8월에 방문했던 탄자니아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에이즈와 말라리아 그리고 결핵에 의해 죽어 가는 아이들에 대해 말했지요. 손을 쓸 수조차 없는 절박한 상황들 앞에 하느님의 부재를 말했습니다. 박문진 지도위원은 “꼭 아프리카를 가 보고 싶다”고 말하며, 소개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30년간 유예된 아프리카의 꿈과 같은 이타적인 꿈 말고 다른 꿈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친구는 웃으면서 “귀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친한 친구 세 명과 가까이 살면서 가능하면 하루에 한 번은 같이 김치전도 먹고, 밥도 먹고 싶어요. 그리고 함께 여행도 하고 싶어요. 김진숙 지도위원이 그랬어요. 이제는 우리도 우리를 위해 돈을 쓰면서 살자고. 시골에 작은 텃밭이 있는 집에서 건강한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어쩌면 고공 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 같아 가방에서 다시 사진기를 꺼내 그이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손을 흔드는 그이의 모습 속에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고공 농성을 해제하고 내려오면 따뜻한 밥을 먹자던 약속이 꼭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장영식

박문진 간호사는 1988년에 영남대의료원 분만실에 입사했습니다. 1990년 노동조합 위원장 제의를 받고 고민했습니다. 당시 다니던 대구의 민중교회인 ‘이웃교회’ 목사님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지금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봉사”라며 수락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노동조합 위원장이 되었고,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95년의 50일 파업으로 자신을 포함한 해고자 10명이 생겼습니다. 그이는 해고자 복직 투쟁을 했습니다. 1998년 당시 권굉보 의료원장의 직권으로 해고자들은 모두 복직되었습니다. 외과의 권위자였던 권굉보 의료원장은 퇴임할 때 “자신이 재임 시에 해고자 전원을 원직 복직시킨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2006년부터 시작된 병원의 조직적 탄압으로 다시 해고자가 된 박문진 간호사의 정년은 2021년 2월입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이가 꿈꾸어 왔던 나이팅게일로서의 노동의 꿈을 실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박문진 간호사에 한해서는 ‘원직 복직 후 바로 명예퇴직을 한다’는 합의서가 도출되더라도 2021년 2월에 간호사의 옷을 입고 노동의 현장에서 정년을 맞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고공 농성 노동자를 맞는 노동계도 순간의 열정적 연대뿐만 아니라 일생을 노동해방에 투신했던 이들의 퇴직 후의 삶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막연하고도 망연자실한 계획 없는 여생이 아니라 따뜻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장영식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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