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페미언니와 성·사랑·몸 수업]

많은 시간과 노력 들여 정확히 공부해야

미국의 사회운동가 마거릿 생어(1879-1966)는 가난한 노동계급 여성들이 반복되는 임신으로 고통받는 현실을 보며 자랐다. 특히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의 어머니가 출산 11번과 몇 차례의 유산으로 건강을 잃고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녀는 여성들이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출산조절을 하도록 돕기 위해 초등학교 교사에서 방문 보건간호사로 진로를 바꿨다. 또 미국 전국 단위의 출산조절 운동조직을 결성해 피임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동료들과 연구소를 설립하여 효과적인 피임약 개발에 성공했다.

마거릿 생어.(1879-1966) (이미지 출처 = Flickr)

마거릿 생어가 여성들을 위한 피임교육에 헌신했던 시기는 1910-20년대였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자연조절 이외의 모든 인공피임을 금지하는 교리를 유지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생명의 복음'(1995) 제13항에서 피임이 “혼인의 순결에 대립되는 부정적인 가치들을 내포”하며 “부부 사랑의 정당한 표현인 성행위의 충만한 진실을 훼손”하는 ‘악’이라고 말했다. 또 “성의 문제에서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쾌락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인간생명을 해치는 낙태”와 결국 “같은 나무의 열매”라고 봤다. 나는 두 달 전 참여했던 한 ‘몸신학 피정’에서도 같은 내용의 강의를 들었다.

여성들이 생리를 시작하면서 임신이 가능한 몸을 갖게 되는 만큼, 동시에 피임에 대해서도 인생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제대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여성의 신체를 이해하고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성관계와 피임을 뗄 수 없는 기본 값의 과제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최대한 정확히 알아야 실제 어떤 피임법이 자기 몸에 맞는지 실천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여 나갈 수 있다.

일관된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여성의 섬세한 몸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

교회가 유일하게 허용하는 자연주기법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좋은 습관으로 권장될 수 있지만 피임법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생리주기는 규칙적이다가도 불규칙해지고, 스트레스, 체중 변화, 질환 등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 사회인이 날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매일 아침 체온을 잴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방법에 ‘바티칸 룰렛'이란 별명을 붙였으며 도박의 불확실성에 비유해 왔다. 출산조절 방식에 있어 신자들에게 일관된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는 교회의 사고방식은, 여성 개개인의 몸의 섬세한 변화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거나 남성에게 피임의 책임을 묻지도 못하게 만드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임신가능 기간을 피해서 성관계하는 전형적 방법을 따른 여성 중 24퍼센트는 1년 안에 임신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도 있다.1)

국내 가톨릭 신자들 역시 2014년 설문조사에서 교회가 제시하는 생명에 관한 가르침 중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항목으로 ‘인공피임 금지'(44.9퍼센트)를 꼽았다.2) 종교적 가치가 신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이유겠지만, 이에 덧붙여 과연 의로운 가르침이 맞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아의 생명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입장에서 낙태를 용인할 수 없는 것과 피임까지 죄로 보는 정책은 함께 갈 수 없다. 이는 교회가 자기모순을 있는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여성의 몸에 대한 위협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확실히 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한편, 가톨릭은 지속적으로 응급피임약을 조기 낙태약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약을 배포, 처방, 복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호르몬을 이용하는 경구피임약과 자궁 내 장치 등은 모두 같은 작용기전을 가지며 응급피임약만 특별히 다른 것이 아니다.3) 다만 응급피임약 한 알은 일반피임약의 10배 정도 많은 호르몬이 들어 있어 단기 부작용을 겪을 수 있으므로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고 정규피임법으로 권장되지 않는다. 게다가 뜻하지 않게 피임 실패를 겪은 여성들은 현재 가톨릭중앙의료원 소속 병원들에서 도움을 얻을 수 없고, 성폭력 피해 등의 위급상황도 예외가 아니다.4) 이같이 위험에 처한 여성들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에 맞는 것인지 묻고 싶다.

콘돔. (이미지 출처 = Pxhere)

제대로 안다고 문란하지 않아, 오히려 완벽한 피임법 없기 때문에 절제와 지혜 필요한 것

현재 우리는 과도하게 성 정보들이 흘러넘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런 환경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생활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영위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되도록 비밀에 부치고 부정적인 가치평가를 덧씌우는 종교의 가르침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다. 피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가치와 의미, 방법과 효과에 대해 정확한 앎을 추구하는 태도는 교회가 우려하듯이 무분별한 성관계를 부추기거나 우리 몸을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우선 제대로 된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자신과 파트너의 몸에 대해 편견 없이 아는 것이 먼저고, 구체적 행동방안을 결정하는 문제는 그 다음 일이다. 위기 상황이 오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은 평소에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콘돔 착용은 아무런 호르몬 조절이 없고 성 매개 감염병을 막아 주는 유일한 피임법으로 안전성과 피임기능 면에서 효과가 높다. 그러나 남성이 공기를 제대로 빼지 않은 채 착용하거나, 중간에 빠지거나, 잘 마무리하지 못했을 때 여성 100명 중 최대 18명은 임신할 수도 있다.5) 이것도 부정확하게 사용하지 않기 위해 연습이 필요하다. 100퍼센트 완벽한 피임법이 아직 없으므로 피임을 정확히 공부할수록 절제하고 자제하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은 교리가 나의 무의식을 강력하게 지배하기 때문만은 아니어야 한다.

피임을 토론하지 못하는 관계에 건강한 사랑 깃들기 어려워

우리는 섹슈얼리티와 성 건강의 문제에 대해 일상 속에서 터놓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고, 파트너와는 많은 시간에 걸쳐 피임에 대한 계획을 같이 세운 뒤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종교적 가르침에 대해서도 어떤 방식으로 따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토론과 재검토가 필요하다. 기혼이든 미혼이든 자연출산조절밖에 쓸 수 없는 관계라면 그 관계를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나 자신과 파트너의 몸과 정신을 최대한으로 배려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 속에 건강한 사랑이 깃들 것이다.

민주적인 피임실천은 우리가 행복한 사랑을 원한다면 꼭 완수해야 할 평생의 핵심 과제다.

1) 니나 브로크만, 엘렌 스퇴켄 달, "질의 응답: 우리가 궁금했던 여성 성기의 모든 것",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2019, 192쪽. WHO, Family planning/Contraception, 2018.2.8.(https://www.who.int/news-room/fact-sheets/detail/family-planning-contraception)

2) 정현진, '생명과 가정 보고서 발표: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2014년 설문 조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5.05.28.(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78)

3) 김소라, '먹는 피임약 분류를 둘러싼 각계의 갈등과 담론 구조', "한국여성학" 29(3): 96, 2013.

4) 전미옥, '응급피임약 처방, 가톨릭은 안합니다: 종교, 윤리 문제로 응급피임약 처방 금지 방침...성폭력 피해자도 예외없어', 〈쿠키뉴스〉, 2018.02.23.(http://www.kukinews.com/news/article.html?no=527125)

5) 건강과 대안 젠더건강팀, "우리가 만드는 피임사전",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2016. 37쪽.

강석주(카타리나)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여성학 협동과정 박사 수료. ‘페미니즘 시대, 실천적 종교연구를 위한 시론’, ‘낙태죄 판결의 의미와 가톨릭의 과제’, ‘아일랜드 국민들의 정의로운 선택’ 등을 썼다. 현재 ‘여성 종교인의 임신중지 체험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를 주제로 박사논문 준비 중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