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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보내며 

기사승인 2020.02.27  13: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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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성수도 미사도 없는 텅 빈 성당에서 사순절을 맞습니다. 존재의 부재 속에서 존재를 기억하는 사순절을 맞습니다. 이웃들의 기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부활을 기억하며 사순절을 맞습니다.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 ⓒ장영식

성당에서 미사가 없습니다. 재의 수요일 예식도 없습니다. 성수도 사라지고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성당뿐만 아니라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 엄혹한 사태 앞에서 지난 100년간 ‘공동의 집’인 지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성찰하게 됩니다. 

약육강식의 바람이 진실인 것처럼 지구를 뒤덮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서 소유와 착취와 억압이 지배했습니다. 화석 연료 중심의 세계 경제는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했습니다. 지금도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착취와 파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숲은 사라지고 자연 생태계는 파괴되었습니다. 지구의 온도는 올라가고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야생의 세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야생동물과 식물이 숨쉬는 공간이 조여들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던 지구 생태계가 지난 100년 동안 급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창궐하는 바이러스 앞에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해야 합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으로 100년의 역사를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붕은 하늘을 찌르고 있는 현실을 회개해야 합니다. 노동 없는 성직자들의 안주를 회개해야 합니다. 가난을 존중하지 않는 교회의 비뚤어진 모습을 회개해야 합니다. 금관의 예수를 쫓는 탐욕의 자본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소유하면 할수록 더 많이 소유하려는 비뚤어진 욕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사 없는 사순절을 맞습니다. 재를 얹는 예식도 없는 사순절을 맞습니다. 텅 빈 성당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성찰하는 사순절을 맞습니다. 제국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높고 낮음이 없는 자유와 평등의 세계를 건너는 꿈을 꿉니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끝내는 돌무덤에 갇혀 있던 어둠을 밀어내고 부활하는 꿈을 꿉니다. 우리 모두의 공동의 집인 지구가 파괴되지 않고, 녹색 그대로 온전하게 보존되는 부활을 꿈꿉니다. 

이웃의 기침 소리에 화들짝 놀라 혐오와 차별 그리고 배제가 지배하는 세상을 넘어 이웃의 기침 소리에 온 우주가 깨어나 노래하며 춤을 추는 사순절을 꿈꿉니다. 겨울 내내 땅속 깊은 곳에서 생명을 품고 자라 끝내는 아름답게 피워 오르는 뭇 생명들의 사랑의 향기가 부활하리라는 믿음의 사순절을 보냅니다. 

평화를 빕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장영식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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