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읽는 사회교리]

조선학교는 일본의 재일조선인들이 다니는 학교다. 일제강점기 끌려가 해방 후에도 일본에 남아야 했던 동포들은 아이들을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길러내기 위해 민족학교를 세웠다. 조선말을 가르치는 ‘국어강습소’로 시작한 조선학교는 일본 전역으로 퍼져가 해방 후 70년이 넘게 재일조선인들이 배우고 자란 터로 동포 사회의 구심점으로 남았다. 오랜 세월 한국 사회는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배척했고 때로는 냉전의 도구로 이용했다. 재일동포들은 이렇게 일본과 한국 사회 모두에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해야 했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도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교류와 연대를 목적으로 하는 시민단체들도 생겨나고, <KBS>나 <JTBC> 같은 주요 언론사에서 이들의 존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나 인터뷰 특집을 보도하기도 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민족화해와 평화에 관심을 가진 신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정부의 차별과 배제에 맞서며 치열하게 투쟁 중인 조선학교의 상황을 알리고 동포들과 연대하는 활동이 시작됐다. 지난달에는 ‘조선학교 지키기’를 주제로 한일 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축이 된 공동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한일 예수회가 협력해 진행하는 서강대 청년들과 조선학교 아이들의 교류를 위한 프로젝트를 위해 여러 차례 조선학교를 방문했다. 조선학교가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감동과 질문은 이 자리에 소개하기 어려울 만큼 풍부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강렬한 질문은 ‘민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강제로 끌려온 식민국에서 온갖 고생과 차별을 감내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고자 했던 동포들에게 ‘민족’이라는 개념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특히 민족교육을 위해 세운 조선학교에서 민족은 재일조선인으로서 정체성과 존재 자체를 설명하는 말이다.

민족 정체성을 지키며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배우고 나누는 동포 사회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배워 온 한국 젊은이들에게 민족은 무엇이며, 우리가 가져온 민족 개념과 동포들이 지켜 온 민족의 의미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물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일과가 끝나고 청년들의 나눔에서 언제나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토론이 긴 시간 이어지곤 한다.

2019년 11월 8일, 일본 문부과학성 앞에서 학생들이 "조선학교 차별반대, 조선학교에도 배울 권리를, 고교무상화 재판승리"를 위한 금요투쟁 시위를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행운도정 동영상 갈무리)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을 읽다 보면 민족주의에 관한 부정적 인식은 비단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들만의 것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민족들의 발전’ 62항은 인간 사회를 더욱 공평하게 하고 인류의 상호 유대를 완전하게 하는 데 극복해야 할 장애로 ‘민족주의’를 꼽는다. 물론 “최근에 비로소 정치적으로 독립한 민족들이 아직 견고하지 못한 통일을 보호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도, 옛 문화를 지닌 민족들이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자랑하는 것도 극히 자연스럽기는 하다”고 정황을 참작하지만 역시 “이 정당한 감정도 전 인류를 감싸주는 보편적 사랑으로 더욱 완전해져야 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1967년 발표된 ‘민족들의 발전’은 기아와 빈곤, 무지로부터 해방되려는 민족들의 노력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응답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0년대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이 민족들이 겪는 극심한 곤경을 목격한 뒤 ‘모든 인간의 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한 국제적 지원과 협력을 통한 연대 방안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특히 ‘민족들의 발전’은 국가들 사이에 있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균형이 평화를 위기에 몰아넣는다고 명시하며 국가와 대륙, 민족 사이의 불평등 문제를 짚는다. ‘민족들의 발전’ 서문은 굳은 결의로써 완전한 발전을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민족들의 발전에 관하여 교회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에 있어 복음이 요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고 사람들을 도울 의무를 갖고 있음을 밝히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민족들의 발전’을 읽으며 두 개의 키워드, ‘민족’과 ‘발전’ 모두에서 새롭고 풍부한 뜻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회칙이 말하는 ‘발전’은 단순히 국제 개발과 해외 원조를 통한 경제적·사회적 성장에 머물지 않는다. 회칙 14항은 “발전은 경제적 성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발전이 올바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 전체와 인류 전체의 발전 향상이 전체적이라야 한다. (중략) 가장 중대한 것은 인간이다. 하나하나의 인간, 그 인간들의 집단,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가 중한 것이다.”라고 밝힌다. 더불어 “발전 향상되어야 할 주체는 완전한 휴머니즘이다. 완전한 휴머니즘이란 개개인의 인간과 전 인류의 완전한 발전이 아니고 무엇이랴?"(42항)라고 명시해 이 회칙이 말하는 발전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함 그 자체임을 말한다.

참 번역하기 까다로운 교황청 부서로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Dicasterium ad integram humanam progressionem fovendam)가 있다. 2016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의 교서 ‘인간 발전’에 의해 설립돼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사회복지평의회, 이주사목평의회, 보건사목평의회를 통합한 부서로 2017년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 되는 경쟁 사회에서 ‘인간 개발’은 자칫 ‘자기 계발’ 또는 ‘스펙 쌓기’의 연장선으로 느껴지기 쉽다. 그러나 ‘온전한 인간 발전’이라는 말은 곧 하느님의 모상인 모든 인간이 그 존엄함을 충분히 발하며 더욱 가치 있게 자신을 완성하도록 나아감을 의미한다. 인간 존엄성과 인권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은 곧 ‘민족들의 발전’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교황 바울로 6세의 사회회칙 '민족들의 발전'과 해설. ⓒ왕기리 기자

‘민족들의 발전’은 식민주의와 전쟁으로 고통받아 온 민족들이 기아와 빈곤, 질병과 무지에서 해방되어 발전할 수 있도록 교회와 세계의 연대를 요청한다. 그러나 ‘발전’이 경제적 발전을 뛰어넘어 온전한 인간 존엄성의 발현 그 자체를 의미하듯, ‘민족’ 역시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를 넘은 모든 인간과 인류로 그 뜻을 확장하여 읽을 수 있다. 회칙은 약소민족들에 대한 원조를 권고하는 동시에 모든 인간은 형제이며 개개인의 발전은 인류 전체의 공동 발전과 결부됨을 강조한다.

다시 조선학교 이야기로 돌아와 스스로도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가 던지는 민족과 조국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는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얕은 지식과 몇 번의 방문으로 그 답을 말하기란 어려울 것이나 나에게 실마리가 되어 준 만남을 소개하고 싶다. 

최근 구교우 집안에서 자란 오랜 신자면서 조선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동포들이 보는 신문과 잡지를 만들어 온 한 재일조선인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조선학교를 나온 가톨릭 신자인 재일동포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조선학교와 가톨릭 신앙은 재일동포 사회 안에서도 이질적이고 분단된 두 개의 정체성이었던 것이다.

당신 역시 조선학교에 진학하면서는 성당에 다니지 않기도 했고, 다시 신앙 안으로 돌아오고서도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선생님께 어떻게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두 개의 정체성을 통합할 수 있었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자신의 삶에 존재한 두 개의 길은 다른 길처럼 보였으나 결국 같은 길이었다는 답이었다. 조선학교에서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삶과 신앙인으로서 하느님나라를 만들어 가는 삶은 모두 결국 어떤 인간도 차별받지 않고 그 존엄함을 인정받으며 온전한 성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길이었다는 통찰이었다. 

선생님의 삶 전체를 걸친 통찰과 함께 ‘민족들의 발전’은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이 회복하고자 하는 것도, 여전히 고통받는 세계 곳곳의 약소민족들의 바람도, 인간의 존엄 그 자체임을 상기했다. ‘민족들의 발전’은 “‘남을 받아들일 의무’는 인간적 연대성의 의무이며 그리스도교적 애덕의 의무”라고 강조하며, “특히 외국인 젊은이들을 따뜻이 받아들이는 것”을 제안한다.(67항) 모든 인간이 충분한 존엄을 존중받기를, 그리고 이를 통한 온전한 인간 발전을 위해 기꺼이 남을 받아들이며 특히 낯선 곳에서 온 이방 젊은이들을 따뜻이 맞을 수 있길 바란다.   

정다빈(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대학에서는 예술경영과 영상이론을, 대학원에서는 법을 공부했다.
인간 존엄성이 어떠한 논리로도 훼손되지 않는 세상, 모든 인간의 다름이 그대로 인정받는 공동체 그리고 서로를 향한 존중 위에 싹트는 평화를 위해 오늘도 일하고 읽고 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