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파공(罷工)이라는 단어 자체를 생소하게 생각하는 분이 많을 거라 어림하면서 이번 질문을 다뤄 보고자 합니다. 

언뜻 파공하니까 볼링공에 손가락 넣는 구멍을 뚫는 작업을 떠올리시는 분도 계실 듯한데, 한자를 들여다보면 ‘그만 두다’라는 의미의 ‘파(罷)'와 ‘노동’을 의미하는 ‘공(工)’이 합쳐져서 만든 단어입니다. 뜻 그대로 ‘일을 그만둠’을 가리킵니다. 

문맥을 정확히 모르면 '가뜩이나 일자리 찾기도 힘든데 일을 그만 두다니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 떠오를 겁니다. 파공은 아무 때나 쓰는 말이 아니고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육체노동을 멈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십계명 중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라는 계명이 떠오르죠. 

따라서, 신자들은 의무적인 축일 즉, 모든 주일과 각국 교회에서 정한 몇몇 축일에 파공을 지켜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을 하는 식의 육체적인 노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파공에는 대파공(大罷工)과 소파공(小罷工)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경우 사대축일(四大祝日)인 예수성탄 대축일, 예수부활 대축일, 성령강림 대축일, 성모 승천 대축일 등에는 특별히 크게 지키는 대파공을, 그 밖의 연중 모든 주일에는 소파공을 지킵니다.(가톨릭 대사전 참조)

대파공은 온종일 일을 멈추는 것, 소파공은 하루 중 반나절 정도 일을 멈추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1990년대 전까지는 한국의 노동현실을 고려해서 한국 교회는 해당 지역의 주교나 사제에게 특별히 관면 요청을 하지 않아도 신자들이 파공을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면제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주일이나 대축일에도 생계를 위해 필요하다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 재의 수요일 이후부터는 그러한 파공관면이 폐지되었습니다. (천주교용어사전 참조) 

노동자들. (이미지 출처 = needpix)

하지만, 그 이후에도 신자들은 일을 하고 말고를 각자의 판단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월-금 혹은 토요일까지만 일하고 주일엔 일을 안 해도 되는 이들만큼이나 그렇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말에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이 주일 미사에 참석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파공에서 말하는 노동을 꼭 육체노동에 국한하여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과연 사무직 노동은 파공의 대상이 아닐까요? 육체노동을 하는 이가 생계에 더 위협을 받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이들이 파공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사무직 노동자들이 파공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들을 감안할 때, 파공을 어느 선까지 지킬지 말지를 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좀 더 범위를 넓혀서 입시를 준비하느라 주중에는 학교, 주말에는 집중적으로 학원에 다니는 청소년들에게도 파공의 의무를 지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파공의무를 이야기했다가는 "입시 끝나고 만나요”라는 대답이 들려올 듯합니다. 정말 입시 마치고 돌아온다면 다행입니다. 

파공의 범위나 파공관면에 대한 고민은 오늘의 사회에서 무의미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모두 알아서 하실 테니까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드리자면, 어떻게든 주님의 날(=주일)에 하느님을 의식해 보시라는 겁니다. 그 실천적 모습이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것이겠습니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그것도 어렵지만 이 시기가 지난 뒤 토요일 저녁에 봉헌되는 주일미사에 시간을 내실 수 있다면 그렇게, 주일 당일에 시간을 낼 수 있다면 그렇게, 나머지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노동을 해야 한다면 그 시작과 마침에 주모경을 넣어서라도 노동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학원에 가야 하는 청소년들에게도 마찬가지 안내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센터장, 인성교육원장,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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