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세르바토레 사이언티피코]

고등학교 생명과학 교과는 유전학, 특히 인간의 유전학을 가르친다. 그중 가장 간단하면서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성별을 결정짓는 성염색체의 유전현상이다. 

인간은 총 46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고, 그중 2개가 성별을 결정짓는 성염색체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X염색체를 하나씩 받아 쌍을 이루면 태아는 여성으로 태어난다. 반면, 아버지로부터 Y염색체 하나를 받고 어머니로부터 X염색체 하나를 받아 쌍을 이루면 남성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고등학교 생명과학 교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성염색체의 비정상적 행동에 따라 나타나는 유전질환에 관해서도 가르친다. 많은 학생이 공식처럼 외우고 있는 ‘X0는 터너, XXY는 클라인펠터, XXX는 초여성, XYY는 초남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정자 또는 난자라는 생식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쌍을 이루고 있던 염색체 46개는 절반으로 분리되어 각각의 생식세포로 전달되는데, 이 과정에서 간혹 염색체가 정상적으로 분리되지 못한 상태로 전달되어 ‘염색체 비분리 현상’이 나타난다. 위에서 학생들이 공식처럼 외우고 있다는 유전질환은 이 현상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정상'(normal)이라는 관점에서 성별은 여성(XX)과 남성(XY)으로 명확히 구분된다. 통상 외부 생식기의 형태로 여성과 남성을 구분짓고, 고등학교에서 배운 생물학 지식을 통해 좀 더 발전된 단계로 성염색체의 조합에 따라 성을 구분하기도 한다. 이런 구분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은 성염색체의 비정상적(abnormal) 행동으로 나타나는 유전질환을 선천적 장애로 인식해 왔다. 예를 들면, 터너증후군인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2차 성징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불완전하고 불임의 특징을 가지며, 클라인펠터증후군인 남성도 외부 생식기의 형태는 남성이지만 불완전한 2차 성징으로 생식기의 발달이 더디고 생식이 불가능한 불임의 특징을 갖는다고 구분해 왔다. 그들이 갖고 있는 염색체의 특징 때문에 사실상 그들의 생물학적 성을 기능적으로 구분하는 덴 어려움이 있다. 

조금 더 논의를 확장하여 생물학적 성의 구별이란 것이 ‘유성생식을 통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생태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떤 생물 종이 진화, 적응하여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체계 안에서는 유효할지 몰라도 개별적 개체의 수준에서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개별 개체들의 성을 구분하기 위한 생물학적 현상들은 생각보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분명한 이분법적 구조, 즉 바이너리(binary)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염색체. (이미지 출처 = Flickr)

개체 수준에서 생물학적 성별의 구분이 모호하게 나타나는 현상의 대표적 예는 간성(intersex)이다. 간성은 성염색체와 실제 그 성별이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컨대 성염색체는 XX로 분명히 여성의 성염색체인데 외부 생식기는 남성의 생식기로 태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성염색체와 표현형으로 알 수 있는 성별 사이의 불일치는 1500-2000명당 1명 꼴로 나타난다. 간성으로 태어난 아기는 여성의 성염색체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외부 생식기가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으로서의 사회적 성역할 내지는 남성 시스젠더로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규정하고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간성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보다 조금 특이한 남성 정도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 현상의 유전적 문제로 생기는 성적발달장애의 의학적 해결을 고민할 필요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그 방법을 논외로 하겠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하여 말할 수 없는 간성과 같은 또다른 생물학적 성별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외부 생식기의 형태적 유사성에 의하여 성염색체의 조합도 일치할 것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성은 적은 확률로 분명히 나타나는 생물학적 현상이고, 실제로 자신이 간성임을 알고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꽤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가 발생한다. “과연 오로지 성염색체가 생물학적 성을 바이너리로,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성역할로서 젠더를 모두 규정할 수 있는가?”

2009년 미국 소크 연구소(Salk Institute) 연구진들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들은 암컷 쥐의 난소에서 Foxl2 유전자를 불활성화시켰다. 그러자 난자를 만드는 세포가 정소에서 정자를 만드는 세포로 형태가 변한 걸 발견했다. 이미 태어나 성체가 된 개체 안에서 난소로 분화가 완료된 세포에서 유전자 하나를 불활성화시켰을 뿐인데, 암컷의 성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세포가 정소의 세포처럼 변화했다는 것이다. 

2011년에는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 연구진들도 이와 비슷한 실험을 했다. 수컷 쥐의 정소에서 Dmrt1 유전자를 불활성화시키자, 정소의 세포가 난소의 세포로 바뀌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결과들은 어떤 유전적 변이에 의하여 생물학적 성별이 후천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실제 나타나는 성별은 생물학적으로 선천적 염색체의 조합과 큰 관련 없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염색체가 반드시 어떤 개체의 생물학적 성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라는 것과 성염색체의 조합과 어떤 개체의 기능적 또는 사회적 성역할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은 없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다. 

의학유전학자인 폴 제임스는 2010년 초, 그를 찾아온 46세 여성 임산부를 진료하면서 크게 놀랐다. 그녀는 세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산전진단을 위해 양수 천자(양수에서 채취된 세포배양을 통한 세포유전학검사)를 받으려고 찾아왔다. 진료과정에서 이 여성은 몸에 X염색체 한 쌍 세포를 갖는 동시에 X염색체와 Y염색체 한 쌍을 갖는 세포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여성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이란성 쌍둥이 배아였고,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쌍둥이 배아가 합쳐져 몸 안에 서로 다른 성염색체를 가진 세포들이 섞인 것이다. 이를 이론적으로는 세포 모자이크현상(cellular mosaicism)이라고 한다. 

이 환자를 진료한 제임스는 "이 사례는 마치 공상과학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그런 이야기인 것 같지만 엄연히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여성의 몸에 XY 염색체를 지닌 세포가 일부 있었다고 해서 그녀가 사회 공동체 구성원 그리고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런 사회적 역할들을 충분히 수행해 왔음에도 “당신의 몸에는 XY 염색체가 조금이라도 있으니, 당신은 여성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미국 UCLA의 에릭 빌레인(Eric Vilain) 교수는 간성을 포함하여 다양한 생물학적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인간 성별의 여러 가지 이상현상을 모두 합치면 100명당 1명 꼴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이야기한다. 100명당 1명은 유전학적으로 상당히 높은 빈도다. 이에 따르면 최소한 인구 100명당 1명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성염색체와 생물학적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 자연적인 성별 구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간성은 성염색체와 실제 그 성별이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위에서 간성의 예를 들었다. 간성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생물학적 현상인데, 사실 그 원인은 어느 정도 밝혀져 있다. 발생과정에서 부신(adrenal glands)이 과도하게 형성되는 돌연변이와 비정상적으로 분비된 여러 호르몬들의 복합적 작용으로 자신이 가진 성염색체와 다른 성별의 외부 생식기로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돌연변이와 비정상적 호르몬을 분비하게 하는 유전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성염색체에 속한 유전자들과는 연관되지 않다. 실제 성별을 결정짓는 일련의 생물학적 과정은 우리가 전제하는 가정(외부 생식기의 형태적 유사성은 반드시 성염색체의 동일한 조합을 가리킬 것이라는 생각 또는 성염색체의 동일한 조합은 반드시 외부 생식기의 형태적 유사성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생각)을 산산이 부수어 버린다. 

그렇다면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과연 오로지 성염색체가 생물학적 성을 바이너리로,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성역할로서 젠더를 모두 규정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당신은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2020년 2월 어느 트랜스젠더 여성은 숙명여대 법학과 정시모집에 합격했다. 그러나 숙명여대 재학생 일부와 다른 여대 학생들은 ‘외과적 수술에 의하여 외형상 여성일 뿐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임을 주요 반대논거로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반대했다. 그런데 실제 생물학적 현상은 그들의 주장을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례로 작용한다. 트랜스젠더가 아니더라도 ‘외형상 여성인데 성염색체의 조합은 남성’인 경우가 자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임에도 일부 세포는 남성의 성염색체를 가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반대논거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전제, ‘성염색체의 동일한 조합은 반드시 외부 생식기의 형태적 유사성을 가리킬 것’이라는 가정과 ‘성염색체에 의해 생물학적 성은 물론 그 성역할까지 결정될 것’이라는 가정으로 구성되는데, 생물학적 현상들은 오히려 ‘형태적 유사성이 있을지라도 성염색체의 조합이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님’을 알려 주며, 실험적 결과들은 ‘어떤 개체의 기능적 성역할은 성염색체의 조합과 큰 연관성이 없을 수 있음’의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게 하므로 그들의 논거는 구성되기 어렵다. 

입학을 원했던 트랜스젠더 여성이 남성의 성염색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여성으로서의 성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더 나아가서는 여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정작 생물학적 현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소수자를 향한 저렴한 혐오의 표현일 뿐이다. 어설픈 생물학을 근거로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한’ 혐오를 생산하는 그들에게 터져나오는 실소를 보낸다. 

생물학적 데이터들은 우리에게 생물학적 성별이 둘로 나누기 어려운 ‘논바이너리’의 특징을 갖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여성과 남성, 암컷과 수컷으로만 있는 줄 알았던 불연속적인 성별의 이분법적 구분이 실은 상당히 넓은 연속적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는 걸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실험적 결과로부터 얻은 ‘어떤 개체의 기능적 혹은 사회적 성역할은 성염색체의 조합과 큰 연관성이 없을 수 있다’는 추론은 다른 학문 영역에서, 특히 사회과학, 심리학과 법학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체적 증명에 이르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생물학은 이 추론에 논리적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한’ 혐오의 생산을 멈추게 하고 유쾌한 하이킥을 날릴 수 있는 연구결과들이 다른 학문 분야에서 어서 나오길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Long-term outcome of disorders of sex development” (2008) G.L. Warne, Sex. Dev., vol.2, pp.268-277
“Somatic sex reprogramming of adult ovaries to tetes by FOXL2 ablation” (2009) N.H. Uhlenhaut et al., Cell, vol.139, issue 6, pp.1130-1142
“DMRT1 prevents female reprogramming in the postnatal mammalian testis” (2011) C.K. Matson et al., Nature, vol.476, pp.101-104
“DSDs: genetics, underlying pathologies and psychosexual differentiation” (2014) V.A. Arboleda et al., Nat. Rev. Endocrin., vol.10, pp.603-615
“Sex redifined” (2015) C. Ainsworth, Nature

이전수(라파엘)
국립암센터 연구원.
연세대 생화학과, 포항공과대 대학원 생명과학과 졸업. 
생명과학 연구자이자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과학-기술-사회(Science-Technology-Society), 과학과 종교간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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