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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 선택

기사승인 2020.03.24  12: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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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제가 있는 곳은 지난 16일부터 이동제한령이 내려져 집에서만 지내고 있습니다. 

같이 사는 수녀님들은 출근하지 못 하시고 줌(ZOOM)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강의, 영적 동반, 학교 회의 등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미사 또한 이뤄지지 못해서 인터넷 미사를 보고 있지요. 뉴스를 보니 제가 있는 이 작은 곳의 일만은 아닌 것 같네요. 

"세상이 아프대요. 그래서 친구들을 만날 수 없대요." 

학교에 못 나가 답답해 하는 옆집 꼬마의 이야기를 들으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팬데믹을 선언하는 뉴스를 볼 때 까지만 해도 그래도 끝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번져 가는 현황으로 붉게 물든 세계지도와 경제적 불황을 걱정하는 두려운 목소리, 용기를 내어 들른 큰 마트의 식료품 코너가 텅 비어 있는 모습을 목도할 때면 진정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섭기도 합니다.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금지되었습니다. 가끔은 귀찮아서 이걸 꼭 해야 하는 건가? 고민해 보고 뒤로 슬쩍 미뤄 두고 싶었던 일들이 당분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출근에, 학원에 여러 곳으로 흩어져 각자의 일을 잘하던 가족이 하루 종일 한 데 모여 지내다 보니 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조금 멈춰서 깊이 바라본다면 우린 다른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날이 올 줄 몰랐어요. 친구들도 너무 보고 싶고, 급식도 먹고 싶어요!” 

작년 수업 시간마다 집에 가고 싶다고 외치던 녀석의 연락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주어진 것을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내느라 그것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그저 달렸습니다. 타의에 의해 갑작스레 멈춰진 후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났는데, 고요히 바라보다 보니 이 모든 것의 소중함을 만나게 됩니다.

 

인터넷 미사를 하다가 신령성체의 기도를 하던 중 문득 눈이 번쩍 뜨입니다. 이렇게 간절하게 집중하여 미사에 임했던 적이 솔직히 몇 번이나 있었던가? 평일 미사에 슬쩍 빠지며 합리화 했던 적이 한두  번이던가? 그러던 내가 지금 이렇게 온 마음으로 신령성체 기도를 하고 있다니....

어린이집도 학교도 갈 수 없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씨름하느라 병이 난 엄마들이 있는가 하면, 맞벌이로 인해 아이를 긴급 육아로 맡길 수밖에 없어 마음이 아픈 부모님들도 계십니다. 육아에 지친 친구들이 아이들 이야기를 나눕니다.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님들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우리는 집에 있어서 답답하지만 그래도 안전한데, 아빠가 일하고 있는 곳은 괜찮을까?”라는 아이의 질문이 마음에 남습니다. 내 안의 작은 고통들에 꽂혀 돌보지 못했던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의식해 봅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야말로 본질이 강조되고 그것을 찾아야 하는 시기이지 않겠습니까? 결국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과학 기술과 탐욕적인 부는 한낱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종교란 무엇일까? 종교가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일까? 
하느님은 누구이실까? 수도자, 성직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곧 진정한 본질만 남는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을 찾고 그것에 부끄럽지 않은 수도자가 되도록 노력해 주세요. 꼭 그런 수도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연히 입회 직전에 뵈었던 분을 만났습니다. 제가 아직도 수도회에 있을지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다음 결정을 하러 떠나는 제게 당부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온 세상이 끝을 모르고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내 옆, 심지어 나 자신조차 돌보지 않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렸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지요. 여러 징표들에도 마치 영원 백세를 살 것처럼 그렇게 지내던 이 지구가 멈춰 버렸습니다. 인간이 자발적으로 멈추고 회개하지 못하니 그간의 인간 악행들이 모여 멈추게 만든 것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를 본질로 초대합니다. 조용히 말이지요.

누구의 잘못이겠습니까. 특정 어느 나라의 잘못이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앞장서거나 묵인하거나 방관하며 지내온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종종 희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현실을 모른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네, 저는 그저 수도자라 뼛속 깊은 현실을 모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ㅁㅁ에 살고 있는 ㅇㅇ입니다. 도움이 필요하거나, 집에 식료품이 떨어졌는데 구할 수가 없다면 누구든 연락 주세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고 도와드리겠습니다.”

답답함에 살며시 들른 공원에서 연락처와 함께 남겨 있는 메시지를 보았습니다. 수녀님들 말씀으로는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가 서로 돌봐야 할 아니 돌볼 수 있는 정말 귀한 때가 왔다고 하십니다. 

 

멀리 와 있는 이곳에서 지난주 3일간 쉬지 않고 비가 온 뒤 늦은 오후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났다. ⓒ이지현

3일간 쉬지 않고 비가 온 뒤 늦은 오후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났습니다. 

묵묵히 비를 다 쏟은 하늘에 드리워진 무지개에서 받은 뜨거움을 저의 한정된 단어들로 만들어진 조잡한 문장 대신 성경 말씀을 나눕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서 5,5)

 

전 세계가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두움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하지만 깨어나십시오. 그리고 선택하세요.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면을 보기를 선택할 것인지. 하느님께서 처음 꿈꾸며 만드셨던 그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하느님은 우리가 두려움에 갇혀 어둠 속에서 벌벌 떨기를 바라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이지현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이지현 editor@catholicnews.co.kr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기사는 영리 목적이 아니라면 누구나 출처를 밝히고 무료로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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