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우리들 마음속의 돌을 치우시오”

교종, 3월29일 사순 제4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29일 사순 제4주일 삼종기도 전 가르침을 통해 사순절기간 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 각자 마음속의 ‘돌’을 빼내어 하느님 말씀으로 죽음이 있는 곳에서 생명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강조했다. 바티칸 도서실에서 생중계된 삼종기도 가르침은 이날 복음(요한 11,1-45)인 라자로의 부활사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가르침 내용.

오늘 복음에서 라자로의 동생 마르타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21절)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무덤에 도착해 “돌을 치워라”고 명하십니다.(39절 참조) 돌이 치워지고 예수님이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하고 큰 소리로 외치자 죽었던 라자로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43-44절 참조) 하느님은 생명이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친구 라사로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에 동참하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지배를 세상에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에서 인간의 믿음과 전능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서로를 찾으며 마침내 만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이라는 여인들의 외침에 대한 하느님의 반응은 연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25-26절 참조)고 하십니다. 슬픔 가운데서 죽음이 이겼다고 생각될 때도 계속 믿음을 가지십시오. 우리 마음에서 ’돌‘을 치우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이 죽음이 있는 곳에서 생명을 회복하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돌을 치워라”고 반복하십니다. 우리는 빈곤층의 소외와 믿음이 살아 있는 위선과 같은 죽음의 모든 돌을 치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완고한 돌들을 우리 마음에서 치우라고 요청하십니다.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가 고통을 겪은 아드님 예수님처럼 동정심을 가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가까워져서 그들을 위해 하느님의 사랑과 부드러움을 반영하여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키고 삶을 승리로 이끄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종, 코로나 사태에 분쟁지역 휴전 호소

프란치스코 교종은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전 세계가 코로나19 전염병의 맹공격을 맞아 모든 분쟁지역의 휴전을 촉구했다. 교종은 삼종기도 후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이 발표한 호소를 되풀이 강조했다. 교종은 모든 분쟁지역에서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분위기 조성과 개방성 장려, 취약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려 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교종은 전염병에 대항하는 우리의 공동투쟁은 모든 사람이 한 인간가족의 일원으로서 형제자매 관계를 강화해야 할 큰 필요성을 인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것은 국가 지도자와 관련 당사자 간의 경쟁을 극복하겠다는 새로운 약속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갈등은 전쟁을 통해 해결되지 않습니다. 적대성과 차이는 대화와 평화에 대한 건설적 탐색을 통해 극복되어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또한 교종은 요양원이나 병영과 같은 그룹에 거주해야 하는 모든 사람을 특별히 언급했다. 교종은 감옥에 있는 수감자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면서 ”특별한 방법으로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저는 인권위원회에서 비극이 될 수 있는 과밀한 교도소의 문제에 관한 공식적 메모를 읽었습니다. 이 심각한 문제에 민감하고 미래의 비극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예수님처럼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자”

교종, 3월29일 사순 제5주일 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29일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봉헌한 사순 제5주일 미사에서 라자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수많은 사람의 눈물에 동참하자고 호소했다. 교종은 이 시간 검역소에 고립된 노인들과 병원에서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이 울고 있으며 우리도 이들과 마음에서 함께한다고 말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요한 11,1-45)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신 친구 라자로의 죽음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지만 각별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와의 특별한 관계도 포함됩니다. 예수님은 그들 집에 많이 머무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친구 라자로의 병과 죽음에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에 도착해서도 심하게 떨며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분께는 다른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부드러움으로 울부짖으십니다. 예수님은 마음에서 울며 사랑으로 우십니다. 항상 자신의 울음소리로 우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보고 동정심을 느끼셨습니다. 그분의 눈은 항상 마음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눈으로 보시지만 마음으로 보시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대유행으로 인해 울고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우리도 울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우셨고 지금도 그렇듯이 나도 울 수 있습니까? 내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가?” 너무 힘들어도 어떻게 하든 도움을 주기 위해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지금 사람들의 고통이 들어오지 않고 울 수 없다면 주님께 은혜를 구하십시오. 주님은 당신과 함께 울고 지금 당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계십니다. 오늘 눈물의 일요일, 많은 사람이 울고 있습니다. 우리는 울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예수님처럼 우는 은혜를 구합시다. 오늘은 모든 사람이 일요일의 눈물처럼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예수, 나는 당신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가장 축복받은 성찬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내 영혼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지금은 성찬식으로 당신을 모실 수 없기 때문에
적어도 내 마음에 영적으로 들어와
당신이 이미 그곳에 있는 것처럼 당신을 포옹합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과 전적으로 결합합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분리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마십시오.
※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1696-1787 이탈리아) 작곡

 

“율법학자 유형의 성직자 경계해야”

교종 3월28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28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봉헌했다. 교종은 "요즘 세계 일부지역에서 코로나19 전염병 대유행으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그들은 정규직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다른 상황에서 일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전염병 대유행으로 나중에 올 여파를 지금 보기 시작한 것이며,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요한 7,40-53)은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 분리된 두 그룹을 보여 줍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한 후 그들 각자는 자기 집으로 갔다고 말합니다. 즉 모든 사람이 자신들 신념을 간직한 채 돌아간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두 번째 그룹인 종교지도자들과 율법학자들은 첫 번째 그룹을 멸시하고 그들의 신념으로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충실한 하느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분을 따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피곤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병이어 기적이 행해지는 날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군중들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군중들이 먹을 것을 사러 갈 수 있도록 멀리 보내라'고 건의한 시점까지 종일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우리와 같은 죄인이었지만 구원의 길을 아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소그룹 엘리트 율법학자들은 군중들과 분리되어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결함’으로 하느님 백성에 속한 자신의 기억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정교해졌습니다. 그들은 사회의 다른 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권위를 느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우리가 보는 일부 성직자의 현실입니다.

사제와 종교인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것에 어떤 이들은 성직자는 성찬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옛날 율법학자 유형의 성직자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들 일부는 상류층에 속하며 하류층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손을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싶은 마음과 용기를 사라지게 합니다. 옛날 율법학자들의 생각과 똑같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렸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무리에 속한 자신의 기억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느 산촌에 계신 한 사제는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에도 축복받은 예수님 성체를 자신의 지역 작은 마을로 모시고 가서 성체강복을 드렸습니다. 눈이 내리거나 성광의 차가운 금속이 손을 얼게 했던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모시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젊은 감독 티모테오에게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깃들어 있던 그 믿음이 이제는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티모데 후 1,5 참조)라고 조언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바오로 사도가 이것을 조언했다면 그것은 엘리트주의가 가져오는 위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심을 위한 선택의 시간입니다”

교종, 전 세계에 ‘우르비 엣 오르비’ 특별축복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27일 밤 비 내리는 황량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전 세계를 향해 우르비 엣 오르비(Urbi et Orbi, 로마도시와 전 세계에게) 축복을 선포했다. 전통적으로 우르비 엣 오르비는 성탄절과 부활절 대축일에 전 세계를 향해 거행하는 장엄축복이다. 교종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친 특별한 상황에서 코로나 확산을 멈추도록 기도하면서 고통에 잠긴 인류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이를 선택했다. 

이날 행사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화와 함께 TV, 라디오, 페이스북, 유튜브 등 모든 현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세계에 중계됐다. 교종은 성광을 높이 들고 우르비 엣 오르비 사도적 축복을 전 세계에 전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대사의 특전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에 앞서 교종은 이날 수 세기 동안 로마시민들과 함께한 ‘로마백성의 구원 성모성화’가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전염병을 물리친 기적의 십자가가 보관된 성 마르첼로 성당에서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이날 저녁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르비 엣 오르비 축복에 앞서 마르코 복음(4,35-41) 구절을 반영하여 세상이 직면한 위기에 대해 명상했다.

교종의 말씀내용 요약.

베드로의 확고한 믿음을 나타내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오늘 저녁 성모 마리아의 중보와 폭풍의 ‘바다의 별’을 통해 여러분 모두를 주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로마와 전 세계를 포용하는 오늘 행사에서 하느님의 축복이 당신을 위로하는 안식으로 내려오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세상을 축복하시고, 육신의 건강을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약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폭풍의 자리에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와 함께 ‘여러분의 염려를 모두 버리십시오. 현재 몇 주 동안 두꺼운 어둠이 우리 광장, 거리, 도시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사로잡고 모든 것을 귀머거리 침묵과 괴로움으로 채우며 지나가는 모든 것을 막습니다. 우리는 멀리서 그것을 느끼고 사람들의 몸짓으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들의 시선을 멀리합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선미에서 주무시는 동안 배가 가라앉을 위험에 처한 제자들처럼 우리는 두려워하고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은 우리 모든 인류가 같은 배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38절 참조) 제자들의 이 말이 예수님이 움직이도록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폭풍은 우리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우리가 매일 일정을 세운 거짓과 불필요한 확실성을 밝혀내고, 자신을 마비하려는 모든 시도를 드러냅니다. 이번에 드러난 것은 우리의 공통된 인류인 형제자매들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묻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0절 참조) 

그동안 우리 모두는 빈곤층과 병든 사람들의 울음을 무시하고 전쟁과 불의를 향해 중속적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병든 지구에서도 건강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파괴를 진행했습니다. 이제 비로소 폭풍우치는 바다에서 우리는 울부짖습니다. “주님!” 이제는 선택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회심을 요청하시고 우리를 믿음으로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이번 시련의 시간을 선택의 시간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하십니다. 지금은 하느님의 심판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시간입니다. 중요한 것과 지나치는 것을 선택할 때, 필요 없는 것을 버릴 때입니다.

우리는 의료인, 슈퍼마켓 점원, 청소부, 사제, 경찰관과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목숨을 바치면서 반응을 보인 많은 사람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힘은 용기 있고 관대한 자아부정으로 부어지고 형성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신앙이 시작되고 자족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심지어 나쁜 일까지도 맡깁니다. 하느님은 영원하시고 힘이 있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폭풍을 평온으로 바꾸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지금 가장 열악한 가운데 모든 것이 엉망인 것처럼 보일 때 이 시대에 힘과 지지와 의미를 줄 수 있는 연대와 희망을 깨우고 실천하기를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닻이며, 우리를 구속하시는 방향타이시고 우리의 사랑과 희망입니다. 우리는 부드러움과 만날 기회가 없어 고립된 가운데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고난 속에서 그분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성령만이 영감을 줄 수 있는 창의성을 위해 마음속에 그분의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희망을 받아들이기 위해 주님을 품는 것은 믿음의 힘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희망을 줍니다. 복되신 성모 마리아의 중보를 통해 우리 모두를 주님께 맡깁니다.

 

“침묵은 분노에 대한 적절한 대응”

교종, 3월27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27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을 기억하며 봉헌했다. 교종은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운 시기가 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 빠트렸다며 특히 앓는 이들과, 노인, 가족들에게 갈 수단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강론 내용.

오늘 첫째 독서 지혜서(2,1ㄱ.12-22)는 복음에 나오는 훗날 예수님께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적인 역사기록입니다. 그것은 사악한 방식으로 ‘악한 자’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집착하는가를 말해줍니다. 악인들은 고문으로 무죄한 그분을 시험하고 궁극적으로 부끄러운 죽음으로 정죄할 계획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증오가 아니라 악마에 의해 영감 받은 잔인한 분노입니다. 욥과 마찬가지로 마귀는 사람을 하느님과 분리시켜 어떻게든 하느님 사업을 파괴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을 멸망시키려는 이런 유형의 행동은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악마가 예수님을 어떻게 공격했는지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악마는 그리스도인들을 배교로 이끌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가장 정교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문자그대로 극악무도한 짓입니다. 

그러면 이런 맹렬한 공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두 가지 적절한 방법이 있습니다, 즉 대화나 침묵유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받아야 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지만 말씀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침묵하셨습니다. ‘분노의 정신’에 직면했을 때, 예수님은 침묵으로 그들의 열정을 꺾으셨습니다. 침묵은 또한 가십과 같이 우리가 매일 직면하는 소소한 분노의 행동에 대한 적절한 대응입니다. 주위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험담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괴롭힘’입니다. 박해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을 파괴하기 때문에 일종의 분노입니다. 우리는 대화해야 할 때는 대화해야 하지만 분노의 정신에 대면하여 침묵을 지킬 용기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주님께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소서”

교종, 3월26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26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중 다양한 두려움에 대처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두에게 관심을 표했다. 교종은 “요즘 많은 고통과 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요양원, 병원 또는 자신의 집에 혼자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노인에 대한 두려움. 정규직이 없고 자녀에게 음식을 주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의 두려움. 많은 공무원의 두려움. 그들은 현재 사회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아플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신뢰하면서 이러한 두려움을 정복하도록 도와주실 것을 기도합시다.”고 말했다. 

강론 내용.

오늘 제1독서(탈출기 32,7-14)는 우상숭배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해 줍니다. 또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우상숭배자로 바뀌는지 보여 줍니다. 그들은 모세가 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잃어버립니다. 지루했던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위한 그들의 향수가 기다림을 능가했습니다. 이는 진정한 배도입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으로부터 우상숭배까지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을 기다리는 법을 모릅니다. 향수는 우리의 질병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향한 열정으로 걷기 시작하지만 불평은 시작됩니다. “정말 힘듭니다. 사막이야. 목이 말라요 물을 원해요 고기를 원해요, 이집트에서 우리는 좋은 것을 먹었는데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상숭배는 선택적입니다. 향수는 당신의 과거 좋은 것들만 생각하게 합니다. 당신의 나쁜 것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선택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 있을 때 식탁에 있던 좋은 것들만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노예였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우상숭배는 모든 것을 취합니다. 선택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기 위해 금과 은을 모두 넘겨주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선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집트인들에게 탈출하기 전에 금을 요구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바로 하느님이었습니다.

이러한 매커니즘은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우상숭배로 마음이 이끌릴 때 우리는 하느님과 멀어지게 마음이 고착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 우리의 의지, 사랑, 마음으로 또 다른 신을 만듭니다. 우상을 만들기 위해 하느님의 선물을 사용합니다. 우리 집에 있는 성모님이나 십자가 형상은 우상이 아닙니다. 우상은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 마음에 어떤 우상이 숨겨져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합니다. 우상숭배는 우리의 기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선택된 사람들도 그들이 만든 우상을 숭배하기를 원했습니다. 한 가지 방법으로 성찬식을 세속적인 축하행사로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각자 자문해 봐야 합니다. “내 우상은 무엇입니까?” "어디에 숨길까?" 이 질문들이 오늘 독서의 결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삶의 끝에서 당신을 찾지 말라고 말씀하길 바랍니다. “너희는 배교했다. 내가 표시한 방식에서 벗어났다. 너희는 우상 앞에 엎드렸다.” 우리 각자 자신의 우상을 인정하는 은혜를 주님께 구합시다.

 

교종 “성주간 전례 신자 없이 베드로 대성당에서”

바티칸은 4월5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성주간과 12일 부활 대축일까지 프란치스코 교종의 전례는 신자들의 참석이 없는 가운데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차질 없이 거행되며 전 세계에 TV로 중계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순절의 절정인 성주간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엄숙한 시기로 그리스도의 열정, 죽음, 부활의 엄숙한 신비를 축하한다. 9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는 오후 6시 시작되며 주님수난 성금요일에 전통적으로 콜로세움에서 거행된 십자가의 길 행렬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열린다. 마찬가지로 4월11일 부활성야 미사와 12일 부활 대축인 미사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되며 전통적인 ‘우르비 엣 오르비’ 축복으로 막을 내린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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