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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되었네

기사승인 2020.04.28  15: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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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27]

이모한테서 카메라를 얻은 다울이, 처음엔 작동법을 잘 모르니 사진 찍는 용도로만 사용하다가 몇 달 전부터 동영상 찍는 법을 알아내어 감독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주위에 널린 배우들(다랑, 다나, 삐삐, 아니카, 정겨울, 정다울)을 현장 섭외하여 갖가지 영화를 만드는 거다. 지금껏 만든 영화만 해도 족히 수십 편은 될 터인데 대부분이 괴물 영화나 재난 영화다. 쫓고 쫓기고 까불고 소리 지르는 아사리난장판 같은 영화라나? 제대로 된 영화 좀 찍어 보라는 나의 타박에 다울이는 이렇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나도 제대로 된 영화를 찍고 싶은데 배우들이 말을 안 들어. 완전히 제멋대로라고....”

그래도 아주 가끔은 배우들의 연기력과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그럴싸한 작품이 나올 때도 있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골담초 꽃을 따 먹는 다랑이 다나를 보더니 영감이 떠올랐다며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영화 제목은 '두드러기 박사와 알레르기 박사'인데 다랑이한테는 두드러기 박사 역할을, 다나한테는 알레르기 박사 역할을 맡으란다. 배우 놀이에 익숙한 두 동생들은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아주 간단한 연기 지시를 받는다. 그러고는 리허설 같은 것도 없이 곧장 촬영 시작! 요즘 한창 만발한 배추꽃밭을 무대로 두 배우가 자리를 잡아 선 채, 다울 감독의 나레이션이 울려퍼진다.

(카메라가 두드러기 박사를 향하며, 두드러기 박사는 배추꽃을 따 먹고 있다.) 옛날에, 꽃을 따 먹으며 두드러기를 연구하는 박사가 있었다. 

(카메라가 알레르기 박사를 향하며, 알레르기 박사는 배추꽃에 코를 들이대고 있다.) 한편, 똑같은 꽃을 가지고 알레르기를 연구하는 박사도 있었다. 

(카메라가 두 박사를 향하며) 그러던 어느 날, 두 박사는 서로 자기의 연구가 훌륭하다며 뽐내다가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카메라가 두드러기 박사를 향하며) 두드러기 발사!

(카메라가 알레르기 박사를 향하며) 알레르기 발사!

(카메라가 두드러기 박사를 향하며) 두드러기 발사!

(카메라가 알레르기 박사를 향하며) 알레르기 발사!

(카메라가 두드러기 박사를 향하며) 두드러기 발사!

(카메라가 알레르기 박사를 향하며) 알레르기 발사!

(카메라가 꽃밭에 쓰러진 두 박사를 향하며) 그러다가 결국 두드러기 박사는 알레르기 때문에, 알레르기 박사는 두드러기 때문에 죽고 말았다. 

꽃 먹는 아이들. ⓒ정청라

다울이가 허밍으로 내는 쓸쓸한 느낌의 엔딩곡이 울려퍼지며, 마침내 촬영 끝! 다울 감독은 단 한 번의 엔지도 없이 영화 촬영을 성공적으로 마친 게 몹시 흡족한지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소리쳤다.

“지금 곧 영화 상영회가 열릴 거야. 얼른 집으로 들어와.” 

얼른 오라고 어찌나 성화인지 다나도 나도 집으로 들어갔는데 다랑이가 좀처럼 나타나질 않았다.

“다랑이는 왜 안 오지? 야, 박다랑, 지금 안 오면 안 보여 준다.”

“다랑이 오빠 빨리 와. 영화 보여 준대!”

아무리 불러도 안 나타나서 나가 봤더니 다랑이는 그때까지도 배추밭에 쓰러져 있었다. 내가 거기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아주 바보 같은 표정으로 하는 말.

“엄마, 꽃밭에 누워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 나 여기서 살고 싶어.”

그렇게 한참이나 누워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더니 나중엔 다나까지 합세하여 둘이 함께 뒹굴거린다. 마침내 꽃밭에 집까지 짓는다. 이불 깔고, 베개 놓고, 간식 통과 인형도 갖다 놓고, 급기야 윗옷과 양말까지 벗어 꽃장롱에 넣고, 아예 살림을 차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집은 꽃밭 집인 걸 이제 알았다나?

꽃밭 만세! ⓒ정청라

하도 행복해 보여서 배추 꽃밭 옆으로 울금 심은 밭이나 밟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당분간은 그 밭을 집터로 내어 주기로 했다. 그랬더니 이 녀석들 벌써 며칠째 그곳을 아지트로 삼아 세를 넓혀 가고 있다. 이웃집 아이들까지 배추 꽃밭에 새로 이사를 오고, 다울이는 조금 떨어진 밀밭에 본부를 만들고, 식량이라며 배추꽃은 물론 골담초꽃, 돌나물, 달래 같은 거 즉석에서 마구 따다 먹으며 말이다.  

다른 밭까지 짓밟을까 봐 못내 걱정스러운 나는 ‘너희들은 꽃밖에 안 보여서 좋겠다‘고 궁시렁거리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꽃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아이들 덕에 온 세상이 꽃처럼 환해지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온갖 만행(?)을 봐도 못 본 척 애써 눈을 감고, ‘꽃이 되었네’ 노래나 흥얼거려 본다. 

 

꽃이 되었네

꽃이 되었네

온 세상이 다 꽃처럼 됐네

꽃이 되었네

꽃이 되었네

온 세상이 다 꽃처럼 됐네

 

(작사/작곡 : 박다울)

밀밭에서 낮잠. ⓒ정청라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정청라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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