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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듣는 존재입니다

기사승인 2020.04.29  14: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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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우 신부] 5월 3일(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사도 2,14ㄱ.36-41; 1베드 2,20ㄴ-25; 요한 10,1-10

2018년 3월 한 원로 신부님께서 사제들이 받아 보는 한 소식지에 ‘신학교가 너무 많다’라는 글을 기고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처음은 이렇습니다. 

“요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부산신학교가 내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고 지원자들을 모두 대구와 광주의 신학교로 보내기로 했단다. 신학교 문을 닫을 날이 머지않다는 말인가? 지원자가 현저히 줄어서 정원을 채우기 어렵고 그나마 몇 안 되는 신입생들은 수준이 떨어져 수학 능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니 독립적인 신학교를 운영하는 게 여러모로 득보다는 실이 너무 크다는 게 이유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이런 넋두리를 했습니다. “그렇다. 나는 지원자가 현저히 줄어서 정원을 채우기 어렵고 수준이 떨어져 수학 능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표현된 부산신학교를 졸업해서 지금 사제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나는 내 모교, 사제직을 꿈꾸게 해 준 부산신학교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너무 화가 난다. 혹여나 이 글을 접할 후배신학생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 

안 그래도 끊임없이 사제 성소가 줄어들고 있는 이 시기에 그 글의 표현에 따르자면 “수준이 떨어져 수학 능력이 의심스러울 정도”의 수준으로 사제직을 준비하는 신학생들의 마음이 어떨지 한동안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적어도 제가 만나본 우리 교구 후배 신학생들과 이웃 마산교구 신학생들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움을 넘어 화를 낸 후배들도 많았습니다. 제 생각에도 이런 표현은 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신학생들의 못자리가 옮겨지기 전 2019년 12월 겨울 방학을 앞두고 부산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감사미사가 봉헌됐습니다. 그날에는 부산신학교를 졸업한 선배사제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점심식사를 같이하면서 선후배 신부님들과 신학교에 대한 추억을 서로 이야기하며 그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성소 주일입니다. 그래서 문득 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많은 신부님은 신학생 때 나름 성소주일 행사를 치르던 기억들이 있으실 겁니다. 행사준비부터 청소까지 매년 쉽지 않은 일들이었는데 이젠 그 시절이 당분간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그리움도 함께 느낍니다. 사제로서 그리고 부산교구 사제로서 성소 주일을 맞이하는 것은 그리 가벼운 마음이 아닙니다. 신학생 시절 성소주일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신학생 약 15명이 새벽에 따로 주일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매년 줄어드는 신학생 수로 큰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요. 

2019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신학생들과 졸업생 신부들과 함께. (사진 제공 = 유상우)

이번 주일의 복음은 양과 목자의 비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미사를 주례하셨던 신부님께서 목자와 양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전통적인 교리 속에서 사제는 목자이고 신자들은 양이지요. 목자인 사제는 양떼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사목적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신부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제도 예수님 앞에서는 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그저 양일 뿐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사목자이지만 주님 앞에서는 한 마리 양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정한 목자는 주님 한분밖에 계시지 않는 것이지요. 결국 신학교 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 다른 목소리에 치우치지 않고 그분의 뜻에 따라갈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제 성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성소 역시 결국 주님의 양으로서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그 핵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양이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양은 고집이 셀 수도 있고 어떤 양은 조금 느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양은 성격이 조금 급할 수도 있고 어떤 양은 그 우리를 탈출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다양한 양들 속과 함께 주님은 우리를 주일 영성체 후 기도의 표현대로 “하늘의 영원한 풀밭”으로 이끌고 가십니다. 양들끼리 함께 잘 어울려 한 목자 밑에서 한 우리 안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양은 목소리를 내는 존재가 아니라 목소리를 듣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것도 아무 소리나 듣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살릴 목자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많은 교구에서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재개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이웃 교우분들을 만나는 기쁨도 맞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기쁨과 함께 같은 양들끼리 질투하고 뽐내기보다는 내 내면에 울려오는 하느님의 소리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울려퍼지는 그분의 뜻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주일이 되시길 소망해 봅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유상우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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