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단단한 벽에 천천히 구멍 내는 것"

(맷 멀론)

나는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갈 때마다 뉴욕이 미국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의 중심지라는 것을 믿기 어려운 때가 가끔 있다.

물론 징표들이 있기는 하다. 절대 잠들지 않는 도시라던 뉴욕이 기괴한 침묵만 내고 있다든지, 인적이 드문 보도를 따라 죽 늘어선 가게들이 줄줄이 다 문이 닫혀 있다든지. 그리고 더 불길한 징표로는, 우리 동네 병원 바로 밖에 임시 시신안치소로 쓰이는 견인식 냉동 트레일러가 서 있기도 하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럼에도 위기 상황이라고 느껴지지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위기란 아주 나쁜 뉴스가 급속히 터져 나오는 상황이거나 어떤 충격적 사건이 갑자기 일어나고 그 뒤를 이어 아주 크고 혼란스런 일이 비교적 단시간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들 대다수가 (미국이 격리봉쇄를 한) 지난 두 달간 우리가 겪은 것은 아주 깊은 트라우마이고, 이 상처는 에벌린 워를 인용하자면 “멍든 데에 주먹질”을 당한 것이었기에 더 나쁜 트라우마였음을 이제야 겨우 알아보기 시작할 정도로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훨씬 이전부터 위기와 곤경에 처해 있었음을 잊기 쉽다. 가톨릭 교육기관들이 좋은 예다. 미국가톨릭교육협회에 따르면, 2009-19년 사이에 12개 주요 도시 교구의 가톨릭 초등학교 입학생 수는 27.5퍼센트 줄었고 나머지 교구에서는 19.4퍼센트 감소했다. 도시 지역에 있는 가톨릭 학교들이 쇄신 없이 정체된 이유의 하나다.

그럼에도 쇄신과 변화를 위한 노력들은, 보통 때는 물론 이번 코로나19로 아주 심각한 장벽을 만났다. 각지 가톨릭 학교와 직접 관련된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는데, 이는 어려운 입장의 사람들(이른바 가난한 학생들)에게 더 큰 위기가 되는 방식이었다.

텍사스 주 갈랜드에 있는 굿셰퍼드학교의 게일 리처드슨-바셋 교장은 최근 <아메리카>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 학생 상당수는 저소득층인 히스패닉 가정 출신인데, 이들 가정은 자녀들을 가톨릭 학교에 보내기 위해 상당한 희생을 치릅니다. 그런데 코로나 대유행으로 이들 가운데 많은 부모가 이제 아무런 수입이 없게 됐습니다.”

뉴욕의 경우, 브롱크스 구역에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학교 학부모들 가운데 이번 코로나 사태로 정리해고된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이 때문에) 뉴욕 대교구는 일부 모금을 하기도 했지만, 벌써 6주 전에 돈이 떨어졌다.

따라서 미국의 가톨릭 주교들이 가톨릭 학교 교장들을 포함한 신자 600여 명과 더불어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과 한 화상회의에서 가톨릭 교육기관 (지원)에 초점을 두기로 결정한 것은 이해가 된다. <크럭스>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뉴욕 대주교인 티머시 돌란 추기경은 맨 처음 발언에 나서 "교육은 ‘부모의 권리, 교육의 공평성,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시민적 권리’에 관계된다고 말하면서 교육에 초점을 맞췄고,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의 코로나 관련 여러 지원 정책에 '비영리, 종교 단체들과 우리 학교들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용기 있게 주장'한 데 대해 감사해 했다"고 한다.

4월 24일, 백악관에서의 코로나 대책반 일일 브리핑 중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 (사진 출처 = americamagazine.org)

하지만 <크럭스>가 확보한 한 녹음 파일에 따르면, 돌란 추기경은 이 자리에서 또한 (이러한 지원정책에서) 각 학교에 주는 자금은 이번 학년도만 확보되어 있고, 새 학년이 시작되는 오는 9월이 되면 어찌될지 많은 가톨릭 학교가 “상당히 불안”해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주교들이 화상회의에서 한 발언들을 일부 가톨릭 신자들은 비판하고 있다. 이민 문제와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 온 외국인혐오를 강조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낙태 문제를 너무 강조하도록 내버려 뒀으며, 비판할 거리가 넘치는 트럼프와 너무 좋은 관계를 보였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주교들이 잘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대화를 (가톨릭교회가 자신을 지지했다는 식으로) 정치화하기로 선택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항상 그런 식이었던 대통령의 스타일과 별개로 주교들은 전술적으로 좋은 선택을 했다.

(역자 주- 25일의 이번 대화는 돌란 추기경이 주도해서 마련한 자리였다. 보스턴 대교구의 션 오말리 추기경, 주교회의 의장인 로스앤젤레스 대교구의 조스 고메스 대주교 등이 참석했다. 이에 대해 <폭스뉴스>는 “돌란 추기경, 트럼프의 리더십에 경탄한다고 발언”이라고 제목을 잡았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가톨릭 주교들은 트럼트 지지로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칼럼을 실었다.

가톨릭 매체인 <NCR>은 돌란 추기경이 자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단지 미국 사회가 양극화된 상황에서 시민성을 보여 주려 했을 뿐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자리를 통해 그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며, 명성과 권력이라는 유혹에 빠져 자신이 자신의 영향력을 선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착각했다고 비판하는 칼럼을 실었다.) 

주교들은 좋든 싫든 미국의 대통령과 3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대통령이 화제를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다른 문제들보다 낙태 문제를 더 많이 말하게 됐을 수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는 낙태(금지)에 대해 미국 주교들과 의견이 달랐지만 지금은 의견이 같다. 주교들은 이민 문제를 이야기할 수도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 문제에 관해 주교들과 의견이 크게 다르며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아니면 주교들은 가톨릭 교육기관 지원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었는데, 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교들에게 동의하여 무언가를 해줄 듯한 사안이다.

나는 미국 주교들이 “한 무리의 정치인들”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 말이 맞다면, 이들은 별로 좋지 않은 정치인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치인이라면 대부분 하지 않을 전술적 선택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정치인이 아니다. 이들은 가끔 정치에 관여해야 하는 사목자들이다. 그렇게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고 또 이들은 실수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 주교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보다는 그래도 뭔가를 이루려 애를 썼다. 그래서 잘 선택한 것이다. 막스 베버가 말했듯, “정치란 단단한 판자에 힘들지만 천천히 구멍을 내는 일”이므로.

(맷 멀론 신부(예수회)는 <아메리카 미디어> 회장이자 편집장이다.)

기사 원문: https://www.americamagazine.org/politics-society/2020/04/28/trump-bishops-white-house-call-plight-catholic-schools-corona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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