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수평 십자가. (이미지 출처 = Piqsels)

21세기 십자가

- 닐숨 박춘식

 

 

반투명 유리 성당을 지으면서

제단 벽의 주님께서 두 팔을 옆으로 길게 뻗어

모든 존재를 포옹하는 형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주님의 오른팔은 벽 따라 뻗어 성당 문까지,

주님의 왼팔은 벽 따라 쭈욱 성당 문까지,

그러면

성당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신자는

주님의 왼손을 잡게 되고

성당 왼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신자는

주님의 오른손을 잡고 들어와 십자성호를 그으면

강강술래 하듯 주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이름하여 ‘21세기 십자가 성당’에서

첫 미사는

가장 겸손한 사제를 모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의 미발표 시(2020년 5월 18일 월요일)

 

수직 형태의 십자가를 이천 년 바라보았으니 이제는 두 팔을 옆으로 길게 펴는 수평의 십자가를 모시고 싶습니다. 1960년대 미사도 우리말로 봉헌하고 또 사제가 돌아서서 신자를 향하여 미사를 드리는 기적(?) 아닌 기적 같은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사제들이 농담하기를 ‘벽 십자가를 보고 미사 드리는 뱡향이 180도 전환하는 즉 신자들을 바라보고 미사를 드리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데 2000년 걸렸다' 하고 농담하였습니다. ’천주교가 그렇게 보수적이다‘라는 말로 비꼬았고, 특히 '종도신경(사도신경)만 아는 늙은 주교들이 이런 큰 변화에 손을 들어 준 일은 천지창조 이후 처음이다'라고 말하며 사제들은 웃었답니다. 다 아는 말이지만 공의회는 주교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니까, 다음 공의회는 신부들만 모여서 결정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생각으로는, 주교들만 모여서 공의회를 10번 하여 세 가지가 변화되었다면, 신부들은 한 번 공의회로 10가지나 15가지의 큰일이 결정되리라 여깁니다. 그 다음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함께 공의회를 한다면, 진정으로 놀라운 일들이 새롭게 변화되리라 여기지만, 그 근엄한 주교들이 그 높은 어른들이 오천 년 세월이 흐르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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