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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받으소서’는 충분치 않았다. 기후변화에 집중하자

기사승인 2020.05.20  11: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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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든 것은 피할 수 없는 사태가 잠시 연기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 iStock/baona)

(마크 그레이엄)

2014년 가을, 이듬해에 있을 파리 기후회의를 앞두고 기후변화에 관한 교황 회칙이 쓰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회칙을 통해 교회가 탄소중립성 개념을 받아들이고 결국은 성취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한 횃불이 되기를 기도했다. 이미 반세기 전부터 온실가스 축적이 거대한 환경문제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리우 지구정상회의(1992)나 교토 의정서(1997), 코펜하겐 협정(2009)을 비롯해 여러 국제회의나 협약이 있었음에도, 지구적 대응은 밤하늘의 희미한 별빛만큼이나 적었다.

그리고 이 회칙이 전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들을 크게 격동시켜 움직이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포괄적인 기후변화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 찬 팡파르 소리가 귀를 울렸다. 이렇게 교회의 움직임과 정치적 결정이 함께 맞물리면 지구 차원의 기후변화의 흐름을 되돌리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새 시대를 여는 정치적 모멘트가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는 2015년 5월에 발표됐고, 몇 달 뒤에는 파리 기후협약에 187개국이 서명했는데, 이들 나라는 전체 온실가스의 87퍼센트를 배출하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 행성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런 낙관주의는 이제 보니 너무 순진하게 보인다.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국제적 보고는 그 뒤로 모두 우울한 내용이었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대한 최신 평가인 유엔환경계획(UNEP)의 “배출량 격차 보고서 2019”에서는 ‘찬미받으소서’와 파리 기후협약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별 효과가 없었다고 보고 있다.

지난 10년간, 지구 차원의 온실가스 배출은 실제로는 연평균 1.5퍼센트 늘었고,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든 것은 피할 수 없는 사태가 잠시 연기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파리 기후협약에서 전 세계 평균 기온의 상승을 1.5도 이하로 막기로 목표했던 것을 이루자면, 지금 2020년부터 2030년까지는 온실가스 배출을 해마다 7.6퍼센트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목표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속도 또한 빠른 것으로 보인다. 더욱 징조가 안 좋은 것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오는 2030년이 중요한 시한이며, 이때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기후 관련 재앙이 일어날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경고한 것이다.

이처럼 실적이 안 좋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찬미받으소서’가, 내 기대와는 어긋나게, 지구적 기후변화에 집중하지 않고, 기후변화가 여러 가지 주의해야 할 환경문제 가운데 하나일 뿐인, 가톨릭 환경론에 관한 더 폭이 넓은 문건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회칙에서 유전자조작 농산물(GMO), 생물다양성의 손실, 안전한 식수의 부족 문제, 지구 차원의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여러 문제들을 다뤘다. 이전에 나온 교황 회칙들의 환경에 관한 언급들은 근처에 가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이 회칙에서 다루는 환경문제는 폭이 넓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찬미받으소서’의 약점이다. 모든 환경 문제가 다 같은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적 기후변화는 잠자는 괴물이다. 일단 잠에서 깨어나면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위협하는 심술궂은 괴물로서, 모든 생태계와 모든 생물에 영향을 끼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있었던 5번의 대멸종 사태 가운데 4번은 급격한 기후변화가 직접 원인이 되어 일어났고, 현재의 기후변화 속도가 유지된다면 우리가 또 다른 대멸종 사건이 일어나는 사망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확실한 근거가 있다.(퓰리처 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여섯 번째 대멸종”을 보라.) 지구와 그 거주 생물들의 건강을 갉아먹는 여러 대규모 환경 해악들이 있지만, 이런 문제들은 현재 속도로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로 일어날 파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기후변화는 인간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생물학적 대학살을 불러올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지구적 기후변화가 제일 중요하고,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으며, 또한 불길한 일이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가능한 전략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지금처럼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계속해서 집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성공할 기회의 시간은 급속히 지나가고 있고, 따라서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이 문제에 관심과 자원을 더욱 집중해야 한다.

다른 대안은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믿음에 근거해 순응하자는 것으로, 최악의 기후변화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작업에 우리가 가진 에너지와 자원을 돌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력망과 터널이 더욱 거세질 폭풍우에 견디도록 미리 보강한다든지. 그런데 기후변화로 일어날 사태에 대한 평가보고서들을 읽어 보면 그 누적 효과는 머리가 아찔하고 힘이 쭉 빠질 정도다.(데이비드 월러스 웰즈가 쓴 “2050 거주불능 지구”를 읽어 보면 조금 감이 올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재앙을 그저 좀이라도 줄여 볼 열정조차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바람직한 행로는 기후 재앙 자체를 피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필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찬미받으소서’에서 놓쳤던 부분을 다시금 집어내어 새 문서를 발표함으로써 조만간에 가톨릭교회가 탄소중립성을 이루도록 명하는 것이다. 세계는 대담한 리더십과, 가장 폭넓고 효과 있게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수행할 창조력 발휘를 필요로 하고 있다. 물론, 세계 곳곳의 다양한 생물권에 시험, 적용될 수 있는 모델들을 만드는 데는 지역 차원의 노력들도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온실가스를 의미 있게 줄이기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약 10년이 있고, 그래서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 너머를 보고 지구적 기후변화를 각자의 윤리적 레이다 스크린의 전면과 중앙에 두라고 고무하기를 바란다. 만약, 프란치스코 교황이 늘 말하듯, 자비가 교회의 존재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이고 하느님 사랑을 깊이 있게 드러내는 것이라면, 교회가 그리스도교 탄생 이래 인류가 당면한 가장 무서운 위험을 억누르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스스로 지닌 상당한 자원을 동원하는 것보다 더 큰 자비가 어디 있겠는가.

(마크 그레이엄은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빌라노바 대학 신학종교학부에서 대학원생 프로그램 담당이자 신학적 윤리학 부교수를 맡고 있다.)

기사 원문: https://www.americamagazine.org/politics-society/2020/05/18/laudato-si-was-not-enough-vatican-needs-prioritize-climate-change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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