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 정민아]

'미스 비헤이비어', 필립파 로소프, 2020. (포스터 출처 = 판씨네마(주))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인 지금, 극장가는 재개봉 고전영화나 저예산 독립예술영화로 관을 채우고 있다. 어차피 적게 들여 조금 거둬 들이는 저예산 영화의 특성상, 흥행 스코어를 보면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여 크게 다르진 않다. 이런 와중에도 좋은 저예산 영화가 계속해서 개봉하고 있으며 개봉 기간을 짧게 두고 재빨리 다음 플랫폼으로 넘어가니 온라인으로 최신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 많아졌다.

홀로 하는 놀이가 포스트 코로나 이후 문화의 대세가 될 것인데, 이는 유통 플랫폼이나 놀이 형식의 문제이지 콘텐츠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양적으로 더 많은 콘텐츠를 요구하는 시대다. 그러니 영화 콘텐츠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온라인 기반의 다양한 대안 플랫폼이 요구되고, 참여형 놀이문화로의 전환이 발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번 주 개봉하는 '미스 비헤이비어'가 슬쩍 사라지지 않고 토론과 수다 속에서 오래도록 회자되길 바라며 소개해 보고자 한다. 제목은 미스월드를 꼬아서 ‘행동하는 여성’으로 바꾸어 놨다. 영화 키워드는 영국 실화, 미스월드대회, 키이라 나이틀리와 제시 버글리, 제작진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된 영화, 1970년 등이다. 키워드만 가지고도 영화가 뭔지 충분히 알려준다. 미스월드를 반대하는 페미니스들의 활약? 빙고, 맞다. 그러나 이 한 줄 정의로 영화가 전하는 본심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그때 여성운동가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미인대회가 열리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고, 그리고 그 대회에서 흑인 여성이 사상 최초로 우승했다. 영화는 부당한 성차별에 저항하는 백인 페미니스들과, 동시에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전의 통로로 이 대회를 활용한 흑인 여성도 있다는 점을 한 데 놓는다.

'미스 비헤이비어'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판씨네마(주))

샐리(키이라 나이틀리 분)는 남자친구와 함께 사는 싱글맘이다. 그녀는 역사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하지만 여성은 논쟁에 끼어 주지 않는 학계 분위기에서 머쓱해 하고, 지도교수는 샐리가 졸업논문으로 여성노동자에 대해 써 보겠다고 하자 그런 협소한 주제는 논문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핀잔을 준다. 조(제시 버클리 분)는 페미니스트 공동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페미니즘 슬로건을 그라피티로 표현하는 길거리 예술가다. 샐리가 이성적으로 여성운동에 접근한다면, 조는 급진적 신념으로 무장한 행동가다. 이 두 유형의 젊은 페미니스트는 런던에서 개최되고 전 세계에 TV로 방송되는 미스월드를 타깃으로 삼는다.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성 상품화를 두고 볼 수 없어 대회를 망가뜨려야겠다는 결심과 전국적으로 페미니즘 활동을 알릴 수 있다.

무대 위에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자신의 활로를 스스로 개척한 한 여성도 있었다. 때는 68혁명의 흐름이 잠잠해지며 사회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은 사회적 부조리에 가만 있지 않았다. 남아공의 흑백차별 정책인 아파르티헤이트에 대한 공격이 정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고, 유럽의 백인 기득권은 미스월드를 흑백 인종의 화합의 장으로 포장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남아공 대표와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 그레나다에서 온 제니퍼(구구 바쇼-로 분)는 언론이나 대중이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미스 비헤이비어'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판씨네마(주))

서둘러 미스월드를 호명하고 후다닥 끝내버린 난장판에서 샐리와 제니퍼가 조우한다. 제니퍼는 흑인 여성인 자신에게 결코 허락되지 않았을 꿈을 미스월드를 발판으로 구체화하고 흑인 아이들에게 희망을 보여 주었다. 누군가는 미인대회를 한심하게 생각해도 누군가에게는 차별과 냉대의 현실을 딛고 일어설 유일한 구원의 줄이었던 것이다.

사적인 영역의 여성해방을 추구했던 2세대 페미니즘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그 시기에 두 여성이 만났다. 다양한 인종과 계층으로 확대된 3세대 페미니즘은 90년대가 되어서야 출현했지만,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는 그녀 각자의 페미니즘은 일상에서도 실천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스 비헤이비어'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판씨네마(주))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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