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정의 휘청휘청: 흔들리는 모두에게]

요즘처럼 ‘사상 초유의’라는 수식어를 많이 쓰고 그것이 어울리는 시기가 있었던가. 사상 초유의 개학연기 사태를 지나, 최초의 온라인 개학이 시기를 지나, 처음 보는 광경의 오프라인 개학이 시작되었다. 개학이라는 단어 앞에 온라인/오프라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3차례에 걸친 오프라인 개학이 시작되던 중에 시간표 사진 하나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언뜻 보면 평범했다. 1-7교시까지의 시간을 적어 두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상했다.

논란이 된 어느 중학교의 시간표. (이미지 출처 = 5월 27일 '오마이뉴스' 기사 갈무리)

각 교시가 끝나는 시간과 다음 교시가 시작하는 시간이 일치한다. 즉 쉬는 시간이 사라진 것이다. 35분씩 7교시를 연달아 진행한 뒤 하교한다. 점심시간을 없애고 오후 수업 없이 하교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런 시간표를 짰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이를 두고 아동학대다, 방역을 위해 공백을 최소화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갑론을박이 일었고 기자들은 해당 학교, 교육청과 짧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해당 학교 교장선생님은 힘들어 하는 학생도 있겠으나 개인의 의견일 뿐 교사들은 대체로 만족한다고 답변하였다. 쉬는 시간 0분, 70분 수업 후 5분 쉬는 시간과 같은 인권침해급 휴식권 박탈이 결정권자들에 의해서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감염병이 한창인 와중에 교육당국의 지침상 오프라인 등교를 준비하며 각종 안내문 부착, 투명가림판 설치, 등하교 학생들 발열체크, 마스크 체크, 가정출석생 온라인 확인에 현 시점에서 몰아칠 것이 분명한 각종 행정공문 처리까지 하고 나서야 수업 준비를 할 수 있는 선생님들과 학교 행정부를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결단코 없다. 그러나 이 중차대한 결정들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점에 대해서 누군가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어떤 기사는 쉬는 시간 없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 인터뷰를 자세히 소개하기도 하였다. 매 수업이 끝나기 5분 전 화장실에 갈 사람이 있는지를 묻고 가겠다는 학생은 보내주는 식으로 운행한다는 학교의 학생은 생리하는 학생들의 고충을 전하기도 하였고, 그 기사의 댓글에는 쉬는 시간 없이 연속으로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 선생님들의 고충도 전해졌다. 쉬는 시간을 없애고 점심시간에 말 한마디 없이 밥을 먹는다고 한들 점심을 먹고 난 이후 학생 수십 명이 화장실에서 동시에 양치를 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러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는 한동안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학기를 진행하고 그런 상황을 함께 책임져야 하는 교육부, 교육청, 질병관리본부, 학교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들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실. (사진 출처 = Flickr)

개학에 대한 결정은 어떠했나. 오프라인 개학 전 등교 날짜가 몇 차례 연기되었다. 교육부가 연기를 고민할 때마다 학부모와 시민들의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학교에 가야 하는 청소년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인터넷 강의는 이제 지긋지긋해서 학교에 가고 싶었을까, 종일 마스크를 쓰기 답답하고 혹시 모르는 감염의 위협에 학교에 오라는 소집이 꺼려졌을까. 다시 확산 추세인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의 불안감에 대하여 연일 보도되고 있다. 학교에 보내지고 있는 학생들은 어떤 생각일까. 지금처럼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다시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까. 마스크가 답답하고 쉬는 시간이 줄어든 수업이 힘겹지만 그래도 친구들을 보러 계속 등교를 하고 싶을까. 

계절이 변하도록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바이러스를 겪으며 한국 사회도 몇 번의 포인트 되는 시점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쏟아지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교육의 주체인 학생들의 목소리는 왜 어디서도 들리지 않을까.

당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진행한 ‘팬데믹 시대 신앙실천’ 설문조사 항목 중에는 다음의 의견에 대한 동의 정도를 묻는 것이 있었다. ‘미사 중단 결정은 신자들과도 상의했어야 한다’ 응답결과 사제/수도자는 53퍼센트, 신자들은 59퍼센트나 '매우 동의' 혹은 '동의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난다. 

설문에 참여하면서 이 질문을 보았을 때 처음엔 의아했다. 어차피 방역지침을 따라야 할 것이고 주교님 선택에 달린 일인데 신자들한테 물어서 뭐하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의견을 물어 주길 바랐다는, 의견을 묻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미사중지라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환경과 그러한 결단을 내릴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지 모두가 알더라도 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길 바랐다는 이 설문결과는 앞으로 교회가 새겨야 할 목소리일 것이다.

꼭 반영되지 못하더라도 내 말을 듣고 있다는 신호가 중요한 것 아닐까. 개학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당연히 매우 다양하다. 미사중단과 재개방침에 대한 신자들의 의견도 매우 다양하다. 아마 이들의 이야기를 묻고, 듣고, 결정하였다 하더라도 학교의 방침이, 교구의 방침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주체의 한 사람인 나의 의견을 듣기 위하여 노력하였는지 보이는 것과 아닌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또한 귀히 여기는 것이 민주주의 아니던가.

장예정(소피아)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인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본당에서 청소년들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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