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이미 1452년에 노예사냥과 무역 허가

(섀넌 디 윌리엄스)

미국에서의 경찰 폭력과 체계적 인종주의가 곳곳에 번지는 데 대한 항의는 계속해서 확대되어 왔던바, 가장 최근으로는 이번 조지 플로이드, 브레오너 테일러와 아마우드 아버리가 죽임당한 사건에서 볼 수 있었고, 이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기념비적인 갈림길을 제시했다.

다양한 색조와 신념을 지닌 항의시위대가 “이제 그만!” 외치는 소리가 그간 인류를 향해 저질러진 이들 범죄들과 교차하는 곳에는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이 등장한 이래 미국의 흑인 사회와 아프리카인 실향민들의 목을 죄어 왔던 반 흑인(anti-Blackness) 사고방식과 폭력이라는 지구적 체계가 놓여 있다. 이번의 살인들과 항의들이 흑인과 갈색인이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일어났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는 우리 사회 안의 백인 패권이라는 체계화된 시스템이 제지받지 않고 저지르는 폭력성을 저평가할 뿐이다.

요즘,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 걸쳐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깃발 아래 일부 성직자, 수녀들도 더불어 선 가운데 인종주의를 단죄하는 가톨릭 쪽 입장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교회 경계 안과 밖의 백인 패권이라는 해악에 대항해 오랫동안 싸워온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이는 특히 현대에 가톨릭교회 안의 인종주의에 맞선 싸움을 시작했던 흑인 신자들과, 2013년에 흑인인 트레이번 마틴을 죽였던 조지 짐머맨이 무죄방면되자 세 명의 흑인 여성 활동가들이 지금의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는 해시태그를 만든 뒤 이 구호를 외쳐 왔던 흑인 가톨릭 여성과 청년들에게 더욱 그렇게 다가온다.

하지만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외침을 제도 교회와 많은 비흑인 가톨릭 신자가 받아들이기에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최근에 인종주의와 고조되는 시위에 대해 나오고 있는 가톨릭 쪽 입장들이 반 흑인 인종주의와 노예제, 그리고 현대의 흑백분리라는 죄에 교회가 직접 연관돼 있고 지금의 위기에 교회가 한 역할을 인정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거리가 있다는 것도 말해져야만 한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생명권”이 있다고 하지만, 실상에서는 교회는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에 참여하고 스스로 남북미와 유럽, 아프리카에서의 아프리카인 노예제와 흑백분리를 당당히 실천함으로서 이러한 가르침을 말도 안 되게 거역했다.

15세기에, 가톨릭교회는 지구 차원의 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흑인 생명은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교회는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칙서 ‘Dum Diversas’(1452)를 시작으로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Inter Caetera’(1493) 등에서 아프리카인의 영구적 노예화와 “비 그리스도교” 지역의 정복을 승인했을 뿐 아니라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의 발전을 윤리적으로 인가했다. (역자 주: 니콜라오 5세는 이 칙서에서 포르투갈 왕에게 “그 어디든 (이슬람교도인) 사라센인과 이교도, 믿지 않는 자, 그리스도의 적이 있는 곳이라면 침략, 수색, 포획하여.... 영구적 노예 상태로 만들 권한이 있음을 온전한 사도적 권한으로 허가”했다. 1492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40년 전이다.)

이 노예무역으로 적어도 1250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인이 남북 아메리카와 유럽으로 강제로 실려가 유럽인들의 금고를 넘치게 해 줬고 가톨릭의 금고 또한 그런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이 노예무역으로 거의 4세기 동안 수천만 명의 아프리카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이 죽었다.

지금의 미국이 된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아메리카에 처음으로 아프리카인 노예가 실려 온 것으로 알려진) 1619년 훨씬 전인 16세기에 이미 아프리카인 노예제를 도입했다. 실상, 교회는 식민지 시대부터 미국의 남북전쟁(1860-65) 때에 이르기까지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메릴랜드, 켄터키, 미주리 주 등에서는 기관으로서는 최대의 노예주였던 때가 자주 있었다. 우리는  메릴랜드 주의 저명한 가톨릭 노예상의 후손으로서 가톨릭 신자로서는 미국의 첫 번째 대법관이 되었던 로저 테이니가 수치스럽게도 1857년에 (노예인) 드레드 스콧, 해리엇 스콧 부부와 두 딸이 낸 자유 청원을 기각하면서 흑인은 “백인이 마땅히 존중해야 할 권리가 전혀 없다”고 선언했던 것 또한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드레드 스콧 사건)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은, 남녀 수도회를 포함해, 식민지 시대 동안 최대 노예주들이었다. 브라질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수입된 아프리카인 노예들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곳인데, 이곳에서 예수회는 야만적인 설탕 경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미국의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흑인 브라질인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들인데, 체계적 인종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브라질은 남북미에서 흑인과 갈색 인종을 겨냥한 경찰 살인 비율이 가장 높은 곳 가운데 하나다.

노예제가 폐지되자, 가톨릭 교회는 흑백분리 정책을 실천하는 여러 그리스도교 가운데 최대 규모의 집단이었다. 미국은 초기 300여 년에 걸쳐 백인 신자들보다 먼저 신자였던 흑인들이 많은 역사가 있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가톨릭 기관과 수도회 거의 대다수는 20세기가 되고도 한참까지도 아프리카계 신자들, 특히 미국 태생 흑인들의 입학이나 입회를 제도적으로 막았다. 오직 인종을 근거로.

텍사스 노예해방기념일(6월 19일) 기념물의 일부. 조지 워싱턴 카버 박물관 문화계보학센터, 텍사스 주 오스틴. (사진 출처 = NCR)

역사 기록을 보면 흑인 신자들이 백인 가톨릭 본당과 학교, 병원, 수도원, 신학교와 이웃들이 보여준 지독한 차별과 흑백분리에 마주쳤던, 창자를 비틀어 돌리는 사례들이 넘친다. 그럼에도 이러한 역사가 미국 가톨릭이 경험한 일을 전하는 지배적인 서사에 포함되어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렇게 흑인 가톨릭 역사를 체계적으로 부정하고 지우는 것은 흑인 역사가 가톨릭 역사라는 근본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말 그대로 이 나라를 건설하고 미국 교회를 만들었던 노예화된 이들의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해를 끼치는 백인 패권 체계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체계는 또한 식민주의, 노예제, 흑백분리라는 야만적 역사로부터 계속해서 이익을 누리는 이들의 후손에게도 해를 끼친다.

2020년 새해를 맞아 나는 가톨릭이 노예제와 흑백분리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지 행동계획을 정리하여 <CNS>에 기고한 적이 있다.

● 교회 자신의 노예제와 흑백분리 역사에 대해 공식 사과하기
● 현재 잘 운영 중인 흑인 중심 본당들의 폐쇄조치 중단하기
● 흑인 신자들을 위한 교육제도에 재투자하고 확대하기
● 모든 가톨릭 학교와 신학교에서 흑인과 갈색 인종 가톨릭 역사 교육 필수화
● 가톨릭 대학의 흑인, 갈색 인종 학자들에게 장학금, 연구직, 교수직 주기
● 반 인종주의 여성과 평신도를 공식 교회 지도부에 더 많이 들이기

나는 또한 가톨릭인들에게 흑인 생명을 보호하고 보건의료 체계 안의 인종주의를 제거하며, 무더기 감금과 보석이라는 관행을 끝내고 경찰 개혁과 책임성 강화를 이루자고 촉구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봉기들 속에서, 팬데믹의 결과로서 흑인 지역에서는 실업률이 말도 안 되게 높고 항의시위대를 향해 군사화된 경찰력을 쓰는 경우가 늘고 있는 가운데, 위의 제안에 덧붙여 추가 행동들이 필요하다. 나는 현재 가톨릭의 과거사 보상에 아프리카계 미국 가톨릭 신자들과 아프리카의 신자들 사이에 더 공식적인 연계들을 만들고 장기 교류를 촉진할 기관들의 설립을 포함해야 할지도 생각 중이다. 지난 몇 년간 상당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서구에 사는 아프리카인 실향민들이 아프리카로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이는 백인 패권주의자들이 늘어나고 흑인들을 위협하는 국가폭력 때문이었다.

문서로 기록된바 가장 오래된 가톨릭 교회의 뿌리는 아프리카에 있다. 가톨릭교회가 지금 아프리카에서 사상 최고의 성장률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미국의 주요 가톨릭대학들이 미주리 주의 웹스터 대학의 모범을 따라 아프리카에서 가톨릭이 주요 집단인 지역에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프리카인들이 주도하는 캠퍼스를 설립하고, 유치원에서 대학, 그리고 성인 평신도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서 해외 교류,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중요한 진전이 될 것이다.

나는 아직은 미국에서 흑인들이 대규모로 탈출할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흑인들이 자기 선조들의 땅과 재연결하려는 노력을 돕고 아프리카에서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은 긴요하다. 더구나 흑인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미국에서) 피할 필요가 있는 때가 진짜 온다면, 교회는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흑인 생명의 존엄과 신성함을 부인하는 것은 이 나라 DNA의 일부다. 이는 또한 미국 가톨릭교회의 근본적인 죄이기도 하다. 흑인 가톨릭 역사는 교회가 백인 패권의 역사 속에서 무죄한 국외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보여 준다. 언젠가 진정한 평화와 화해의 기회가 온다면, 가톨릭교회는 흑인 생명이 중요하다고 자신의 모든 힘과 자원을 동원해 최종 선언해야만 한다. 흑인들을 위한 목표가 자선으로 충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목표는 온전한 정의, 인권, 자유, 그리고 백인 패권의 완전 해체인 것이고, 이는 교회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섀넌 디 윌리엄스는 빌라노바 대학의 앨버트 리페이지 조교수다. 그녀는 자신의 첫 저서인 “전복적 수도자들: 오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자유 투쟁 속에서의 흑인 가톨릭 수녀”를 듀크 대학출판사에서 낼 예정이다. 2018년에는 여성 수도회들 안에서 역사를 이용하여 인종 정의와 화해를 촉진한 공로로 ‘미래교회’(FutureChurch)로부터 제1회 크리스틴 셴크 수녀 청년 가톨릭지도자 상을 받았다.)

기사 원문: https://www.ncronline.org/news/opinion/church-must-make-reparation-its-role-slavery-segregation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