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획 1] 끊임없는 역사 왜곡, 왜?

발포 명령 책임자 규명과 처벌, 실종자와 희생자 암매장, 성폭력 문제, 헬기 사격의 경위와 역사 왜곡 등 올해로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이러한 과제 가운데 5.18 왜곡을 막기 위해 필요한 법적 장치와 진상 규명에 기여하기 위한 가톨릭 교회의 역할을 지만원 씨 민사 재판을 맡았던 임태규 변호사와 5.18 기념재단 김양래 이사를 통해 짚어 봤다.

먼저 반복되는 5.18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법적 장치부터 살펴본다.

지만원 씨, 실형 선고 항소심 중에도 5.18 왜곡 계속....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당일, 5.18 왜곡과 허위사실 유포를 반복해 온 지만원 씨가 또다시 극우단체 행사장에서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닌 폭동, 김대중 졸개와 북한 간첩이 함께해서 일으켰다”는 의미의 발언을 했다.

이어 지난 10일에는 5.18 당시 광주 북한특수공작군(광수) 투입설을 주장하는 책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를 출간했다.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북한특수공작군 600명이 광주를 습격했고, 이 가운데 희생된 475명을 기리는 노래가 바로 북한에서 불리는 ‘무등산의 진달래’라는 것이다.

지 씨는 수년 째 이 같은 주장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지난 2월 광주 시민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실형을(징역 2년) 선고받았고 노령이라는 이유로 법정구속은 피한 상태에서 항소했다.

또 그간 5.18관련 단체와 광주 시민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해 2억 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시한 대량의 허위사실도 삭제한 뒤에도 지 씨는 5.18 왜곡을 멈추지 않고 있다.

문제는 지 씨의 5.18 왜곡이 형사 처벌을 피하는 방식으로 ‘진화’된다는 것이다.

지만원 씨를 상대로 한 민사재판을 맡았던 임태호 변호사(천지합동법률사무소)는 이에 대해 “형사재판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고 민사적으로도 몇 번이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지만, 지금 불구속 상태에서 형사적 처벌을 받지 않으려는 방식으로 왜곡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라고 19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면 처벌하기 어려운 현행법을 악용한 것이다.

임 변호사는 “현행법상 특정인을 지칭해서 그에 대한 허위 사실 등을 유포하면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5.18과 같은 과거 사실을 일반화된 논리로 왜곡하면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워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만원 씨가 특정 광주 시민을 지칭해 북한군 특수부대원이었다고 주장하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지만 “5.18은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이 침투해서 광주 사람들과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하면, 객관적 사실이 아닌데도 이러한 주장의 유포로 인한 피해자를 특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2월 13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지만원 씨를 법정구속하라고 요구하는 5.18 단체들. 이날 지 씨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김수나 기자

관련법 개정, 특별법 도입으로 역사 왜곡행위 처벌해야

이에 대해 임 변호사는 “이것이 이른바 집단표시 명예훼손인데, 이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현재까지 명확하지 않고, 대법원도 그간 집단표시 명예훼손은 피해자 특정이 안 된다고 보고 처벌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복되는 5.18 왜곡을 막으려면 “형법이나 형사 관련법에 객관적으로 명백한 사실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추가해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더라도 객관적으로 특별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실에 대한 매우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 및 왜곡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또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건, 객관적으로 확정된 사실관계에 대한 적극적 왜곡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별도의 특별법을 도입”하는 방법도 제안했다.

별도의 특별법과 관련해 그는 독일의 홀로코스트법을 예로 들며 “독일의 경우 나치의 전범을 미화하는 발언이나 유포에 대해 별도로 처벌하도록 돼 있다”고 덧붙였다.

홀로코스트법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자행된 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반인륜 범죄로 규정해 이를 부정, 왜곡하거나 학살을 찬양, 미화, 지지하면 징역 형 등 형사처벌을 받도록 규정한 법이다. 전범국인 독일은 물론 루마니아, 벨기에,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폴란드, 프랑스, 체코 등 유럽 주요 나라가 역사 왜곡을 단죄하는 법률이 마련돼 있다.

한편 임 변호사는 2011년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의 판결 근거인 “집단표시 명예훼손은 피해자 특정이 어려워 처벌하기 어렵다”와 “5.18은 법적, 역사적으로 사실관계가 정리됐으므로 허위사실을 주장, 유포한다 해서 역사적 가치나 사실관계가 훼손되지는 않는다는 논리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2011년 1월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기소된 지만원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이어 2012년 대법원도 무죄로 확정 판결한 바 있다.

임 변호사는 최근 유튜브를 통해 5.18에 대한 왜곡 행위가 반복, 유포되는 문제도 지적하면서 “우리 후세대가 5.18에 대한 사실 관계를 혼란스럽게 받아들이거나 왜곡된 역사의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왜곡행위에 대한 처벌은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국립 5.18 민주묘지 안에 있는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희생자들의 봉분 없는 가묘. 국립 5.18 민주묘지에는 5.18 희생자 843기가 안장돼 있다. ⓒ김수나 기자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5.18 왜곡을 막기 위한 처벌 규정을 주 내용으로 하는 ‘5.18민주화운동 왜곡처벌법과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을 당론법안으로 채택해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인터넷이나 출판물을 통해 왜곡 사실을 유포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등 5.18을 부인, 비방, 왜곡, 날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처벌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2016-2020)에서 발의된 5.18 관련 법안 50여 개 가운데 5.18 역사 왜곡 방지 및 처벌에 관한 법안은 5건(발의 순대로 박지원, 김동철, 박광온, 이석현, 이철희 의원 등)이지만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으며 다른 법안 대부분도 임기만료 폐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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