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29]

똥똥이가 우리 곁에 찾아온 뒤로 아이들의 일상이 크게 달라졌다. 그동안 세 아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고양이들을 안방 이부자리에 데려와 함께 뒹굴거리는 걸 큰 기쁨으로 삼았는데, 이제는 ‘고양이 엄금’ 상황이 된 것이다.(문 밖의 고양이들은 언제나처럼 문 열어 달라 야옹거렸지만 아이들은 절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어쩌다 고양이가 문 틈으로 몰래 들어오면 아이들은 냉혹한 경비병이 되어 즉각 내쫓았다. 똥똥이를 지키기 위해!) 대신에 눈꼽도 떼지 않고 똥똥이 있는 상자로 다가가 아침 인사를 나누고 밥 주고 물 먹이고 똥 치우느라 바빴다. 심지어 밭에 나갈 때도 똥똥이를 혼자 둘 수 없다며 나들이용 작은 상자에 넣어 데리고 가서, 똥똥이에게 영양 가득 신선한 먹이 잡아주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마음이 아파서 모기도 못 잡겠다던 다울이도 지렁이를 잡아서, 조각조각 잘라서 먹임. 그것도 맨 손으로....)

그와 같은 뜨거운 관심과 사랑 속에서 똥똥이는 밥도 더 잘 먹고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오래, 멀리 날 수 있게 되었다. 안방 한쪽 구석에서 다른 쪽 구석까지 단번에 날 수 있을 만큼! 너른 하늘 품으로 보내줄 날이 곧 닥치는 거 아닌가 슬그머니 걱정스러울 만큼!

그렇게 똥똥이와 함께 지낸 지 사흘째 되던 날, 고민이 생겼다. 온 가족이 태극권 하러 멀리 외출을 해야 하는데 똥똥이를 데려갈까 말까 하는 고민. 집에 혼자 두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차에 태우고 다니기도 뭐해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는데, 다울 아빠가 딱 잘라 말했다.

“집에 두고 가. 고양이들 못 들어오게 문 단단히 닫아 두고.”

아빠의 엄명에 아이들은 집에 남아서 똥똥이와 같이 있을까 고민도 좀 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모두 함께 집을 나섰다. 똥똥이 먹을 물과 밥을 상자 안에 넉넉히 넣어 주고, 문 단속도 철저히 하고서!

그런데 그날따라 태극권 끝난 뒤 다른 데 들를 일도 있어서 평소보다 귀가가 늦었다. 아이들은 얼른 집에 가자며 성화였지만 별일 있을까 싶어서 함흥차사 일을 보고 왔더니.... 이게 웬일! 똥똥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서랍장 아래, 냉장고 구석, 장롱 위.... 작은 틈이란 틈은 다 쑤시고 뒤지고 했는데 아무 데도 없었다. 느낌으로는 당장에라도 째째째째 소리가 날 것만 같은데 아무리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여도 똥똥이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다못해 똥 싼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으니 얼마나 허전하고 황망한지....

내가 이런데 아이들 심정은 오죽할까 싶었는데 의외로 다랑이랑 다나는 담담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다울이는 여기저기 찾고 나서 한동안 잠자코 있더니 결국 으앙 울음을 터뜨리며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온갖 자책과 후회의 말들을 하면서.... 보다 못한 다울 아빠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찾아보자며 안방 가구를 다 들어내고 부엌 선반에 있는 물건들까지 다 빼가며 샅샅이 뒤졌지만 먼지만 가득할 뿐 깃털 하나 찾지 못했다.

똥똥아, 사랑해. ©박다나

그런데 문득, 부엌 창문을 살짝 열어 놓고 간 게 떠올랐다. 방충망이 닫혀 있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고 열어 둔 건데 혹시나 싶어 다울이에게 창문 열린 데 흔적이 있는지 찾아보라 했다.

“엄마, 진짜로 똥똥이 똥이랑 깃털이 있어!”

“뭐라고? 진짜?”

“그리고 방충망 아래쪽이 찢어져서 살짝 벌어져 있어.”

다울이의 말에 얼른 달려가 방충망을 살펴보니 과연 아주 작은 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똥똥이 똥과 깃털이 있었다. 설마 이렇게 비좁은 틈으로 날아갔다는 말씀? 안방 상자에 있던 작은 새가 부엌까지 날아가 용케도 작은 틈새를 찾아 밖으로 날아갔다고? 믿기지 않았지만 정황상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똥똥이는 하늘이 그립고 엄마 품이 그리웠나 봐. 어느새 날개 힘이 더 세져서 멀리 날아 방충망 틈으로 나간 게 분명해. 잘 됐네, 잘 됐어. 어차피 언제까지고 우리랑 살 수는 없을 테니까. 아마 지금쯤 엄마 품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을 거야. 언젠가 너희들 만나러 다시 올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자.”

나는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홀연히 사라졌을 때보다 마음이 후련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가슴 한 켠에 구멍 하나 뻥 뚫린 듯한 애잔함은 여전했지만  '멀리 날아가 잘 살겠거니' 생각했더니 훨씬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

똥똥이를 떠나보내며. ©박다랑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똥똥이의 깃털이라도 줍겠다며 집을 나선 다울이가 똥똥이 시체를 발견했다. 부엌 창문에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데 있는 주먹밥 나무 아래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똥똥이는 얼마 날지도 못하고 고양이한테 잡혔는지 몹시 처참한 상태로 땅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삐삐, 또는 아니카가 똥똥이를 잡아서 제대로 먹지도 않고 가지고 놀다가 내팽개쳐 둔 것!(다울이는 평소 새 사냥에 능한 아니카의 짓인 것 같다고 했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꽤 낭만적인 결말을 상상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끔찍한 결말을 맞딱뜨리게 될 줄이야. 흐느끼는 다울이 옆에서 정말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천연덕스럽게 아니카가 다가왔다. 다울이를 위로해 주는 듯한 몸짓으로.... 그러자 다울이는 아니카를 안은 채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엄마, 아니카 때문에 똥똥이가 죽었는데도 아니카가 밉지는 않아. 오히려 아니카 덕분에 힘이 나.”

“그래, 고양이한테는 새를 잡는 게 본능이니까 원망할 순 없지. 우리가 똥똥이를 잘 보내주면 똥똥이는 분명히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너무 많이 슬퍼하지는 말자. 그래야 똥똥이 마음이 가벼워져서 하늘 높이 훨훨 올라갈 수 있어. 언젠가 다시 태어나서 우리 곁에 올 거고....”

“맞아, 오빠. 울지 마. 똥똥이는 다시 올 거야.”

“똥똥이는 내 선물이었는데 다울이 형아가 많이 우네. 나는 똥똥이가 다시 올 거를 아니까 안 울어.”

다울이가 똥똥이 떠난 뒤 똥똥이 꿈을 꾸고 그림으로 그린 장면. ©박다울

동생들까지 한마디씩 하자 다울이도 조금 진정이 됐는지 정성껏 똥똥이 무덤을 만들었다. 작은 돌을 두르고 꽃잎도 따서 수북이 덮어주고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아 노래도 불러 주고....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인가는 똥똥이가 보고 싶고 그리울 때마다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 똥똥이는 다시 올 거야

다시 올 거야

 

똥똥이가 다시 돌아온 기적 같은 이야기는 아마도 다음에 또 이어질 것 같다.

 

그 사이 아니카가 새끼를 낳았다. ©정청라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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