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살아계신 하느님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교종, 성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 29일 성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 낮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삼종기도 가르침을 통해 신자들에게 두 분의 삶을 모범으로 본받아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으로 인정하라고 권유했다. 교종은 그분들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 대한 확신으로 순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믿는 이들의 모범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성 베드로는 어떻게 시련을 아끼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베드로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고 악에서 해방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필요한 순간에만 하느님을 부르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넘어 하느님의 선물뿐만 아니라 그분을 찾으라고 권유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그분께 맡기십시오. 이런 식으로 하느님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을 선물로 만드시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성 베드로는 감옥에서 풀려나 그곳에서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영웅이 되지 않았습니다. 성 베드로는 처형의 장소를 우리에게 ‘아름다운 희망의 장소’로 변화시켰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해야 합니까? 순간의 은혜뿐 아니라 생명의 은혜도 청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마태 16,13-19)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이 그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베드로의 답변에 예수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7-19)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축복’이라는 단어는 ‘행복’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살아계신 하느님’으로 고백한 베드로에 대한 응답으로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과 행복한 삶의 비밀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에서 예수님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시몬 바르요나의 이름은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했을 때 ‘바위’로 바뀐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단단하고 신뢰할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몬이 돌이 된 반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라고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분 말씀이나 행한 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을 그분께 송두리째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순간의 필요만 생각하지 않고 나의 진정한 필요는 나를 선물로 만드는 예수님이라고 믿습니까?“ "어떻게 하면 내 능력으로 살아계신 하느님을 모실 수 있을까?" 우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신 성모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을 일상생활의 중심에 두도록 도와주실 것을 기도합시다.

 

“베드로와 바오로처럼 예수님의 도전을 받아들이자“

교종, 6월 29일 성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 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 29일 성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을 맞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지어진 바티칸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 중에는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교종과 지역교회 일치의 상징으로 신임 대주교들에게 수여하는 팔리움을 축복했다. 이날 미사는 코로나 방역으로 인해 소수의 신자만 참석했으며, 프란치스코 교종은 ‘일치와 예언’을 주제로 강론했다. 

강론 요지

성 베드로와 바오로는 그들의 삶의 경험과 성격에서 매우 달랐지만 형제로서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서로에게 가까워진 것은 자연스러운 성향의 결과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신 주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로 묶습니다. 이러한 일치와 연대의 근원은 기도입니다. 베드로 성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당시의 신자들은 불평하는 대신 기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렇듯 불평 대신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는 교회의 공동창립자인 성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에 상호방문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됨. 로마교회는 성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는 성 베드로와 동생 성 안드레아 축일에 교환 방문) 

올해는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한 어려움으로 콘스탄티노플 대표단은 성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에큐메니컬 총대주교이신 바르톨로메오 대주교님의 친밀함을 마음으로 깊이 느낍니다. 오늘 그분들이 직접 참석할 수 없더라도 그들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성 베드로와 바오로가 직면했던 어려움은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또 바오로에게는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러한 도전과 반전에는 예언이 뒤따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자신의 교회를 세울 반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오로는 개종한 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선택된 도구’가 되었습니다. 

예언은 항상 우리가 하느님께 도전받을 때마다 태어납니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예언과 실제적 예언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예언은 장엄한 전시로 구성되어 있지 않지만 인생에서 하느님 사랑에 대한 증인이 됩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바오로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예수님을 전파한 방법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순교로 그들의 삶을 제공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하신 ‘바위’ 예언처럼 우리에게도 주님의 예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베드로로 바꾸신 것처럼 우리도 새롭게 교회를 세우고 화합을 이루기 위한 살아있는 돌로 만들기 위해 각자를 부르십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예수님의 도전을 받아 ‘교회의 건축자’들이자 ‘지상에 있는 하느님의 예언자들’이라는 그분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해야 합니다.

 

“베네딕도 16세 형 게오르크 라칭거 신부 별세”

사제 서품 60주년 이틀 뒤인 7월 1일, 평생 음악인으로 헌신

전임 교종 베네딕도 16세 형님인 독일의 게오르크 라칭거 신부가 7월 1일 현지 시간 오전 4시 30분 독일 레겐스부르크에서 96살 일기로 별세했다. 베네딕도 16세는 지난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독일을 방문해 형님과 마지막 시간을 가진 바 있다. 지난 6월 29일은 이들 형제 사제 서품 60주년이었다. 고인은 사제로서, 또한 음악인으로 평생을 사신 분이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고인은 11살부터 성당 오르간 연주를 시작했으며 사제 서품 후에도 1964년부터 1994년까지 30년 동안 트라운슈타인 합창단을 지휘했으며 레겐스부르크 성당 합창단 마스터로 활동하면서 전 세계를 순회하며 수많은 콘서트를 진행했다. 특히 고인은 바흐, 모차르트, 멘델스존 등 유명 작곡가들의 작품을 지휘하며 많은 음반을 남겼다. (로이터 통신 인용)

 

“형용사와 부사 대신 명사로 소통하라”

교종, 가톨릭신문출판인협회 연례 콘퍼런스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종은 가톨릭언론협회가 주관하는 올해 가톨릭 미디어 콘퍼런스에 메시지를 보내고 의사소통을 다른 목적으로 왜곡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신념을 가진 언론 종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톨릭신문출판인협회(CPA)는 백 년 전 미국에서 가톨릭 언론 종사자들을 지원하고 연합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미국과 캐나다 225개 출판 회원과 600여 명 개인회원이 가입해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영상 회의로 진행된다. 

교종 메시지 내용.

올해 콘퍼런스 주제 ‘함께 떨어져 있습니다’는 코로나-19 시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경험에서 역설적으로 나타난 ‘공생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돕기 위해 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친밀한 유대를 가져야 하며, 이러한 많은 형제자매가 필요합니다. 지난 몇 달 동안의 경험은 사람들을 모으고, 거리를 줄이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마음과 마음을 여는 데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사명이 얼마나 필수적인지 보여주었습니다. 

다양성과 통일성의 이상은 가톨릭신문출판인협회 신조에 이미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공익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를 지향해야 합니다. 가톨릭 공동체는 갈등과 양극화에 의해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 다리를 만들고, 생명을 방어하고, 개인과 지역사회 간 진실한 대화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미디어를 필요로 합니다. 이는 특히 젊은이들이 선악을 구별하고 사실에 대한 명확하고 편견 없는 표현에 근거한 건전한 판단을 개발하고 정의를 위한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공동가정에 대한 사회적 일치와 존중과 함께 그것을 왜곡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구부릴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의사소통을 보호하는 신념 있는 많은 남녀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각자 있는 곳마다 우리가 사랑하는 진리의 직업을 통해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숙하고 성장하는 데 기여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단지 전문적 역량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한 의사 소통자들은 각 개인의 삶에서 온 인류 가족의 삶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서 타인의 복지에 전적으로 자신을 바칩니다. 우리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진실성을 개인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진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의사소통은 하느님의 삶에 궁극적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분의 신성한 생명의 풍성함을 우리와 나누시고, 그분을 섬기는 일에 연합하여 그분의 보물인 ‘진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도록 요청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지혜의 선물인 이해와 선한 조언을 쏟아부으심으로써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의 진정한 선을 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시선만으로도 우리 가족의 얼굴을 훼손하는 인종차별과 불의, 무관심의 질병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의사소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형용사와 부사와 대화하는 세상에서 진실한 주장을 인정하고 발전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조장하는 명사와 대화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이 갈등과 분열을 보는 곳에서 어떻게 고통과 가난한 자를 바라보고 자비와 이해가 필요한 형제자매의 간청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겠습니까?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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