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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역설

기사승인 2020.07.02  16: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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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숙 수녀] 7월 5일(연중 제14주일) 즈카9,9-10; 로마8,9.11-13; 마태11,25-30

교만은 가톨릭교회의 최고 악덕이다. 교만의 상징인 루치펠(루시퍼)이 인간계로 내려와 온갖 패악을 저지른 것은 그가 처음부터 악마여서가 아니다. 그는 제 이름처럼 천상계에서 가장 빛나고 잘나가던 천사였다. 그런 루치펠이 한순간 악마로 떨어진 것은 자신을 절대 권좌에 위치시켰기 때문이다. 교만은 흔히 알고 있듯이 으스대거나 잘난 체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루치펠이 부린 교만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하고 신과 대지와 만물을 분열시키는 간교함에 있다. 루치펠은 영리한 지능의 소유자로서 상황을 조종하고, 세계를 끌어당겨 제 편으로 만드는 능력을 지닌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들이 형성한 집단적 기획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지상계를 내려다보며 신과 인간을 제패한 승리감에 취해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성경은 그런 자들의 굿판을 뒤엎을 한 사람,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시는 분”(즈카9,9)을 소개한다. 그러나 예언자의 소리는 절대 강자의 때를 기다리던 모든 이를 당혹스럽게 했다. 병거와 군마로 대적해도 시원찮은데 고작 어린 나귀를 타고 오는 왕이라니 이런 싸움에 무슨 승산이 있으랴? 누가 이런 역설적 상황을 수긍할 수 있으랴?

신이 타락한 인간에게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한 것은 흔히 ‘죄와 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homo) 존재가 본시 흙(humus)이니 살려거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씀이다. 겸손(humilitas)이 흙에서 어원을 취한 것도, 메시아가 겸손한 모습으로 오신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겸손이 흙이라는 사실은 바닥에서 뿌리를 내리는 생명의 근원을 나타냄과 동시에 에덴의 기원을 이룬다. 인간이 흙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의 기원인 신과 함께 창조 본래의 세계를 회복하라는 소명인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 길은 만만치 않다. 루치펠이 장악한 세계를 되찾기 위해선 그만큼 강인하고 끈기 있는 집중력과 통찰이 요구된다. 한 사회의 통념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기 위해선 그것을 비판적으로 가려내는 상상력과 인식의 지평이 절대 필요한 까닭이다. 그러면서도 겸손은 이 모든 긍정적 힘의 이면에 은폐된 또 다른 힘을 간과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욕망은 언제든, 무엇이든 루치펠의 무기로 활용돼서 다시 위협적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겸손의 의미를 가장 독창적으로 이해한 이는 아빌라의 데레사였다. 그녀는 겸손을 ‘진리 앞에서 걷는 행위’로 인식하고 그것을 삶으로 살아나갔다. 확실히 그녀는 겸손을 실천하기 위해 온갖 영웅 행위를 마다않던 당대의 성인들과는 달랐다. 데레사는 교회와 세상을 개혁하고자 신념을 갖고 행동한 강인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사회와 공동체의 낡은 통념에 맞서 부패한 교회를 정화하고 예수의 가난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았다. 이런 과정에서 성난 아빌라의 시민은 그녀를 ‘마귀 들린 여자’라 고발하며 법정으로 끌어냈다. 온갖 수모와 멸시 앞에서도 데레사는 무너지지 않고 꿋꿋했다.

당시 ‘마녀사냥’의 광기를 돌아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녀가 이런 위기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전적으로 예수에 대한 신뢰였다. 겸손, 혹은 신뢰야말로 거짓을 물리치는 가장 확실한 무기며, 굳건하고 용기 있는 태도다. 그녀가 이것을 역사 앞에서 입증해 보였다.

그레타 툰베리 (사진 출처 = flickr.com)

겸손한 메시아는 인간의 눈에 탐탁지 않다. 그는 핵무기나 최첨단 화력을 동원하고 위풍당당하게 오는 신이 아니다. 그는 ‘나귀’를, 그것도 어린 나귀를 타고 오는 볼품없는 왕이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처음부터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요한1,11) 더구나 요즘 같은 세상에 ‘겸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세상은 전쟁터고 여기서 싸워 이기려면 온갖 무기를 장착해야 살 수 있다. 평화를 위하는 신은 시대에 뒤처진 신이며,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신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인간이 신에게 훈수를 두는 세상이 되었다. 영리한 사람일수록 이런 훈수에 재빠르다. 오늘 예수는 이런 사람들을 두고, “지혜롭다는 자들, 슬기롭다는 자들에게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신”(마태11,25) 아버지에게 감사한다. 누가 봐도 손사래 칠 일이지만 이미 승리는 기울었다: 그가 “병거와 군마를 없애시고, 전쟁에서 쓰는 활을 꺾으시어,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즈카9,10) 왕인 것이다. 이것이 그 왕이 일하는 방식이다. 세상의 눈에는 그가 늘 어리석게 비친다.

지난해, 온 세계를 놀라게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예수가 말한 그 철부지 어린아이임이 틀림없다.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세계 최고의 정상들에게 누구도 하지 못했던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날렸다. 그녀는 전 지구적 생태계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해있으며, 이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난민과 가난한 이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최고 정상들에게 다음과 같은 최후통첩을 날렸다.

“도대체 당신들이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습니까? 당신들은 여전히 돈과 끝없는 경제 성장의 신화만 말합니다. 당신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긴급함을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정말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데 행동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악마입니다. 모든 미래 세대의 눈이 당신들을 향해 있습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우리는 절대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이 책임을 피해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바로 여기서, 더는 참지 않겠습니다. 전 세계가 깨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든 않든 변화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강신숙 수녀

성가소비녀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강신숙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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