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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의 신비

기사승인 2020.07.09  13: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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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우 신부] 7월 12일(연중 제15주일) 이사 55,10-11; 로마 8,18-23; 마태 13,1-23

이곳 감물생태학습관에 온 지 10개월째입니다. 사실 말이 좋아 10개월이지 작년 10월에 와서 겨울까지는 피정이나 연수, 캠프등을 진행했지만 2월 말부터는 아무 행사도 하지 못하니 부관장으로서의 역할은 거의 낙제점에 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학습관의 가장 큰 행사중 하나인 여름신앙학교도(9차수까지 계획했으나) 못하는 현실이니 아마 올여름 저희 집은 아주 조용할 것만 같습니다. 아이들의 소리와 발자국으로 정신없어야 될 여름. 어떻게 보면 그 여름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로그램에 대한 구상을 해 보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려 보지만 주어진 환경에 대한 순명과 제 의지에 대한 충돌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제가 해야 될 주요한 업무 중의 많은 부분이 불가능하다 보니 다른 일에 시간을 쏟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축사에 있는 가축을 돌보는 일과 농사일입니다. 가끔 소들의 먹을거리를 챙겨 주고 닭장에 가서 계란을 챙겨 오기도 합니다. 주위에 길게 자라 있는 잡초들을 베어 소들에게 주면 소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달려오지요. 그 모습을 보며 혼자 괜히 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농사일도 구경(?)하고 있습니다. 감히 제가 무엇을 한다고 표현할 수는 없지요. 봄의 끝자락 모내기를 했고 지난달에는 그 논에 우렁이를 집어 넣었습니다. 여름에 들어서면서 양파와 마늘을 시작으로 얼마 전에는 감자를 수확했습니다. 뒤뜰 밭에는 저희 집의 식탁을 책임져 주고 있는 오이와 깻잎 그리고 상추가 언제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고추와 콩 그리고 가지들이 익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들어가는 것은 비, 즉 물뿐인데 그것이 단백질이 되고 탄수화물이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생기가 되는 비타민 등 각종 영양소가 된다는 것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이사 55,10)는 제1독서의 말씀이 절로 공감이 가는 요즘입니다. 

밭에 넣은 우렁들이 보인다. ⓒ유상우

왜 갑자기 농사이야기를 하냐 싶으시지요? 오늘 복음이 자연스럽게 저에게 가져다 준 묵상거리입니다. 주어진 것은 물뿐인데 그 씨들과 모종들이 다양한 형태의 열매를 맺는 신비가 너무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열매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지만 열매 자체가 가지는 신비로움은 실로 엄청나게 다가왔습니다.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마태 13,8) 제가 이번 주일 복음에서 평안을 얻은 부분은 바로 백 배와 예순 배, 서른 배 사이의 가치가 평가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저 열매는 열매 자체로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이 비유에 씨를 뿌리는 사람을 우리는 예수님 당신이라고 보았을 때, 그 씨의 열매는 예수님의 뜻에 맞는 열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말씀의 씨앗을 얼마나 잘 키우느냐의 문제는 바로 그것을 다양한 가능태로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물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겠지요. 씨앗이 크기 위해 물이 필요하듯 주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체성사는 당연하고, 여러 가지 신심행위들 그리고 삶에서의 실천까지 그렇게 그 말씀의 씨앗이 자라기 위한 ‘물’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 다양성이 우리 교회 공동체를 지켜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주어진 것은 물이지만 다양한 열매들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랍기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이 심으신 그 씨앗에 어떤 형태의 열매가 생겨날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 씨앗이 자라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그분의 뜻을 조금씩 알게 될 수 있겠지요. 다만 그 열매를 물리적 수치로 평가하는 안타까움은 없었으면 합니다. 백 배의 열매도 귀하지만 서른 배의 열매도 그 못지 않게 너무나 귀합니다. 하나의 씨앗이 그 이상의 열매를 맺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는 신비요 선물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유상우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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