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고통받은 사람들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교종, 7월8일 람페두사 방문 7주년 미사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7월8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자신의 람페두사 난민촌 방문 7주년을 기념하며 봉헌했다. 교종은 지난 2013년 7월8일 교종 취임 후 바티칸을 벗어난 첫 방문지로 수많은 난민이 수용된 이탈리아 남부 지중해의 람페두사 섬을 방문해 난민들을 위로하고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난민과 이주민들을 환영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이날 산타 마르타의 집 미사에는 바티칸 이주사목국 관계자들이 참례했다. 

강론 요지.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은 세상에 여전히 많은 불의로 이민자, 난민, 그리고 재난을 피난한 이재민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 더욱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줍니다. 

오늘 시편 화답송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의 얼굴을 찾으라고 말해 줍니다. 이는 모든 신자의 목표입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첫 번째 독서(호세아 10,1-3.7-8.12)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거짓과 불의로 가득한 풍요와 번영으로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는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설명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주는 경고입니다. 풍요와 번영과 부에서 위안을 찾는 문화는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 외침에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또 맹목적이고 공허한 환상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을 가져오고 결국 무관심의 세계화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해졌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나는 그것에 관심이 없다. 내가 상관할 바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 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12절)라는 호세아의 외침을 우리의 회심에 반영하면서 공의를 위한 ‘경건의 열매’로 거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에게서 주님의 얼굴을 찾아보면서 오늘 복음(마태 10,1-7)에 언급된 열두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주님과 개인적인 만남을 원해야 합니다. 은혜와 구원의 시간인 주님과의 개인적 만남은 하느님나라가 임박했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반합니다. 이러한 사명은 2000년 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구하려고 노력할 때,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과 외국인의 모습에서 주님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는 말씀처럼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바로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우리 문을 두드리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아프고, 투옥되고, 우리의 도움을 요청하는 분은 바로 주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예수님 말씀을 우리의 양심을 매일 점검하는 기본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 수용소에서 난민들이 학대와 폭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복되신 성모 마리아께서 이민자들의 위로가 되어 주시고 세상의 많은 불의와 전쟁으로 고향에서 도망치도록 강요받는 모든 형제자매에게서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발견하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합시다.

 

교종, 람페두사 방문 7주년 기념미사 의미

지난 2013년7월8일 프란치스코 교종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전쟁과 기근을 피해 탈출한 대부분 난민들이 기착하는 시칠리아 해협의 람페두사 섬 난민촌을 교종 취임 후 로마를 벗어나는 첫 방문지로 택했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유럽은 수많은 난민 문제가 커다란 이슈였다. 교종은 유럽각국이 폭넓게 이들을 환영하라는 메시지를 주면서 이들의 실태를 살피고 위로하기 위해 람페두사를 방문했다. 교종은 람페두사 방문의 메시지를 되풀이하기 위해 매년 기념미사를 봉헌해 왔다. 2019년 미사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성대하게 봉헌했다. 올해는 코로나 방역으로 바티칸 ‘온전한 인간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인 이주사목국 관계자만 참례했다. 

2013년 교종의 람페두사 방문은 이후 프란치스코 교종의 직무를 특정 지을 표징을 드러난 상징적인 것이었다. 교종은 람페두사 방문을 통해 타인의 외침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무관심의 세계화’를 질타했다. 곧 고통받고 소외된 주변부 사람들의 목소리를 세계에 외친 행동이다. 교종은 바티칸 홍보부 편집주간 안드레아 토르니엘리의 책 ‘여행에서’의 시작 부분에 담긴 인터뷰에서 ‘수장된 이들’, 즉 바다에서 죽은 이주민들의 소식에 가슴이 아프고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양심 없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배에 자신을 맡긴 채 절망의 바다를 가로질렀던 그 여행 이후 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난민과 이주민이 계속해서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교종의 람페두사 방문은 계획된 것도 아니고 초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교종은 “그곳에 가야 한다고 느꼈다”다. 고작 한 시간 반 일정이었지만 교종은 지중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조화를 바다에 던졌다. 바닷길을 건넜던 생존자들, 펠라지에 제도 섬 주민들, 인도주의 활동가, 사제를 포함한 지역단체와 교회 등이 교종의 뒤를 따랐다. 불법이주민 수용소 ‘아레나’ 스포츠 캠프에 약 1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교종은 난파한 난민선 잔해로 만든 독서대에서 강론했다. 교종은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줄곧 ‘심장이 가시에 찔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람페두사 방문 이유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은 계속됐다. 교종의 방문 후 불과 세 달이 지나지 않은 10월3일, 람페두사 앞 망망대해에서 난민선이 난파되어 36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 교종은 바티칸에서 생존자들을 만나 위로했다.

 

“네 형제는 어디 있느냐?”

람페두사에서 코비드까지 형제애의 도전

프란치스코 교종의 미디어 담당 <바티칸뉴스> 디렉터 알렉산드로 지소티는 해설기사를 통해 교종의 염원인 인류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느끼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건설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기사 요약.

프란치스코 교종이 람페두사 섬을 방문한 지 7년이 지난 지금 프란시스코 교종이 인류에게 모든 사람이 서로 형제자매로 느끼고 바라보라는 호소가 시급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준비하면서 스스로를 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형제애는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네 형제는 어디 있느냐? 네 형제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기 4,9-10 참조) 하느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들에게 제기된 질문이 아니라 바로 나와 너. 우리 모두에게 던진 질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을 방문한 후 7년이 지났다. 이 질문은 당시 지중해 중심부 운동장에서 기념한 미사를 통해 모든 인류에게 전달되었다. 

여행은 몇 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교종은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에 대해 ‘교회가 일어났다’는 의미를 보여 주었다. 그는 현실이 중심보다 주변에서 더 잘 보일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전쟁과 불행에서 도망친 이민자들 가운데서 교종은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교회’에 대한 꿈을 꾸었다. 교종은 이날 카인과 아벨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람페두사에서의 형제애 문제를 세계무대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이는 우리시대와 모든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형제애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형제들’이라는 단어는 2013년3월13일 저녁 교종으로서는 처음으로 언급한 단어다. 형제애의 차원은 가난한 성 프란치스코 이름을 선택한 교종의 DNA에 있다. 13세기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항상 사용하던 단어다. 교종이 베넥딕도 16세 전임 교종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방식도 ‘형제애’다.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에 서명한 교종의 이러한 특징은 모든 사람에게 더욱 강조되고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2019년2월4일 아랍 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알 알자와 대이맘과 서명한 역사인 문서에서 몇 가지 이정표를 발견한다. 형제애를 강조한 이 사건은 분명히 도착지일 뿐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교종이 람페두사에 이어진 여러 상징적인 방문에서도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2014년 9월 알바니아 방문에서도 창세기 4장의 아벨이 살해된 후 하느님과 가인 사이의 대화 즉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기 4,9)를 인용하면서 자신을 모든 형제의 골키퍼로 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인류를 흔드는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강조했다. 

교종은 이러한 태도는 예수님께서 복음으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과 정반대며 형제자매를 돌보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기쁨에 들어가지만 이와 반대로 “내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은 바깥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그의 재위기간이 늘어날수록 에큐메니칼과 종교, 사회, 정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형제자매 관계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갈라진 그리스도교는 물론 정교회, 이슬람 등 모든 종교지도자와의 만남에서 형제자매로서의 형제애를 강조하고 있다. 쿠바에서 만난 교종과 러시아 정교회 키릴 대주교는 공동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기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 신앙의 형제로서 큰 소리로 대화하기 위해 만나는 형제로서 서로 마주쳤다” 형제애는 프란치스코 교종과 바티칸의 가장 강력하고 놀라운 행위 중 하나를 해독할 수 있는 키워드다. 이는 인류를 위한 견고한 집을 짓는 유일한 기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는 국가 사이의 개발수준과 국내 소득수준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모두 취약하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우리는 같은 배에 탄 형제자매들이다. 폭풍의 파도에 흔들리면서 모두 무차별적으로 충돌한다. 교종은 비가 내리던 지난 3월27일 밤 텅빈 베드로 광장에서 폭풍으로 우리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항상 걱정하는 '자아'를 위장한 고정관념의 속임수가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교종은 우리가 탈출할 수 없는 축복된 공동 소유물은 바로 우리가 한 형제자매로 속해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금까지 계속  우리의 문을 두드렸지만 집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신경 쓰지 않은 전쟁과 굶주림과 같은 많은 전염병에 직면해 약간의 마취된 양심을 깨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교종은 5월14일 산타 마르타의 집 미사에서 코로나 외에도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다른 전염병이 많다고 개탄했다. 교종은 7년 전 람페두사에서와 같이 우리 모두 자신과 상대방을 형제자매의 구성원으로 생각한다면 더 이상 상대방은 존재하지 않으며, 상대방도 우리라고 강조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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