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어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1981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처음으로 제정되어 ‘집 없는 사람들’의 ‘머무를 수 있는 권리’가 ‘1년’으로 보장된 지 39년 만의 일이며, 1989년 한 차례 개정을 통해 ‘2년’으로 연장된 지 31년 만의 일입니다.

40년 만에 개정된 법에 따라, 집이 없어서 2년마다 이사를 다니던 사람들은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4년 거주가 보장됩니다. 또한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를 통해서, 계약할 때마다 정신없이 오르던 전·월세가 5퍼센트 이하로 제한되었습니다.

집 없는 사람들의 거주보장기간이 4년으로 연장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멈출 줄 모르고 상승하던 임대료에 제한을 둔 것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거주지가 상품화되어 부동산 투기에 국민열풍을 일으키고, 자본을 빨아들이며, 정당한 노동을 바보로 만드는 이 시대에 ‘다행스럽다’가 끝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오늘 우리의 ‘다행스럽다’는 아픈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집값이 오르는 만큼 돈을 벌지 못해서, 부동산 재태크 능력도 천운 같은 건데 그런 걸 타고나지 못해서, 40년 만에 4년이라는 모면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우리는 분명 아팠던 것이라고, 아팠던 걸 조금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여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우리의 ‘다행스럽다’는 계기 정도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욕심과 팽창하는 자본에 따라 적대적으로 변화된 공간이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하는 계기. 불로소득의 구조 속에서 갈팡질팡 집을 찾으러 다녀야 하는 사람들의 아픔이 4년의 ‘유예’나 ‘모면’으로 ‘퉁쳐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주거권의 관점에서 말하여지는 계기였으면 합니다. 또한 이번 계기를 통해 계속 거주할 권리에 대한 건강한 담론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교회 또한 주거문제를 ‘거룩한 성전 안으로 들여와서는 안 되는 조심스러운 일’이 아닌 교회의 기본세포인 가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요한 일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교종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회칙 '가정 공동체'를 통해서 말씀하셨듯이, ‘죄악에서 연유하고 현대 세계의 구조에 깊이 침투하고 있으며 가정 자체와 기본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방해하는 불의와 부조리’에 대해서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동시에, 말씀이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외적 현실을 복음에 기반하여 변화시킬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삶의 자리! 이보다 더 근본적이요 최소한의 요구가 있겠는가? 존재할 자리가 없는데 인간의 권리를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고 김수환 추기경, 1986년 6월 아시아 도시빈민대회 축사 중에서)

존재할 자리에 대한 문제가 40년 만에 개선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사람의 존재에 이렇게 중차대한 일이, 단지 다행스러운 일로 이야기 되어서 슬픕니다. 갈길이 먼 이 '다행스러운 아픔'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주거권이 어서 신장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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