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이렇게 마감되는 걸까? 강력하면서 길던 장마가 기운을 잃자 여름 열기가 쏟아지지만, 일시적일 것이다. 입추와 말복이 지났다. 한반도에 내리쪼이던 태양광의 입사 각도가 이미 비스듬해졌다. 비구름에 막혀 태양 열기를 충분히 받지 못한 대지는 곧 가을로 접어들겠지. 200미터 마지막 장마가 예보된 시간, 건강한 청년이 잔뜩 찌푸린 하늘을 바라보며 친구에게 한마디 툭 던진다. “여름이 진짜 이대로 끝나나 봐.”

기상관측 이래 가장 긴 장마였으니 당연한데, 7월 평균 기온이 6월보다 낮은 역전현상이 최초로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6월 1일부터 8월 10일까지 강수량은 서울 우면산에 산사태가 일어난 2011년에 이어 역대 2위라는데, 그 사이에 비 내린 날은 1998년 기록과 더불어 1위였다고 기사는 덧붙였다. 1998년 ‘기상이변’이라는 용어를 처음 보았는데, 이제 지겹게 듣는다. 앞으로 어떤 기상이변이 다가올까? 관측 이래 최초가 아니라면 흥미를 끌지 못하는데.

1900여 연구결과를 분석한 기상청과 환경부는 2090년 기후를 예견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사과를 포기하라고 조언했다. 한 해 10일 정도 이어지던 한반도 폭염이 21세기 후반에 35일 넘으리라 전망하면서 사과 대신 감귤을 강원도에서 딸 수 있으리라 귀띔했는데, 다행일까? 그뿐이 아니다. 병충해가 늘어 배, 포도, 복숭아 수확도 줄어들 거라는데, 문제는 주식인 쌀이다. 생산량이 25퍼센트 이상 감소할 거라 분석했다. 그때 미국의 밀 생산량은 어떨까? 동맹이라면 수출 물량을 흔쾌히 비축해 줄까?

정부는 “사회경제적 영향을 평가하고 장기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고서를 펴냈다는데,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농작물 작황이 기후변화에 영향이 큰 건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원인이 있다는 걸 결코 무시하면 안 된다. 토양 미생물에서 주위 동식물에 이르는 생물다양성이 농토에 보전되지 않으면 안정된 수확은 기대할 수 없다. 화학물질을 끊임없이 살포하고 무거운 기계로 깊게 갈아엎는 농업은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과다한 화학물질과 석유 에너지의 투입이 필요하지만, 그런 농토의 농산물은 기후변화를 이기지 못한다.

장마. ©Flickr강응규

2090년 강원도에서 귤을 딸 수 있을까? 외래 농산물인 귤에 잘 어울리는 주변 생태계가 조성돼 있지 않다면 화학물질을 적극적으로 투입하거나 온실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야 할 텐데,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할 것이다. 가능할까? 고갈 앞둔 석유를 여전히 낭비하며 기후변화를 부채질하는 우리에게 2020년은 그리 한가롭지 않다. 화석연료 소비를 중단해도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는 온난화를 심화시킨다.

이번 장마는 기후변화가 만든 기상이변이다. 북극해의 빙하가 녹자 냉기를 가뒀던 제트기류가 느슨해졌고, 그 틈을 타고 북극권의 냉기가 내려가 머물자 우리나라와 중국과 일본에 예전에 없던 비가 쏟아진 것이다.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를 예고한다. 위기를 맞은 기후가 일으킨 재해는 동북아시아에서 그치지 않았다. 시베리아 영구동토에 산불이 일고 유럽과 인도는 폭염에 시달려야 했다. 기후위기가 빚는 기상이변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갈수록 심각해지지만, 예측할 수 없다. 오늘 이후 어떤 재난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이번 장마로 병충해가 극심해진 농토는 걱정의 서막이다. 우리는 가격이 오를 농작물에 불만을 가질 여유가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온실가스 배출로 생태계는 파국을 만났고 생물종은 멸종을 예고한다. 많은 학자는 지구 생물 역사에 5차례 발생한 대멸종이 다시 닥칠 가능성을 점친다. 현재 지층은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라는 주장이 나왔다. 대기화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학자의 주장으로 그는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류가 저지른 결말이라고 해석한다. “제6의 멸종”은 인류세가 마감될 즈음 닥칠 것이다.

유럽 시민들은 멸종저항 운동에 나섰다. 이러다 멸종할 수밖에 없으니 정치권에 당장 행동하라는 절규다. 이미 늦었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인류 생존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려면 우리는 어떤 행동에 나서야 할까? 기후위기를 최대로 늦추고 생태계를 서둘러 회복시키는 행동인데, 우리는 여전히 한가하다. 코로나19 이후의 한국판 뉴딜은 후손의 생존보다 현실의 돈벌이에 초점을 맞춘다.

농작물 생산이 불안해져도 수입해 해결하려는 정책을 고집하는 우리는 다음세대의 생존에 둔감하다. 농토와 갯벌 매립한 자리에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채우는 우리나라를 국제사회는 “기후악당국가”의 하나로 지목한다. 화석연료 태우는 발전소를 자국뿐 아니라 다른나라에 세우려 안달하지 않나. 70년 뒤 후손은 강원도 귤을 맛볼 수 있으려나?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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