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배 노무사의 노동인권과 노동법 1]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 손창배 노무사의 노동법과 노동권 개론을 6회 매주 월요일에 연재합니다. 본 글은 예수살이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 편집자 주 -

 

운전을 할 때도 딱 한 시간만 배우고 나서 곧바로 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배운 대로 계속 연습을 해야 잘할 수 있습니다. 노동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시간만으로 끝내지 말고 꾸준히 관심을 갖고 알아보셔야 합니다. 오늘을 계기로 노동에 대해서 관심을 더 가지고, 신문기사나 인터넷 사이트를 보실 때도 노동에 대해 더 유심히 보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분들도 아마 거의 대부분 노동자일 것입니다. 기초 노동법 강의를 하러 가게 되면, 보통 그 강의의 대상이 되는 분들 본인이나 그 가족이 다들 노동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 아이가 노동자가 될 가능성과 사장님이 될 가능성 중 어느 쪽이 더 클 것 같으십니까? 네,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혹시 사장님이 되더라도 노동법을 알아야 합니다. 노동법은 노동자에게는 권리지만 사장님에게는 의무입니다. 같이 가려면 어쨌든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배려입니다.

노동자와 근로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노동자라고 하면 머리에 딱 떠오르는 이미지나 느낌이 어떻습니까? 그리고 근로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십니까? 노동자는 블루칼라, 근로자는 화이트칼라. 노동에 대해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들 생각합니다. 요즘은 뉴스에서도 노동자라고 하는 경우가 꽤 많지만 보통은 근로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사회 운동이나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노동자라고 불리기를 원합니다. 노동자와 근로자, 둘 중에 어떤 건 맞고 다른 건 틀린 게 아닙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노동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굉장히 어색해하고 불편해 했고, 지금도 많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불편할 일이 전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더 주체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노동자라고 표현한다고 보셔야 합니다.

노동자는 형식상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습니다.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무엇인가 받는 사람이고, 근로자는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입니다. 근로자이면서 노동자일 수 있고, 노동자이면서 근로자일 수도 있는데, 다만 방점이 어디에 찍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노동조합이 근로조합이 아닌 이유는 대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인데, 과연 현실도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노동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가톨릭 신자나 가톨릭 관련 매체에서 사회 현안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톨릭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알아보지 않고 입장을 피력함으로 해서 가톨릭 교리가 아닌 것을 마치 가톨릭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처럼 잘못 전달한다거나, 잘못된 내용을 바탕으로 의견을 피력하거나 비판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이니 가톨릭에서 노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보고 그 시각으로 노동인권과 노동법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에서는 ‘예수님도 노동자셨고, 인생에서 대부분은 목수 일을 하셨다’라고 이야기하고, 사도 바오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것을 나누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노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은 ‘노동은 하느님과 세상을 같이 다스리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유익한 것을 창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노동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먹을 양식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기 위해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노동을 해야 합니다. 노동자는 창조와 선행을 계속 해나가는 자이며, 노동과 근면함을 통해서 우주인 피조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듭니다. 결국 가톨릭에서 말하는 노동은, 단순히 자신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웃과 나누고 이 세상을 하느님과 함께 다스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요즘 경제나 경영 쪽에서는 노동 상품, 노동 시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노동을 단순히 상품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대체할 만한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노동 상품이나 노동 시장이라는 말에 동의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기계처럼 취급되는 느낌 때문입니다. 경제 논리에서는 그런 말이 효율적이고 편하기 때문에 노동을 상품처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보거나 국어대사전에 있는 것을 보더라도 우리의 노동은 그렇게 물건 취급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회교리에 관한 첫 교황 회칙인 '새로운 사태'는 노동과 관련됩니다. 회칙은 적정임금에 대해, "임금은 노동자가 검소한 생활, 말하자면 최소한의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미흡해서는 안되며.... 그 자신과 가족의 생계 유지 및 안락한 생활에 충분할 경우에 그가 현명하다면 쉽게 절약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또 그리하여 본성 자체의 충동에 따라 지출을 줄이고 임금의 일부를 남겨 어느 정도의 재산을 장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회칙이 20세기 이전(1891년)에 나온 것을 감안하면, ‘한 명이 벌어서 가족이 아주 풍요롭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평균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적정 임금이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한 명이 나가서 일하고 그 급여로 가족이 살 수 있어야 적정한 임금이라는 것입니다.

 

손창배 노무사(바오로)

함께하는 노무법인 부대표,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상임위원, 한국갈등해결센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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