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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는 사회적 약자 공통의 문제, "이분법 벗어나야"

기사승인 2020.09.22  13: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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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신학연구소 국제 학술대회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와 신학연구소가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과 대안적 성찰”을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를 마련했다.

9월 17-18일에 진행된 학술대회에서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예정된 법률개정 기간 만료 약 3개월을 앞둔 상황에서 다양한 학계 입장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다양한 영역의 입장이 논의되는 공론장을 여는 계기로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여성주의, 종교교육, 법학, 신학, 의학, 생명과학, 사회복지, 교육 등의 연구자와 현장 활동 경험자들의 의견이 공유됐으며, “지금까지의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으로 이분화 된 논의 지점을 넘어 더욱 다양하고 구체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장 김용해 신부(예수회)는 먼저 기조강연을 통해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은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라는 주문이라기보다, 임신 단계에 따라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조화시키는 법률개정이 필요하며, 이를 이행하라는 주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제규범인 법은 낙태죄의 적용 범위를 실효성 있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종교와 시민사회는 경제, 사회적 이유로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자유롭지 못한 선택을 방조하는 현실을 개선하고 임신 여성은 물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제도계발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9월 17-18일에 진행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과 대안적 성찰" 국제 학술대회는 줌회의로도 이뤄졌다. ⓒ정현진 기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란 무엇인가?

한국사회에서 급격히 논의되기 시작해 헌법 불합치 결정에 이르기까지 낙태죄 폐지 찬반론 간 논의는 여성의 재생산권리와 자기결정권, 그리고 태아의 생명권의 이분법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의 재생산정의 운동의 의미와 과제”를 주제로 발표한 나영정 위원(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기획운영위원)은 재생산 정의와 성적 권리의 문제를 짚었다.

나영정 씨의 설명에 따르면 ‘재생산권’은 1970년대 서구에서 시작된 낙태죄 폐지운동으로서 ‘프로초이스 운동’에서 확장된 내용이다. ‘재생산권’은 임신을 중지할 권리뿐 아니라 임신과 출산의 시기와 빈도의 자율적 조절 권리, 피임할 권리, 보건서비스에 접근할 권리, 가족계획에 대한 정보와 서비스에 접근할 권리,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 상태에 도달할 권리’로서 재생산 건강권까지 ‘생식’의 차원을 뛰어넘는 포괄적 개념이다.

나영정 씨는 생명권과 존엄성, 재생산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장애인의 삶과 흑인의 인권운동을 들며, “우생학적 인종차별이 역사적, 구조적으로 누적된 상황에서 유색인, 여성, 소수자들의 재생산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타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정의’ 관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는 떨어질 수 없는 문제이며, 약자와 소수자의 성적 권리를 옹호하고 성차별과 성폭력, 성적 낙인을 줄여 나가지 못하면 재생산 정의의 실현도 요원하다”며, “재생산권이 나이, 성별, 장애, 인종, 젠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가족형태 등에 따른 차별과 낙인을 긴밀하게 다루고 주거권, 노동권, 가족구성권 등을 연결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생산 정의의 과제를 위해서는 “낙태죄 완전 비범죄화, 모자보건법 폐지,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기본법 제정과 패러다임 전환, 사후피임약과 콘돔 접근성 확대, 장애인과 이주민,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 보장과 의료접근성 확대, 불안정 노동자의 소득과 휴식권 보장, 불안정한 주거 해소, 탈시설 권리 보장, 성소수자와 동거가구 등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영정 씨의 발표에 대한 토론에 나선 최현정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재생산 정의 운동의 목표가 하나의 법률만으로 완성되거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지속적 고민의 과제를 제시했다.

최 변호사는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는 진공 상태에서 혼자 결정하고 행사할 수 없고, 각자의 몸이 위치한 사회경제적 위치에 의존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권리 행사를 가로막는 조건과 재생산 권리를 침해하는 요소를 해소해야만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다. 가임기나 혼인 중인 여성에 한정된 특정한 관리 대상에서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청소년, 노인 등을 포함한 모두의 권리로, 인권과 건강, 평등의 방향으로 입법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발제자가 제시한 낙태죄 완전 비범죄화, 약물유산유도제 도입, 사후피임약과 콘돈 접근성 확대, 사회적 약자의 자기결정권 보장과 의료접근성 확대 등이 단기 과제라면, 불안한 주거 해소,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 등은 장기적 과제”라며, “이러한 과제의 수행을 위해서는 낙태죄 관련 형법 조항이나 모자보건법 조항 일부 수정을 넘어서는 입법 논의가 필요하며, 원칙 제시와 개별 법률 정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4월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나던 날, 헌법재판소 앞에 모여든 낙태죄 폐지 찬반 측. ⓒ김수나 기자

이분법을 벗어난 낙태 담론의 건설적 진행 위해서는 과학적 사실 기반 중요
담론 주체들은 다른 담론을 듣고 성찰할 수 있어야

의사 박태훈 씨는 의학적 성찰을 통한 낙태 담론을 들여다봤다.

박태훈 씨는 “여성의 생식 권리(낙태 권리) 담론과 초기 인간 생명 옹호 담론으로 이뤄진 그간의 이원론적 대립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며, “낙태 담론의 건설적 진행을 위해서는 과학적(발생학적) 사실 기반은 매우 중요한 기초지만 ‘생활 세계’에서는 인간학적 통찰을 요구한다. 과학적 언어를 통해 공통의 합의에 이르고, 인문학적 언어를 통해 통합적 생활 세계에 적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먼저 과학적으로 ‘수정’, ‘수정체’가 인간 개체로서 최초 생명체라는 점을 확인하고, “수정체가 인간의 시작이라는 과학의 언명은 인간 생명의 보편적 존엄이라는 자연법적 원리를 소환한다”며, “형법에서 다뤘던 인간의 인격성 법적 기준은 ‘태동 시기’와 ‘체외 생존 가능성’을 중심으로 형법적 정의의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에 이러한 과학적 언명을 통해 초기 인간의 인격성이 수정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성찰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인간의 시작은 수정체”라는 과학적으로 타당하고 명료한 견해는 그 자체로는 도덕적 당위가 되지 않더라도 도덕적 사실에 대한 서술일 수 있으며, 이는 본질적으로 초기 인간에 대한 도덕 담론을 제기해 사회 담론을 이끈다고 설명했다.

박태훈 씨는 ‘담론’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대립되거나 서로 다른 담론 명제에서 불명료함을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러한 불명료성은 담론의 결론보다는 과정의 ‘맥락’을 통해 더욱 명료해질 수 있다면서, “또한 담론의 주체들은 타자의 말을 듣고 성찰하는 주체가 아니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생명 담론 지지자들은 생명에 대한 깊은 책임 의식을 가지고 진리를 보편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하며, 태아에게 가했던 불공정하고 비극적 사회 현실 자체를 함께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한편, “여성주의자들 역시 자의적 공리주의에 기반한 개인주의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여성 인권 담론을 통해 상대방인 생명 담론을 더욱 가깝게 이해하고, 생명 담론 역시 여성이 처한 어려운 상황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최근 여성주의의 다른 흐름에서는 여성의 ‘선택’은 인권으로 확충하고 ‘생명’은 생명에 대한 질적 접근으로 변형해 양자를 수렴하고 그 공간에서 친여성적 낙태 정책을 모색한다”면서, “낙태가 여성의 문제 이전에 사회적 약자의 공통 문제임을 더 깊이 성찰한다면 보수 정치 프레임에 낙태 논쟁이 갇힐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낙태 담론은 여성이 본능적으로는 결코 원할 수 없는 낙태에 처한 어려움과 절박한 인권의 문제를 함께 사유하고 그 안의 사악한 사회악을 슬기롭게 분별하며, 이 땅의 고통받고 약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극심한 차별의 문제를 인간의 보편적 인격과 생존권 문제로 함께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낙태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전망을 가질 수 있다.”

박태훈 씨는 이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담론 중재자”로 봤다.

그는 “분쟁 해결 촉진, 합의 가능한 초안 마련과 제시, 양자 소통과 문제를 정의해 구조를 만드는 역할”로서 중재자 역할을 제안하며, “낙태 문제의 어두움은 교회 안에도 이미 들어와 있으며, 교회 안에서도 세상의 어두움과 고통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낙태 담론에 참여하고자 하는 신학자는 가톨릭 생명 윤리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 문헌에 대한 동의 안에서, 인간학적이고 신학적인 접근으로 세상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특히 청소년들의 임신과 출산, 낙태 문제에 있어, 이분법적 담론을 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미지 출처 = 국제학술대회 자료)

자기결정, 재생산 건강권 보장에서 더욱 소외되는 청소년들

이번 토론에서는 낙태 문제의 일반적 대상인 성인 여성 외에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는 대상, 특히 청소년들의 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 문제를 짚었다.

최윤 교수(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와 강선경 소장(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는 “특히 청소년들은 임신을 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기보다는 가출유도, 불법 수술에 대한 유혹, 가출 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잘못된 돈벌이의 유혹 등에 쉽게 노출된다”는 현실을 짚었다.

최 교수와 강 소장은 이런 청소년들의 현실에서 감안해야 할 새로운 입법 논의 쟁점은 “청소년 대다수가 사회, 경제적 이유로 임신 중단을 시행한다는 것”, “임신 22주까지 임신 중단 가능하다는 기준은 의료적 기술과 비용 등 조치가 취해질 때 가능하며, 태아와 여성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성년자들의 임신 중단에 대한 이해와 지식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 역시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동시에 의료 및 상담 서비스 접근권을 막는 요인이 된다.

이와 더불어 임신 중단 여부 결정 전 숙려기간 제도 의무화는 안전한 시기를 놓쳐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으며, 특정 종교나 개인의 윤리적 기준에 따라 왜곡되거나 편향된 정보나 설득, 강요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자들은 “청소년의 재생산 건강 및 권리”를 위해서는 “청소년 임신 중단에 대한 찬성과 반대라는 판단이 아니라 지원을 늘려야 하며, 성적 욕구의 건강한 해소법 및 피임 교육, 임신한 청소년들의 비난 중단, 학업 중단 방지 및 지원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청소년의 재생산 건강 및 권리” 발제에 토론자로 나선 강준혁 교수(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는 “청소년의 임신 중단 문제는 단순히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하는 문제가 아니”라며 근본적으로 사회적 담론을 확장시켜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분법적 담론의 구조에서 특히 청소년들은 그 임신, 낙태를 오롯이 자신의 문제로 떠안아야 하며, 여러 심리, 사회적 위험에 노출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분법적 담론의 틀을 깨고 태아의 생존권, 임신 당사자 생존권, 청소년기라는 발달상 특성, 기본적 인권 등 다양한 가치를 고려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문화 구조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오히려 자기 파괴적

최진일 연구원(서강대 신학연구소)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 사이 상호 보완성 연구” 발표에서 “낙태를 향한 여성 자기결정권에 내재된 여성 스스로를 향한 파괴성”을 우려했다.

최 연구원은 “낙태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여성/여성의 몸이 통제받는 사회적 요건들과 가부장적 문화를 비판하지만, 그들 또한 태아의 생명을 통제하려는 이중적 태도를 갖는다”며, “스스로도 죄의식을 갖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지, 그 행위를 용납하면서 죄의식도 해소해 줄 수 있도록 낙태를 비범죄화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또 “낙태가 쉽게 행해지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임신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로 전락하며, 그들의 주장은 여성만을 위한 법 제정과 시행을 위해, 국가를 마치 그녀들만의 요구에 부응해야 할 제도적 도구로 전락시킨다”며, “여성의 입장을 강조하다 보면, 보편성을 잃고 편파적 입장에 기울어지기 쉽기 때문에 그들이 비판하는 가부장적 입장과 별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 연구원은 “성이 자유로워지면서 성과 사랑, 생명이 분리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남녀의 사랑 안에는 항상 제3의 주체인 새로운 생명이 내재돼 있고, 자기 결정권에는 그 생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권한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에게 임신, 출산, 양육의 책임이 떠맡겨지는 분위기에서 여성들은 아이로 인해 자아실현이나 삶이 끝나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며, “그럼에도 낙태가 합법화 되면, 갈등상황에서 낙태 결정이 최선의 구호조치로 인식된다. 그러나 여성들이 요구해야 할 것은 사회문화적으로 여성의 삶과 태아의 생명을 모두 구하는 것이지 최후의 방어로써의 낙태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를 마친 뒤, 김용해 신부는 “낙태를 둘러싼 다양한 관점, 특히 의료, 과학적 관점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면서, “낙태 문제는 여성, 남성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든 사회가 끌어안아야 할 문제이며, 이분법적 논리를 넘어 사회문화적, 인권적 측면에서 오래 성찰하고 단계적으로 제도를 만들어가야 할 문제”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정현진 기자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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