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정평위 노동사목소위, '포스트코로나와 4차혁명 시대의 노동' 토론회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코로나 이후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묻는 토론회를 열었다.

22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소위원회가 마련한 토론회에서는 “가톨릭교회 가르침에서 노동의 의미와 우위성”에 대해 이동화 신부(부산가톨릭대)가 발제했으며, 이에 대해 박영기(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 김종진 연구위원(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정수용 신부(노동사목소위원회 총무)가 각각 토론을 맡았다.

토론회에 앞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배기현 주교는 1891년 반포된 교황 레오 13세 회칙 ‘새로운 사태’의 배경이 된 당시 노동 현실을 언급하며,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또 다른 “새로운 사태”를 주목했다.

배 주교는 “교회는 모든 인간이 존엄함을 지니는 이유를 하느님 창조 사업과 인간이 지닌 하느님의 모상성에 있다고 고백하며, 그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 바로 노동에 있다고 선포해 왔다”며, “오늘날 특히 가난한 이웃들이 겪는 어려움의 중심에는 노동의 변화가 있으며, 그것이 코로나19와 가속화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다시 노동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교회의 노동에 대한 가르침, ‘새로운 사태’, ‘사십주년’, ‘기쁨과 희망’, ‘노동하는 인간’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성, 사유재산에 대한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우위성

“코로나19가 가장 가난한 이들의 일상의 삶, 그중에서도 생계가 달린 일자리를 급속하게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바라보면,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서 떠난 적이 없었고,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더욱 긴박한 문제가 됐다. 일자리의 관점에서 볼 때, 코로나19는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동화 신부는 “노동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것이며, 개인적인 차원이라도 노동은 언제나 이전 노동의 결과 위에서 수행된다”면서, “노동의 형태와 대상이 노동수단과 생산수단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특히 노동의 형태는 이전 노동의 결과인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달라지므로 기술발전과 노동의 변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신부에 따르면 1차 산업혁명이 ‘공장의 기계화’라면 2차 산업혁명은 ‘공장의 자동화’로 이해될 수 있다. 3차 산업혁명은 반도체 기술,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기술 시대를 열었으며 4차 산업혁명은 이를 기반으로 정보화, 초연결성 산업의 문을 열었다. 이는 인간 사이, 사물 사이 그리고 인간과 사물 사이의 상호 연결을 의미하며, 전통적 제조업과 정보통신의 융합을 가져왔다. 이전의 산업혁명 단계에서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의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터에서 내쫓기기도 했지만 공업 노동 이외의 새로운 노동, 즉 서비스 노동이 새롭게 등장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빼앗고 일자리를 최소화하고 있다.

9월 22일 주교회의 정평위 노동사목소위원회가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 시대 교회 노동의 이해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 = 주교회의 미디어부)

이런 현실을 짚기 위해 먼저 이동화 신부는 ‘새로운 사태’, ‘사십주년’, ‘기쁨과 희망’, ‘노동하는 인간’ 등 교회 문헌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주목하고 가르치는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살폈다.

이동화 신부는 가장 먼저 노동 문제를 언급한 사회 회칙인 ‘새로운 사태’와 이후 ‘사십주년’은 19세기 산업사회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를 옹호하고 대변하는 것이었으며, 사회구조의 변화보다는 온정주의적 접근이었지만, “이를 반포한 레오 13세와 비오 11세는 노동의 존엄을 천명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노동의 결과로서 노동자의 자유재산 권리를 자연법적 권리로 옹호했다”고 설명했다.

또, ‘기쁨과 희망’, ‘노동하는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노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이 두 문헌에서는 “노동의 인간학적 의미”를 짚으면서, “인간 활동, 곧 인간이 여러 세기를 거쳐 자신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려는 저 거대한 노력 자체가 하느님 계획에 부합한다”(‘기쁨과 희망’)고 이르며, ‘노동하는 인간’에서 ‘노동’은 “육체적 행위뿐 아니라 정신적 행위까지 포함하며, 노동은 인간이 행하고 생산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이 누구인지에 관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어 이 신부는 문헌이 밝히는 “노동의 우위성”에 대해 설명하며,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격주의적 인간학 관점에서 인간의 활동을 타동적, 자동적으로 나눠 봤다. 인간의 활동이 활동 주체를 넘어 외부에 영향을 끼치고 생산을 통해 객관화되므로 타동적이며, 행동 주체 내면에 영향을 주고, 인간 자체를 형성시킨다는 점에서 자동적”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땅을 정복하라”는 신적 계명을 수행하는 존재이며, 또한 인격적 존재로서 인간은 노동의 주체이고,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주체다. 따라서 인간은 노동의 과정 속에서 자신을 형성하는 존재이고 노동은 인간을 위한 것이며, 자신이 행하는 노동의 대상과 상관없이 모든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평등하다.

이동화 신부는 “따라서 노동은 ‘수행된 노동’(객관적 노동, 결과물)보다는 ‘수행하는 노동’(주관적 노동, 노동 활동)이 우위에 있으며, 이런 원리에 의해 노동의 객관적 결과인 자본에 대해 인간 활동으로서의 노동이 우위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또 자본은 이전 노동의 결과물로, 노동을 위해 있어야 하며, 또한 자본은 인간 노동의 협력자라면서, “나아가 노동의 우위성이라는 원리로부터, ‘사유재산에 대한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우위성’이라는 원리가 도출된다”고 설명했다.

이동화 신부는 교회 문헌과 창세기 창조 설화로부터 나온 “노동의 우위성” 가르침은 현재 코로나19, 4차 산업혁명의 도전 앞에 다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 또다른 “새로운 사태”로 인한 ‘실업’은 인간으로부터 노동할 권리를 빼앗고,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외시키고 있다면서, “현재로서 노동시간의 재분배와 노동의 외연 확장 외에는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더 많은 이가 일하기 위해 더 적게 일해야 하고, 시장 바깥의 창조적이고 사회적 인간 활동에 소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노동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어, “노동시간의 재분배와 노동의 외연 확장은 인간 노동의 결과로 이루어진 기술과 생산 발전의 사회적 재분배와 연결되어 있다”며, “이는 ‘재화의 보편적 목적 우위성의 원리’의 관점, 공정한 임금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 공정한 임금이 시장에서 이뤄지지 못한다면 사회 보장과 사회임금 등 사회적 조처, 기본소득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 출처 = CBCK 노동소위 토론회 자료집 2020)

전 국민 고용보험 정책 마련과 시행 절실

발제에 이어진 토론에서 박영기 노무사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 변화를 “무한 경쟁과 양극화, 개인화 및 연대의 약화, 고용 없는 성장” 등의 현상으로 봤다.

그에 따르면 기술 발전에 따라 직업은 늘어나지만, 소멸되는 일자리의 특성은 “단순 반복 노동, 위험처리 직무, 반복적 전문가, 안내 및 정보전달 직무” 등이며 전반적으로 소득이 낮은 직군이 더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박 노무사는 이러한 현상 앞에서 필요한 것은 “개인과 노사 당사자 입장에서는 창의적 노동 개발과 인정, 노사 간 협력, 연대적 노동”이며, 국가와 사회적 측면에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 정책 마련과 시행”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는 이들은 전체 취업자 가운데 절반”이라며, “보험설계사, 간병인 등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와 자영업자, 일용직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일시적 지원금이 아닌, 전 국민 고용보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왜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이어야 하는지 물어야 할 때”
근로기준법이 아닌 “모든 일하는 시민을 위한 법” 필요
노동안전보건 영역 규정에 ‘바이러스 전염병’ 고려해야

김종진 연구원은 코로나19 시대 노동의 상황, 이후의 변화와 대응 과제를 제시했다.

김 연구원은 코로나19 이후 대비를 위해 “노동 현장의 직업 과정과 근무형태 등 전반적 노동 문제 재구조화, 노동안전보건 영역의 새로운 규정, 기술 발전과 업무 형태 변화 과정의 새로운 차별 문제에 조응한 정책 논의”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더불어 기술개발, 데이터 입력자 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인권, 노동, 젠더 감수성이 결여되지 않도록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경험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대응 과제를 예측하면서 노동정책의 새로운 제도화, 임금노동자와 비임금노동자를 포괄하는 ‘일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법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며, “고용안전망만이 아닌 사회안전망 그리고 불평등 해소 정책이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 새로운 규범과 표준이 아니라 더 나은 규범과 표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 출처 = CBCK 노동소위 토론회 자료집 2020)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성, 교회 안에서 확고히 자리 잡았는지 성찰할 때
각 교구 노동사목 전담사제 및 기구 신설 필요

마지막으로 정수용 신부는 “가톨릭 노동의 의미와 우위성을 되새기기 위한 사목적 제안”을 통해 교회 공동체와 사목 안에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바를 제시했다.

정 신부는 먼저 “교회의 노동 이해와 우위성에 대한 내용이 정말 교회 공동체 안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며, “교회 역시 세상의 영향을 받으며 자본주의적 사고 속에서 살아가고, 효율의 극대화 앞에서 교회의 노동에 대한 가르침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유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의 노동에 대한 이해가 노동자 권리에서 노동의 영성, 노동의 복음으로 심화 발전해 왔다는 지적처럼 각 교구 안에서 이를 추구할 현실적 노력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라고 물으면서, “병원, 학교, 사회복지기관 등을 운영하는 사업자의 입장에서 교회가 실정법을 어기지 않는 정도의 인식이 아닌 교회의 가르침이 반영된 시대를 선도하는 노동 이해가 요청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교회 조직 구성상 노동사목 전담사제와 기구의 신설이 필요하다며, 한국천주교회 사목지침서(188조)에 “교구 직권자는 노동사목 전담 사제를 임명하고 관계 위원회를 구성해 가톨릭 운동 단체를 보호하고 그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대다수 교구에서는 전담 사제나 기구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 신부는 “노동의 의미와 우위성이 보다 폭넓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사목자들의 관심이 요청되며, 노동/노동사목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노동사목은 공단 지역의 노동자, 또는 해고나 실직한 노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 본당에서 주로 만나는 신자들 역시 이들과는 거리가 멀다. 별도의 노동사목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함께 본당 관할 구역 안에서 노동의 문제를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태오 복음 20장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인용한 정 신부는 “그리스도인 모두의 노동 이해는 자본주의가 협소화시킨 상품으로서의 ‘노동력’과 ‘노동’을 구분하려는 노력에서 이뤄진다면서,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유일한 기준으로만 노동을 노동력으로 협소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소외와 배제가 벌어진다. 신앙인은 세상의 논리가 아닌 복음의 논리를 추구하기에 경제와 노동에 대한 문제 역시 공동선을 추구하는 입장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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