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공동기획 2] 가톨릭노동장년회 남명수 회장

<가톨릭평론>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공동기획으로 노동, 빈곤, 인권 현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코로나19의 그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짚어 보고자 한다. 두 번째로 가톨릭노동장년회에서 활동하는 남명수 회장을 만나 봤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양질의 노동’은 “인간 존엄성을 지키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임금을 받으며,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되고, 어떤 종류의 차별 없이, 안전하고, 사회보장을 갖춰 삶을 풍요롭게 지키고, 은퇴 뒤를 준비할 수 있는 노동”이다.

코로나19로 더욱 얼어붙은 노동 현실에서도 이러한 노동의 가치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가톨릭노동장년회(가노장) 남명수 회장(59, 임마누엘)이다.

그는 2015년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처음 '양질의 노동 캠페인'을 시작한 가노장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노동 현실은 양질의 노동과 달리 늘 팍팍했다.

12살부터 노동자로 살아온 그는 지금은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 7년 동안 했던 택배 일을 접고, 건설 일을 한 지 올해로 7년째다. 적게는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으로 퇴근 뒤 다른 활동을 하기 어려워 택배를 그만뒀지만, 건설 노동 역시 지방에 머무는 일이 잦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최근까지 제주도에서 일했던 그는 이제 가능한 집에서 오갈 수 있는 거리에서 일하려 한다.

오랜 노동으로 그의 몸은 많이 상했다. 평생 몸을 썼던 흔적은 몸 곳곳에 남았고, 올해 초 결국 양쪽 어깨 근육이 파열돼 수술까지 받았다. 자신에게 가장 큰 재산은 몸이라면서도 일은 요령 피우지 말고 적극적 의지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강직한 노동자였다.

곧 예순이 되지만, 그는 앞날이 걱정돼 쉴 수 없다. “몸이 성하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찌 될지, 그날그날 살아야 하는 삶이라 막막한" 심정이다. 평생 일했지만 노후대책은 여전히 없고, 건설 현장 정년은 3년 밖에 남지 않아서다. 오랜 세월 재봉 일을 해온 그의 아내나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학자금을 갚는 딸도 매달 최저임금 정도를 번다. 이대로면 노후도, 자녀들의 결혼도 빠듯하다.

남명수 회장이 일터에서 파이프 절단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남명수)

건설업계, 코로나19로 일자리 줄고 아파서 일 못 해도 무급

남명수 씨가 코로나19로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줄어든 일자리다.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이 시작된 지난 2월 어깨 수술 뒤라 일이 없어 한 달간 용역을 나갔을 때다. 그는 다행히 일을 얻었지만, 새벽 4시부터 인력회사에 모였던 60명 가운데 40명은 일이 없어 돌아가야 했다. 일자리는 평소의 절반 수준이었다.

여름이면 땀범벅이 되는 현장에서 내내 마스크를 쓰고 일했던 것도 고역이었다. 식사 때만 마스크를 벗도록 했지만, 땀 때문에 작업자의 절반 가까이는 이를 지키지 못했다. 방역 당국과 언론은 연일 "아프면 쉬라"고 강조했지만 “회사처럼 아파서 일을 못 하면 연차처리가 되지 않고 무급이 되는” 일당제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작업 현장 안전규정은 업체의 책임 회피용”

그는 건설 현장에서 바깥 토목작업과 실내 인테리어 금속 작업을 병행했다. 토목 현장에서는 추위와 싸웠고, 인테리어 현장에서는 먼지와 싸웠다. 공사 중인 건물에서는 각종 자재에서 나오는 분진이 엄청난데도 대부분 현장엔 환기 시설이 없다. 안전규정이 형식적으로 지켜지는 것도 문제다. 업체가 안전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고 시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보통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하는데 조적(벽돌 쌓기)하고 그것을 갈면 작업장이 온통 먼지에요. 환기장치 설치가 원칙이지만 없죠. 그런데도 안전 관리자는 ‘먼지가 많네’ 할 뿐 별다른 조처를 안 해요. 또 안전벨트를 안 매도 되거나 실제로 벨트를 고정할 고리도 없는데 매고 있으라고 해요. 사고 나면 업체가 책임을 면하고 우리는 관리했으니 문제 없다고 하기 위한 것이지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안전이 아니라 보여 주기 식이에요.”

쉬는 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일도 많다. 현장 관리자는 아침마다 힘들면 쉬었다 하라고 하지만 노동자 스스로 쉬는 시간을 챙기기란 어렵다. 그는 노동자가 쉬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에 현장의 전체 작업 중단 같은 실질적 체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여름에 땀이 많이 나니까 물이나 음료를 마시라고 하는데 쉽진 않아요. 작업이 팀별로 이뤄지다 보니 팀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어떤 경우 물 한 번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일 정도죠. 말로만 각자 알아서 쉬라고 하면 쉴 수 없습니다. 정말 노동자를 위한다면 가장 더운 시간대나 고된 시간대에 작업 자체를 중단시켜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지요.”

많은 건설 현장이 원청에 하청, 재하청 그 밑에 소규모 업체, 그 업체에서 일을 받은 작업팀들로 운영되다 보니 안전규정은 형식적이다. 무엇보다 원청이 책임 있게 안전관리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장에서는 작업자가 딛고 올라가는 작업대가 중요해요. 작업대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면 안 되는데 이를 묵인하곤 해요. 원청이나 하청이 안 해 주면 각 팀이 장비를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요. 사다리 작업도 2인 1조로 진행해야 하지만, 그러려면 인력이 더 필요하고 돈이 더 들죠. 공기 안에 끝내려면 안전규정을 못 지켜도 빨리빨리 할 수밖에 없죠. 큰 업체에서는 그나마 잘 지켜지는 편이지만, 소규모 업체에서는 지켜지지 않아요. 안전규정이 형식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면 더욱 강력한 제제가 필요합니다.”

남명수 회장은 "교회가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빛이 되고자 한다면 노동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나 기자

“죽음조차 잊히는 노동자 경시 풍조, 달콤한 과일은 언제나 자본가 몫”

노동자가 부품이 되는 현실, 알려지지도 못한 노동자의 죽음이 허다한 현실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익의 극대화만 탐하는 자본의 논리가 강고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이익을 내도 그것은 노동자가 일한 덕분이 아니라 기업주의 능력으로만 인식된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노동, 노동자는 경시돼요. 우리는 형태만 다를 뿐 모두가 노동자인데, 일하다 죽어도 보도조차 안 되잖아요?”

그는 10대 노동자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공돌이, 공순이’란 말을 떠올렸다. 그 표현이 너무 싫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노동을 당당하게 말하기도 어려웠다. 노동, 특히 몸을 쓰는 노동을 경시하는 인식이 자신에게도 뿌리 깊게 있음을 실감했다. 가톨릭노동청년회에 이어 가노장 활동을 거치면서 비로소 노동의 가치를 깨달았고, 노동자임이 당당해졌다.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힘들고 노력한 만큼 대가도 따르지 않는 사회구조가 더 문제입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당당하게 일할 수 있고, 가정을 꾸리고 자신을 실현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받는다면, 노동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뀔 겁니다. 일이 힘들기만 하고 혼자 살기에도 빠듯한 임금구조라면 청년들도 육체노동을 기피할 수밖에 없지요.”

회사의 이익이 노동자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그는 “달콤한 과일은 자본가가 다 가져가고, 그 찌꺼기가 우리 삶처럼 느껴진다”면서 “노동의 신성함”, “노동을 통해 예수님의 구속 사업에 동참한다는 것”을 실제 노동자의 삶에서 의식하기란 “도를 닦는 것처럼 힘들다”고 고백했다.

생활에 쪼들리고 많은 노력에도 지칠 때면 허탈감도 밀려오지만, 그는 가노장 활동을 통해 다시 힘을 낸다. 가노장에서 노동자 회원들을 만나 서로 질문하고 삶을 나누면서 새롭게 방향을 찾고, 의지를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코로나19로 모임이 장기 중단돼 요즈음은 무력감마저 느낀다. 길어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안전을 위해 서로 조심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심하고 있다.

“본당에서 사회교리 접목한 교리 교육하고 싶어....”

내년 1월이면 그는 회장 임기를 마친다. 7년 전 그가 속한 인천교구 가노장 20주년 기념미사에서 그는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고 노동자가 귀한 인간으로 여겨지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느리지만 힘차게 나아가자”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지금 그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신자 대부분은 노동자입니다. 교회가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빛이 되고자 한다면 노동문제에 더 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해요. 몇몇 사제의 활동이나 사명 의식, 미사나 연명에 그치지 말고, 교회 내에서 사회교리 등을 통해 노동의 가치, 노동문제가 왜 중요한지를 교육해 신자들의 의식이 깨어나도록 도와야 합니다.”

교회가 이웃사랑을 자기 주머니에 있는 재물을 내놓는 것으로만 강조하고, 예전만큼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아 매우 안타깝다는 그.  무엇보다 사회의 어둠에 교회가 비춘 등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교회 지도자들의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에게는 지금 꿈이 하나 있다. 그는 6년 과정인 통신교리신학원 5년차로, 졸업 뒤엔 사회교리를 전문적으로 배울 생각이다. 목표는 본당 교리교사. 사회교리를 접목한 교리 교육을 통해 사회에 대한 깊고 다양한 가톨릭 교리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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