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상실과 함께 살아가고 기억하기

현재 코로나19로 인하여 국내에서는 406명이, 전 세계적으로는 99만 명이 사망하였다. 사망하신 분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기를 염원한다. 또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비록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를 물리적으로 떨어뜨려 놓았어도 애도로 연결하는 마음은 사라질 수 없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나서 고인을 자기 가슴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간직한다. 고인은 멀리 떠나갔지만 마음에서만큼은 고인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가까운 타인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고 공허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때로는 죽음을 부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한다. 이렇듯 유가족들이 겪는 상실감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상실에 맞서 기억하기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상실에 맞서 할 수 있는 것은 고인을 기억하는 일이다. 심리상담가이며 작가 인현진 씨는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내 방식대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사람은 살던대로 죽는다", 166-167)이라고 표현했다. 비록 고인은 떠났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 고인을 기억한다는 것은 ‘고인의 자리’를 만든다는 의미다. 이렇게 고인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모아 우리의 공동 기억으로 자리 매김될 때 어쩌면 우리는 상실에 매어 있기보다 새로운 의미로 죽음과 상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몸짓은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고인에 관한 이야기와 기억을 공유하고 자신의 삶에 고인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해 볼 수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는 고인에 대한 의례(제사, 예배, 미사 등)를 통해 고인을 기억할 수 있다. 고인의 유품을 잘 정리해 보관할 수 있고 고인이 평소 가치를 두었던 활동을 이어가면서 고인을 기억할 수도 있다. 고인을 떠올리며 글쓰기를 할 수 있고, 고인의 사진을 정리해서 영상 만들기와 같은 활동도 시도해 볼 만한다. 지금같이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다양한 비대면 추모활동도 기획해 볼 만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코로나19 유가족, 유품 돌려받지 못해

지난 6개월 동안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례들 가운데 고인의 휴대폰 등 유품을 돌려받지 못한 유가족의 사례가 있었다. 그 휴대폰 안에는 고인이 남긴 다양한 사진들과 가족, 친척, 친구들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은 고인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매개체이며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것은 유가족에게 또다른 상처로 남는다. 애도에 대한 감각이 부재한 사회가 만들어 낸 가슴 아픈 일이다. 

고인의 유품이 소홀히 다뤄진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재난의 현장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현재 우리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재난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어떻게 의례하고 추모하며 기억할지에 관한 사회적인 공론화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고인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 희생의 의미를 어떻게 두어야 할지 난감한 조건에 놓인다. 지금은 철저히 개인에게만 맡겨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상실과 함께 살아가기

유가족과 지인들은 일상의 곳곳에서 고인 없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상실경험 이전과 이후의 삶은 확연히 다르다. 지금까지 믿고 있던 가치관이 송두리째 달라지고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 사람을 더 이상 예전처럼 대할 수 없다. 그것은 상실과 고통이 없었던 일이 아니라 상실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실존적인 모습이다. 죽음학 분야 최고 전문가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가족 안에서도 고인의 부재 이후 구성원들 사이에 혼란스런 감정에 놓일 수 있으며 다양한 역할의 변화가 생긴다.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는 것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다양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고인이 가족 내에서 경제적인 책임을 갖고 있었다면 어떻게 하든 경제적 부분을 또 다른 가족이든 사회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가족들이 상실과 고통 가운데에서도 이를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몫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잊지 않고 싶은 당신에게"에서 재난 피해자들이 역량을 기르기 위해 시간을 버틸 지원이 필요하고 이런 지원에는 의료적, 정서적, 경제적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이 포함되며 피해자 중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현재 코로나19로 사망할 경우 유가족들은 장례비 정도만 국가로부터 지원 받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재난과 재해는 현재 진행 중이다. 재난과 재해라는 긴 터널, 어디쯤 와 있을지 어느 누구도 모른다. 최근 코로나19가 재 확산되며 확진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중증환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니 마음이 무겁다. 감염병으로 인한 고통과 죽음 앞에서 애도하는 삶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지금 코로나19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가 맞이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애도는 깨지고 상처 입은 영혼, 더는 아침에 일어나기를 원치 않는 영혼, 살 이유를 찾지 못하는 영혼, 엄청난 상실을 경험한 영혼을 변화시킨다. 슬픔은 한편으로는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

 

최은아
25년 동안 천주교인권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상임활동가로 일했다.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인권, 애도, 노동에 관해 공부하며 글을 쓰고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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