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처럼 우리 앞에 놓인 어두운 길 밝혀줄 등불

(존 앨런)

커다란 위기가 지구를 흔들었고 수많은 사람이 병을 앓고 공포의 씨를 사방에 뿌렸다. 이 충격으로 사회는 양극화하고 의견들은 극단적이 되었으며, 새로운 모습의 정치가 더 강화되었다. 이 정치는 시끄럽고, 화를 잘 내며, 타인의 악마화와 잃어버린 민족의 영광을 되찾는다는 약속을 전제로 한다.

무언가 극적인 변화가 없다면 세상은 길고 잔인한 갈등의 시대가 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을 써서 너무 늦기 전에 대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그는 10월 3일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새 회칙인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 서명했고, 교황청은 4일 이를 발표했다. 

이 회칙은 거의 1세기 전인 1931년에 교황 비오 11세가 냈던 사회회칙 ‘40주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40주년’은 (역자 주- 교황 레오 13세의 노동회칙 ‘새로운 사태’(1891)의 40주년) 대공황이 시작된 지 2년 뒤였고,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가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집권을 향해 달려가는 길을 아무도 막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나왔다.

이 회칙에서 비오 11세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그 반대편의 공산주의 둘 다 부적당하다고 지적하고 전통적인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에 뿌리를 두지만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는 제3의 길을 모색했다.

어떤 면에서는, ‘40주년’은 비오 11세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폭탄이 터지기 전에 해체해 보려던 시도였다. (이는 6년 뒤에 나온 회칙 ‘교회와 독일 제3제국에 관하여’(Mit Brennender Sorge)에서 국가사회주의(나치)를 비난하면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이런 노력들은 실패했고 비오 교황이 지켜봤던 폭발은 그의 상상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형제들’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만 이 두 회칙이 놓인 배경과 의미는 놀랄 정도로 흡사하다.

이번 회칙은 2013년의 ‘신앙의 빛’(이 회칙은 실제로는 전임교황 베네딕토 16세 시절에 준비된 것이다.)과 2015년의 ‘찬미받으소서’에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3번째 회칙이고, 지금까지 그의 것으로는 가장 포괄적인 회칙이다. 이 회칙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적,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는 느낌인데, 4만여 단어가 조금 넘는 분량에 그의 모든 교황직을 다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형제들’은 무수한 논점을 담고 있으며, 따라서 의심할 여지없이 수없이 많지만 서로 다른 비판을 받을 것이다. 특정 문구를 현재의 특정 상황에 연결시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인이라면 제15항, “비난과 반박이 이렇게 비겁하게 교환되는 가운데, 토론은 부동의와 대결이 영구화된 상태로 퇴보한다”를 읽으면서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민주당후보의 대선 토론을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굳이 말해 두자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든 형제들'을 쓴 것은 두 후보가 싸우기 전이고, 미국보다 훨씬 더 큰 지평을 바라보며 쓴 것도 분명하다. 이 점에 관해, 그는 제7항에서 자신은 코로나19가 터지기 전부터 이 회칙을 쓰기 시작했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아마도 이 회칙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회칙이 코로나19를 포함해 지금 21세기 초의 정치, 경제 생활을 깊이 있게 묵상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 두 가지 결함 있는 대안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그 하나이고,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이 다른 하나다. 그가 제시하는 “제3의 길”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복음 우화에 뿌리를 둔, 인도적 형제애의 사회 윤리다.

2020년 3월 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텅 빈 베드로 광장에서 우르비 엣 오르비 축복 기도를 했다. (사진 출처 = CRUX)

신자유주의의 내적 모순들에 대한 그의 진단은 특히 168항에서 날카롭다.

“시장은, 그 자체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이 신자유주의적 신앙의 도그마를 믿도록 그 얼마나 요구받든지 간에 말이다.” “팬데믹에 직면해 세계 체제들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시장 자유에 의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줬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개인주의 비판은 경제학 문제만이 아닌 문화 문제이기도 하며, 좌파 대 우파의 차원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에 중요성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눈에 (미국에서) 낙태권을 주장하는 세속 진보주의자들도 “신자유주의”적이기는 정부 개입에 불평하는 컨트리클럽 공화당원들만큼이나 마찬가지다. 둘 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타인에 대해 “쿨하고, 안락하고 지구화된 무관심”이라고 부르는 것을 반영한다. (역자 주- 컨트리클럽 공화당원이란, 공화당원 가운데 돈에 관해서는 보수적이지만 낙태, 검열, 동성애 등에 대해서는 리버럴하거나 중도, 또는 무관심한 고학력 부자 계층을 말한다. 조지 부시 가문,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미트 롬니 등이 대표적이다.)

신자유주의의 해독에 대한 대안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화의 보편적 목적'(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이라는 전통적 가톨릭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사유재산권은 언제나 “사회적 저당”(social mortgage)을 수반한다는 뜻이다. 이는 19세기 말의 레오 13세 이래 모든 교황이 일관되게 주장한 바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지금의 이민 문제 토론에서 제기된 국가 주권의 문제들과 연결시킴으로써 더 새롭게 제시한다.

그는 회칙 124항에서 “사유재산 및 그 시민들 권리의 합법성뿐만 아니라 재화의 공동 목적이라는 제1 원칙의 입장에서 볼 때, 한 영토의 재화는 그 어디에서 오든 (그 재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거절되어서는 안 되는 까닭에, 각 나라는 또한 외국인에게도 속한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고 썼다.

지금의 포퓰리즘에 관해서는, ‘모든 형제들’에 담긴 비판적 평가는 너무 많아서 언급하기조차 힘들다. 11항에서 “근시안적이고, 극단주의적이며, 분개심에 가득 차 공격적인 민족주의”를 탄핵하는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한데, 이어지는 많은 비판이 이러한 논조다.

요즘 정치 토론을 꾸준히 지켜보는 이라면, 뉴스를 보거나 트위터 계정이 있는 이라면, 공개적 분노 폭발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그러한 비난 교환이 갈수록 험해지고 있다는 교황의 진단에 동의할 것이다.

그는 45항에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존경을 모조리 잃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아무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말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가장 극악한 형태로, 심지어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제시하는 처방인 인도적 형제애는 좀 분명해 보이지 않고 또한 그는 구체적 청사진도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몇 가지 힌트를 제시한다. 노인을 돌보라. 인종주의, 성차별주의와 맞서 싸우라. 이주민을 돌보고, 가난한 나라들의 부채를 탕감하라. 국제연합과 지역적 연대체의 역할을 강화하라. 그리고 전쟁을 반대하고 사형을 철폐하라.

그 어떤 것보다, ‘모든 형제들’에서 다뤄진 구체적 이슈들 자체가 형제애의 윤리를 설명해 주는 데 도움이 되어 보이는데, 형제애란 타인과 관계 맺기의 수단으로서의 공격성을 거부함으로서 시작된다. 그는, 공격성에 기대는 성향은 코로나바이러스, 그리고 갈수록 “가상적” 사회관계로 전환되는 근래 추세 때문에 더욱더 심해지고 있다고 본다.

또 교황은 마찬가지로 명분이 무엇이든 간에 길거리의 유혈사태는 해답이 아니라고 명확히 밝힌다. “폭력적 대중시위는, 어느 쪽이든, 해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232항)

하지만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태가 어디로 흘러갈지에 대해 무작정 낙관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양한 관점들을 찬양한다. 그가 “사회적 시인들”이라고 서정미 있게 부르는 대중적 사회운동들의 등장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형제들’의 여러 장들이 겉으로는 희망을 말하면서도 금세 다양한 개탄으로 흐르는 것이 뚜렷이 보인다.

간단히 말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두 가지 커다란 사회적 ‘팬데믹“, 즉 특권층의 개인주의적 무관심과 맹목적인 포퓰리즘적 분노 표출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실제 팬데믹과 맞물려 더 강화되면서, 이에 대항할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지 않으면 이윽고 재앙이 일어날 형세가 되고 있다고 본다.

일단, 교황 전기작가인 오스틴 아이버레이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너무 살벌하게 나간 것이 아니다.

“1920-30년대의 교황들과 똑같이, 프란치스코 교황도 앞으로 깜깜한 길이 놓여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인과 선의를 가진 다른 이들이 앞으로 닥쳐올 갈등 상황 속에서 차지할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이전의 교황들처럼, 세상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그 깜깜한 길을 한참이나 가 본 뒤에야 깨달을 것이다.”

반면에 듀크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제임스 채플은 1920-30년대의 교황들은 그 전에 사회 외부에서 현대성을 단죄하던 교회의 입장에서 벗어나 사회 안에서 누룩이 되려는 입장으로 전환함으로써 교회를 구했다고 논하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는 “가톨릭 현대 – 전체주의의 도전과 교회의 재조”(2018)의 저자다.

채플 교수는 “전체주의에 저항한 투쟁은 끝났고, 가톨릭 신자들이 이겼다. 그리고 지금의 교회는 그 싸움에 의해 뼈대가 형성되었다”고 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회칙으로 그러한 거대한 지구적 투쟁이 또 다시 일어날 때 교회가 헤쳐 나아가서 살아 나올 길과 필요한 자원을 준비해 준 것일까? 시간이 지나야만 알 것이다. 하지만 최종 평가가 있을 때면 이번의 ‘모든 형제자매’부터 이야기가 시작될 것은 분명하다.

기사 원문: https://cruxnow.com/news-analysis/2020/10/like-a-century-ago-a-papal-encyclical-tries-to-shed-light-on-a-dark-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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