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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를 바라는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목소리

기사승인 2020.10.14  15: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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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가 없어지길 바라는 것과 낙태 처벌은 다른 문제”

천주교 여성 신자 천여 명 낙태죄 폐지 지지선언
“저를 포함해, 자매님들이 감옥에 가야 하나요? 낙태를 하지 않았다면 저는 맞아 죽거나 자살했을 거에요”
“교회는 여성을 하느님의 자녀로 생각하나요?”
“낙태죄 폐지에 대한 교회의 입장에 여성 신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었을까요?”
“낙태가 교리 상 죄라면 가톨릭 안에서 논의해야, 형법과 다른 영역의 문제”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 받을 때부터 성당에 가지 않아.... 성당에 여성으로서 저의 자리는 없다고 느꼈어요"

“낙태를 하고 싶은 여성은 없을 겁니다. 다만 낙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을 뿐이겠죠. 여성들이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길 바라지만, 낙태하는 여성에게 처벌을 하는 세상을 원하진 않습니다. 낙태가 없어지길 바라는 것과 낙태죄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형법으로서의 낙태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대신 낙태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교회가 좀 더 힘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안젤라 씨)

천주교 여성 신자 천여 명이 낙태죄 폐지를 바라며 교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정부, 국회, 교회에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모낙페는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의견을 법무부, 보건복지부, 청와대, 국회 그리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등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배선영 기자

10월 14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이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에 대한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천주교 여성 신자들이 낙태죄 폐지에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낙폐는 지난 9월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낙태죄 폐지에 관한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의견과 지지선언을 온라인으로 모았다. 10월 11일까지 1015명이 참여했으며, 이들 대부분 천주교 신자이고, 일부 개신교 신자도 있다. 익명성 보장을 위해 의견서에는 세례명만 명시하도록 했다.

천주교라는 특정 종교 신자의 의견을 모은 이유에 대해, 모낙폐는 “한국 천주교가 낙태죄 폐지를 원하는 수많은 여성 시민의 의견과 상반되는 행보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지선언에 참여한 이들이 “낙태죄 폐지에 적극 찬성하고 있고, 여성의 인권은 제쳐 두고 태아의 생명만 부르짖는 교회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며, “교회는 임신 중지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여성들의 곁에 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톨릭교회는 교리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낙태'를 생명에 반하는 행위로 보고 이를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 낙태죄 처벌에 대한 법개정을 앞두고 8월 28일 주교단이 '낙태죄 폐지 반대' 성명을 낸 바 있다. 

10월 14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이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배선영 기자

이미 낙태했던 여성들의 자리 없는, 무책임한 남성의 책임을 묻지 않는 교회에 호소

"청소년기에 태아의 발 모양을 본뜬 낙태 반대 배지를 성당에서 받은 뒤에 그것이 절대선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세상이 얼마나 여성들에게 가혹한지 피부로 느끼면서 낙태죄 역시 얼마나 위기에 처한 여성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법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은 인류 전체에 요구되어야 할 것이지 여성 개인에게 전가되어야 할 것은 아닙니다."(플로라 씨)  

60살 크리스티나 씨는 “성당에서 오랜 기간 봉사자로 일하면서 낙태를 경험한 수많은 50-70대 여성을 만났다”며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고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20년, 길게는 50년 전의 낙태 경험으로 평생 죄책감을 갖고, ‘같은 죄’로 끊임없이 고해성사를 보는 여성들을 보며 이런 단죄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런 단죄는 왜 여성만을 향하는 것인가 깊게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아델라이드 씨는 “주보에서 낙태의 상처를 겪은 이를 위한 정기모임 안내를 봤다. 교회 안에 낙태를 겪은 이들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지금의 교회는 모순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미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을 포용하기는커녕 처벌하자고 목소리 높이는 교회는 여성을 하느님의 자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폭력적 성향이 있던 상대 남성이 피임을 거부한 탓에 임신을 했던 미카엘라 씨는 낙태 경험을 털어놓으며, “저를 포함한 자매님들이 감옥에 가야 하는 것이냐”며, 형법상 감옥에 가야 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죄책감과 후유증이 아직 있지만, 낙태를 후회하지 않는다”며, 그 남자와 아이를 낳고 살았다면 자신은 맞아 죽던가 자살했을 것이라고 했다.

세라피나 씨는 낙태죄 폐지가 낙태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며, “미혼모나 교회 내 여성 노동자의 육아도 제대로 지원해 주지 않으면서 '생명'을 이유로 낙태죄에만 집착하는 게 모순처럼 느껴진다”고 교회 내 여성에 대한 처우를 비판했다.

리타 씨는 “미사가 끝나고 성당 마당에서 신자들에게 볼펜을 손에 쥐어 주다시피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을 권하는데, 그중 얼마나 많은 신자가 이미 여러 번 중절을 경험했을지, 그 신자들 마음이 어떨지 전혀 헤아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참담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예비부부를 위한 교리 교육에서 콘돔, 피임약은 자연스러운 방법이 아니며, 자연주기법에 따라 임신을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듣고 불편했다고 했다.

10월 14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이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배선영 기자

사제가 낙태죄에 관해 강론하고 낙태죄 폐지 반대 백만 서명을 받던 때부터 성당에 가지 않는다는 엘리사벳 씨는 “낙태를 죄라고 엄숙히 강요하던 그곳에서 여성으로서의 저의 자리는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글라라 씨는 "낙태죄 폐지에 대한 교회의 입장에 과연 여성 신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었을까?"라며, "생명존중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에 공감하지만 낙태죄는 한 태아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한 여성을 살리는 일에 더 가깝다.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세상 속에서 여성을 지우지 말라"고 호소했다. 

라파엘 씨는 “임신중단이 주님이 보시기에 죄라면, 그 정죄는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손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그 죄는 가톨릭 공동체 안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로, 정부의 형법 및 공권력에 의한 제한의 영역과는 달리 취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5년에 세례를 받고, 장애인선교회에서 봉사자로 활동해 왔다는 요안나 씨는 주교회의 성명을 보고 “여성의 행복권, 자기결정권의 요구에 대해 남성으로만 구성된 주교님들께서 섣부르게 예단하시는 것에 심히 유감임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그는 임신중지권을 “특권층의 이익이나 다수의 논리”라고 한 성명서 내용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특권층이었던 적이 있었냐”며, “성당에서도 사제의 수발을 드는 사람은 수녀 또는 연로한 여성 평신도이고, 평신도 단체의 회장이나 사무장은 대부분 남자다. 여성은 성당의 청소, 행사의 식사 담당 등 돌봄의 역할만 주어진다. 과연 누가 특권층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외에도 자신의 세례명을 걸고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선언에 참여한 여성 신자들은 교회 안의 성차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며, “성차별에 침묵하고 일조하는 대신 여성의 삶과 인권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이며 시대와 발맞춰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낙폐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의견을 법무부, 보건복지부, 청와대, 국회 그리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등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모낙폐는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민주노총,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23개 단체가 참여한다.

낙태죄 전면 폐지를 지지하는 천주교 신자 1015명의 세례명. 이들은 교회에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배선영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배선영 기자 dari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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