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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향한 여정

기사승인 2020.10.15  12: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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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우 신부] 10월 18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이사 2,1-5, 로마 10,9-18, 마태 28,16-20

우리는 수없이 시작과 끝을 경험합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서 그 끝을 상상하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무언가 일을 계획할 때에도, 책을 한 권 보더라도, 드라마를 보더라도 우리는 나름대로 그에 대한 마지막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사람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끝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그 수많은 끝이라는 경계는 우리에게 때론 희망을, 때론 아쉬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이미 근원적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끝을 희망하지만 그 끝을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결국 물리적인 끝을 마주해야 하지만 인간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그 끝을 마주하기 힘들어합니다. 그렇게 끝이라는 경계는 여러모로 두려운 단어인 것은 자명합니다.

오늘 전례는 이 ‘끝’이라는 말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전교주일 때마다 우리는 마태오복음의 마지막 장면을 마주합니다. 마태오복음의 끝자락에 주님께서는 끝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 복음의 마지막 구절) 이 말은 주님께는 끝이 없음을, 물리적인 경계가 없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이지만 주님께서는 그 끝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걸어가는 끝을 향한 여정은 희망의 길인 것입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 자체가 경계에 얽매이지 않음을 2독서의 바오로 사도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로마 10,18)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넓은 범위 ‘온 땅’, ‘누리 끝’이라는 표현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시피 바오로 사도가 가지는 구원에 대한 희망은 단순히 물리적인 범위를 뛰어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인용한 시편의 구절이 이번 주일 화답송에 등장하고 있지요.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시편 98,3)

그런 의미에서 전교주일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교라는 것은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이웃에게 갑자기 다가가 ‘너 예수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라는 협박이 아닙니다. 갈길 잘 가고 있는 바쁜 사람을 붙잡고 길거리에서 물건 구입을 권유하는 것처럼 종교를 권유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으로의 초대는 그렇게 겁박이나 세속적인 방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끝을 넘어서 있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나누는 것이 바로 전교일 것입니다. 끝을 넘어서기를 원하지만 그 끝을 두려워하는 이웃에게 함께 그 두려움을 극복하자고 초대하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나 먼저 주님에 대한 것은 끝이 없음을, 그 경계가 없음을 깨달아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5) 라는 오늘 1독서의 말씀은 누가 먼저 주님을 향해 달려가는가에 대한 경쟁이 아니라 빛으로 표현된, 경계가 없는 그분 은총 속으로 들어가자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성찰을 되새겨 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전파하도록 하느님께서 말씀의 문을 열어 주시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든지 모든 피조물에게 담대하게 끊임없이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선포하고 또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파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여야 한다.... 주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므로'(요한 14,6) 그들의 영적인 기대를 모두 채워 주시고 또 그 기대를 끝없이 넘어서신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 만민에게, 13항)라는 교회의 가르침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그 끝을 항상 넘어서 계시는 주님께 희망을 걸어야겠습니다. 더불어 잘못된 전교에 대한 이해로 주님을 이웃에 대한 겁박과 장사로 이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보단 구원에 대한 희망 속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성사로 힘을 얻어 구원과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라는 오늘 본기도의 외침이 더욱 가까워지기를 소망합니다.

끝을 넘어서기를 원하지만 그 끝을 두려워하는 이웃에게 함께 그 두려움을 극복하자고 초대하는 것이지요.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유상우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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