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노동량, 산재적용 제외 강요 등 정부와 택배사 공동책임

한진택배 김동휘 씨(36살)가 과로로 숨지기 4일 전 새벽 배송을 마치며 남긴 SNS문자. “저 너무 힘들어요” (사진 출처 = 참여연대 페이스북)

잇따른 택배 노동자 과로사에 대해 소비자들이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택배기사님들을 응원하는 시민모임’ 등 12개 시민, 사회단체가 모인 ‘택배 노동자 과로사 예방을 호소하는 택배 소비자’는(이하 시민모임 등)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CJ대한통운, 쿠팡, 한진 등 택배회사, 여, 야당에 각각 대책을 주문했다.

이달 들어 8일 CJ대한통운 강북지사 송천대리점 택배 노동자 김원종 씨(48살), 12일 쿠팡 대구물류센터 장덕준 씨(27살), 한진택배 김동휘 씨(36살)가 과로로 숨졌다. 최근 5년간 산업재해로 숨진 택배 노동자는 24명이며 이 가운데 올해 사망자만 10명이다.

이날 시민모임 등은 “연이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는 3만 불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이 함께 아파하고 개선해야 할 어두운 오늘”이라면서 “코로나19가 본격화한 지난 2월 이후 월별 택배 물동량은 작년 동월 대비 약 3000만-8000만 개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택배 물동량 급증으로 택배회사의 수익이 늘었지만, “택배 노동자들에게 살인적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에 대한 보상은 없다”면서 “올해만 10명이 숨진 이유는 택배회사의 불공정과 부정의로 인한 것으로, 명백한 인재이며 택배회사가 자기 이익만을 위한 욕심의 결과”라고 말했다.

시민모임 등에 따르면, 2019년 1년간 택배 노동자 재해자 수는 180명이었던데 반해, 2020년 1-6월 재해자 수만 129명이다.

이날 시민모임 등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는 "명백한 인재"이자, "택배회사가 자기 이익만을 위한 욕심의 결과”라고 말했다. (자료 출처 = 택배 노동자 과로사 예방을 호소하는 택배 소비자)

택배 물량 폭증, 분류 작업... 택배 노동자 과로사로 이어져
분류 인력 투입 실태 국토부가 직접 전수 조사해야

국토부와 노동부의 책임 방기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들은 국토부가 분류작업 인력 투입에 대한 실태를 직접 전수 조사하지 않고, 택배회사가 전달한 정보를 검증 없이 취합해 “분류인력 추가 투입에 대한 약속을 초과 달성”한 것으로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정부와 택배업계는 추석을 앞두고 택배 물량 분류 작업에 2067명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택배 노조 조합원이 있는 터미널에만 분류 인력을 투입하는 꼼수로 일관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고 김원종 씨가 일했던 터미널에는 인력이 단 1명도 투입되지 않았다”면서 “하루 400개가 넘는 물량을 ‘까대기’(터미널에 도착한 택배 물품을 지역별로 분류, 트럭에 정리해 싣는 일)하고 배송해야 했던 김동휘 씨 사망에 대해 한진택배는 평소 지병으로 사망했다며 책임 회피만 급급하다”고 말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명 ‘까대기’라고 불리는 분류작업이 택배 노동자 업무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시민모임 등은 “택배 노동자들은 분류작업으로 보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월 40만 원씩 자기 돈을 들여 인력을 쓰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연로한 아버지를 모시던 김원종 노동자는 40만 원이 힘들어 직접 분류작업을 하다 과로사했다”고 말했다.

야간 근무 17개월 만에 체중이 15킬로그램 줄어든 쿠팡 대구물류센터 장덕준 씨, 하루 200개 안팎을 처리하다 최근 하루 400개 넘게 배송해 온 김동휘 씨도 택배 물량 증가에 따른 업체의 별다른 대책 없이 일하다 숨졌다.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강요에 대필 의혹까지... 노동부 방조 커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강요하는 택배업계의 관행 문제도 제기됐다. 

시민모임 등은 택배 노동자 대부분이 산재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것은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 제도를 강요하는 업계 관행을 노동부가 방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수고용노동자도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지만 형태상 개인사업자라 본인이 적용을 원하지 않으면 적용 제외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택배회사가 이를 악용해 업무 계약 시 택배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을 강요하는 관행이 있다.

이들에 따르면, 2020년에만 택배 노동자 5명이 숨진 CJ대한통운은 64퍼센트가 산재 적용 제외신청을 했고, 신청서 대필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이들은 “지난 10월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원종 씨 외 5건의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가 대필 작성됐다는 의혹이 드러났다”면서 “노동부는 아직도 적용제외 신청을 전수 조사도 하지 않고 현장의 대필, 조작도 정부가 방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택배 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약 15-40퍼센트까지 집계 폭에 큰 차이가 나는 실정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입직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통계에 잡히지 않아 실제 택배 노동자는 전체 5만여 명, 그 가운데 약 15퍼센트인 7400여 명 정도를 산재보험 가입자로 집계한다.

이날 시민모임 등은 노동부에 “김원종, 장덕준, 김동휘 노동자 과로사에 대한 진상 조사”와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적용 제외신청 전수 조사”, 국토부에 “모든 택배회사의 분류 작업 인력 투입 이행실태 조사”, 여당과 야당에는 “전 국민 산재보험법 제정”을 촉구했다.

또 CJ대한통운, 쿠팡, 한진택배는 노동자 과로사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유가족에게 도의적 책임을 다하며, 분류 작업 인력을 즉각 투입해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할 것과 모든 택배회사는 노동자 과로사 예방을 위한 사회적 논의 기구에 조건 없이 즉각 참여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이주형 신부는 “무엇보다 정부의 면밀한 조사와 택배회사의 개선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당하고 적법한 휴식권은 가톨릭 사회교리와 노동법의 기본항목으로 이에 대해 고용주는 책임 있게 경영하고 정부는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19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어 이 신부는 “택배 노동자 산재 사망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필요한 사회적 협력과 형제적 사랑을 호소하는 시대적 징표”라면서 “관심과 협력, 형제적 사랑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김원종, 김동휘, 장덕준 노동자를 추모하고, 택배 노동자 과로사 예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출처 = 참여연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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