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인근에서 이주도 못하는 주민들, 한일간 탈핵연대 강조

한일 탈핵 평화 순례가 10월 23-24일에 온라인 간담회로 열렸다.

이 행사는 매해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한국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가 공동으로 주관해,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 가며 열리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만났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 생태환경위 총무 이재돈 신부를 비롯해 일본 정평위 관계자 등 25명이 참여했으며, 두 나라의 핵발전소 현황과 탈핵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맥스터 추가 건설하면 월성 원전 가동 기간도 늘어나”
“맥스터 증설 공론화 과정 불공정해”

간담회에 참여한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은 월성 핵발전소 맥스터 증설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맥스터'는 월성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건식저장시설이다. 월성 1-4호기는 중수로형 핵발전소인데, 경수로형 핵발전소보다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이 5배 정도 많아서 발전소 건물 안의 저장 수조에 모두 보관하지 못하고 건물 밖에 별도의 건식저장시설 즉 맥스터를 운영한다.

맥스터를 늘리지 않으면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하기 때문에, 2-4호기는 2022년 3월 가동을 멈춘다. 월성 1호기는 영구정지하기로 결정됐다. 이상홍 사무국장은 “맥스터를 증설하면 월성 원전의 가동 기간을 늘리고, 사고의 위험성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월성 2-4호기의 설계 수명은 각각 2026년, 2027년, 2029년으로 노후원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2005년 주민투표 때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유치하면 고준위핵폐기물을 2016년까지 반출한다고 약속했다. 경주 시민들은 정부의 약속을 믿고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에 찬성했다. 그런데도 2016년까지 반출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고준위핵폐기물인 맥스터를 증설하기로 했다.

결국 지난 4월 시민들은 서울행정법원에 “월성 1-4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무효 확인 등 소송”을 접수했고, 11월 20일 첫 재판이 열린다.

또한 이상홍 사무국장은 맥스터 증설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맥스터 증설에 관한 경주 지역 공론화를 관리하는 ‘월성 원전 지역실행기구’를 발족했는데, 이 사무국장은 “이 기구의 11명 위원이 대부분 친원전 인사로 구성됐다”고 했다. 또 지역실행기구의 모든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고, 회의록을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10월 23-24일 한일 탈핵 평화순례 간담회가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이 맥스터 증설의 문제점에 관해 강연했다. (이미지 출처 = 줌(ZOOM)화면 갈무리)

지난 7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시민참여단 대상으로 맥스터 추가 건설 여부에 관한 찬반조사 결과 ‘찬성 81.4퍼센트, 반대 11퍼센트, 모르겠다 7.6퍼센트로 나왔다’고 발표했다. 이는 월성 원전 지역 주민 145명을 대상으로 한 결과다. 주민 의견을 수렴한 지역실행기구는 경주 시민 3000명을 대상으로 기초 설문조사를 하고, “3000명 → 1154명 → 722명 → 145명”으로 줄이는 과정을 거쳐 시민참여단 145명을 구성했다.

그러나 이 사무국장은 “시민참여단 구성이 불공정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3000명 기초 설문조사에서는 찬성이 40.6퍼센트, 반대 32.8퍼센트가 나왔으나, 145명은 찬성 53.7퍼센트, 반대 8.3퍼센트로 구성했다”며, “의도적으로 찬성 주민의 비율을 높이고, 반대 주민의 비율을 낮췄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이미 지난 8월 맥스터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맥스터 증설을 두고 여전히 주민, 시민사회와 정부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으며, 주민들은 공사 자제 반입을 막고, 법률 소송을 하는 등 맥스터 반대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는 사람이 살 수 없어요.”

이어 월성 원전이 있는 나아리에 사는 황분희 씨가 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 발표했다. 황분희 씨를 비롯한 주민들은 대책위를 만들어 이주를 요구하는 투쟁 중이다. 2015년 주민 40여 명이 삼중수소 내부피폭 검사를 받은 결과, 만 4살부터 80살 어른까지 모두에게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1986년부터 월성에서 사는 황분희 씨는 “핵발전소가 이렇게 위험한지 몰랐다. 여기에서 30년 넘게 사는데, 아무것도 몰랐다.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고, 전기를 값싸게 쓰는 좋은 것만 이야기했다. 25년을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게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나아리 주민들은 이 지역을 벗어날 방법조차 없는 상황이다. 핵발전소 주변에서 살겠다는 사람이 없어 집이 팔리지 않고, 심지어 매물을 받아주는 곳도 없다.

황 씨는 7년간 이주를 요구하는 투쟁을 이어오고 있지만, 정부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는 “30년간 살면서 피폭됐으니 보상해 달라는 게 아니라, 우리 집을 사서 나가게 해 달라는 것인데도, 그것마저도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은 법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월성 원전의 제한 구역은 914미터다. 그는 “914미터 기준으로 안은 위험하고 밖은 안전하다는데, 한 발만 디디면 한 발은 위험하고 다른 발은 안전하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말에 과일나무도 심고, 농약 치지 않고 깨끗하게 먹이려고 여기에 터전을 마련했는데, 아이들 얼굴을 볼 때마다 죄를 짓는 기분”이라며, "손자와 함께 3대가 이곳에 살고 있다. 전기를 서울에서 많이 쓰지만 그 피해는 시골 주민들이 보고 있다. 여기는 사람이 살 수 없다”고 강조하며 “국민들이 공감해 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월성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월성' 포스터. 오른쪽이 황분희 씨. (이미지 출처 = 리틀빅픽처스)

황 씨는 “전문용어는 모르지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안다. 우리가 힘을 합쳐 핵발전소를 멈춰야 한다. 지금 월성 2-4호기를 멈춰야 한다. 그런데도 이번 국감 때 보니 국민의 안정성이 아닌 경제성만 다룬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73살인 그는 아이들에게 핵발전소 없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걸을 수 있고,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애쓰려고 한다. 지난해 그와 월성 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삶과 투쟁이 담긴 다큐멘터리 '월성'이 제작되어, 세상에 나왔다.

앞서 후쿠시마 원전 형사소송 지원단 무토 루이코 공동대표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올림픽’을 주제로, 오시도리 마코, 켄 부부가 원전 사고 이후의 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무토 로이코 씨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에 대해 제대로 된 배상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사고의 뒤처리도 하지 않은 채 ‘무슨 올림픽이냐’는 분노가 자신 안에 들끓고 있다며, “내년에도 후쿠시마는 여전히 올림픽을 할 때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하나 진실을 마주는 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한일 두 나라 간의 소통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한일 탈핵 평화순례’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2012년부터 시작했다. 2016년부터는 일본 주교회의 정평위와 한국 주교회의 생태환경위가 공동으로 주관해 매해 한일 양국을 번갈아 가며 열렸다. 이번에는 코로나19로 간담회 형식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됐으며, 강연을 제외한 대화는 강우일 주교가 통역했다. 참가자들은 두 나라에서 탈핵에 힘쓰는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하며, 연대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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