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있는 연옥 영혼들.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수도회 형님께서 연옥 교리를 보다가 연옥 영혼들의 기도에 관해 제 생각을 물어 오셨습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배워 온 연옥에 관한 교리 중, 연옥에 있는 영혼은 스스로 기도하여 정화의 시기를 단축할 수 없다는 내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시기적으로 위령성월에 접어든 터라 형님 신부님과 신학적 이야기를 나누듯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씀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연옥의 영혼은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기도와 선행을 할 수 없고, 따라서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정화시킬 수 없는 걸까요? 

저는 연옥 영혼도 자기 스스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행 등의 공덕을 쌓는 일은 이승에 살 때 할 수 있는 영역에 포함된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지금 여기'에서 한 행실이 연옥에서 머물러야 할 시간, 곧 정화의 시간과 관련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지상의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르듯이, 연옥에 머물고 있는 영혼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정화의 시기가 언제 끝날지는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철저하게 하느님의 자비를 기다리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수동적인 상태에 머무는 시간입니다. 지상의 삶에서야 능력에 따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아서 할 수도 있었지만, 연옥에서는 그것마저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따라서 연옥에서 맞아야 할 정화의 시간이란 오로지 하느님의 뜻 안에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비로소 배우는 때라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연옥이나 지옥이나 불 속에서 견뎌야 하는 고통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연옥에는 구원의 희망이 있고, 지옥에는 그런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옥에서 한 영혼이 견뎌야 하는 불은 정화의 불이지만, 지옥의 불은 영원한 고통의 불인 셈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연옥 영혼 중에 가장 난감한 상태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능동적으로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보다는 우선 나와 관련 있는 이를 위해 기도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겠죠. 하지만, 더불어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위해서도 기도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모르죠. 바로 그 ‘가장 버림받은 영혼’이 내가 아는 이의 영혼일지! 그가 누가 되었든 결국 정화의 기간을 다 채우고 하느님 곁으로 간 영혼이 자신을 위해 탄원해 준 이들의 기도를 모른 척할 리 없습니다. 그 영혼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정화의 시기를 거쳐야 할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입니다. 

날마다 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설이나 추석 등의 명절, 모든 영혼의 날(11월 2일)을 통해 우리는 기억해야 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영혼들이 연옥 체류기간을 마치고 천국에 ‘입국'했다면 더 이상 그들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는 걸까요? 아무래도 계속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최종적으로 천국 입국을 수락받았는지 여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계속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고, 그들이 이미 천국에 있다고 해도 기도를 통해 우리는 서로 연결되기에 그렇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센터장, 인성교육원장,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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