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열린 세미나

공동합의적 교회 공동체가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식별해야 하는지 묻는 자리가 마련됐다.

7일 평신도사도직연구소(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산하)가 ‘공동합의성, 권위주의와 다수결주의를 넘어서’를 주제로 비대면 세미나를 열고 공동 식별에 필요한 과정과 그 의미를 논의했다.

현재우 부소장(평신도사도직연구소)이 공동 식별의 개념과 단계를 짚고, 제주교구 부교구장 문창우 주교, 예수회 이근상 신부, 우리신학연구소 이미영 소장이 공동합의성과 공동 식별에 관해 토론했다.

이번 세미나는 공동합의성의 개념과 그 실현 방향을 가늠했던 지난해 10월 세미나에 이어 두 번째로 이날 세미나는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이날 사회를 맡은 주원준 수석연구원(한님성서연구소)은 2년에 걸쳐 공동합의성을 주제로 나누는 이유를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어떻게 사회와 함께해 나가느냐란 문제는 코로나 시대에 더욱 중요해졌고, 교회 공동체가 함께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갈 것인가를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원준 수석연구원.(한님성서연구소) (이미지 출처 = Cpbc TV_가톨릭콘텐츠의 모든것 유튜브 화면 갈무리)

“공동 식별, 공동체가 공동체다워지는 과정이자 믿음”

먼저 현재우 부소장(평신도사도직연구소, 종교학 박사)이 공동 식별의 의미와 단계를 평신도 영성 공동체(한국CLC)의 경험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식별은 간단히 말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고 귀 기울이면서 그 부르심에 응답하려는 노력이다. 공동 식별은 그 과정이 공동체 안에서 이뤄진다.

공동합의적 교회가 되려면 공동 식별을 위한 훈련이 필요한데, 공동 식별은 공동합의성 실현을 위한 필수 요소다.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문헌인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 72항에서는 “공동합의성을 실현하는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식별”이 언급되는데, 현 부소장은 “공동합의적 교회를 위해서는 공동 식별이 깊게 체화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공동합의성은 교회가 왜 세상에 존재하는가를 묻고, 교회다워지기 위해 새로워져야 한다는 기대와 희망에서 출발”하며 “공동 식별과 공동합의성은 효과적 운영 방식의 하나인 권위주의와 다수결주의를 대체”하는 단순한 의사결정 방식이 아니다.

특히 비대해진 교회 조직과 만연한 개인주의 속에서 교회 구성원 전체가 상호 역동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공동 식별을 통한 공동합의성 실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현 부소장은 공동 식별을 위해서는 ‘자기 이해’와 ‘개방성(경청)’이 필요하다면서 공동 식별의 7개 단계를 제시했다. 여기서 ‘자기 이해’는 자신의 경험에 사로잡히거나 치우쳤는지, 자신을 중립적, 합리적, 객관적 존재로 보는 자기 오류 상태인지를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다.

‘개방성(경청)’은 자기 의견을 내려놓고, 다른 의견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시대의 징표를 듣기 위해 세상에 열린 태도를 말한다. 현 부소장은 공동 식별 과정은 의사결정을 위해 단지 절차를 밟는 과정이 아니라 “공동체가 공동체답게 구성되는 과정이자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현재우 부소장.(평신도사도직연구소) (이미지 출처 = Cpbc TV_가톨릭콘텐츠의 모든것 유튜브 화면 갈무리)

공동 식별 7단계

1단계 문제를 명확히 하기, 2단계 정보 나누기, 3단계 개인 성찰과 기도, 4단계 공동으로 정리하기, 5단계 느낌을 살펴보는 타진, 6단계 결정, 7단계 확정

현재우 부소장은 공동 식별 1-7단계를 설명하면서, "2단계에서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정보를 나눠야 하고, 3단계에서는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사전논의를 해서는 안 된다. 4단계에서 의견을 나눌 때는 논쟁하거나 다른 의견을 평가하지 말고 상대 의견에 집중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정 단계에서는 만장일치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쉽진 않기 때문에, 이때는 소수 의견이 남아 있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끝까지 들으려 노력해야 한다. 소수 의견은 버려질 것이 아니라 미래의 어떤 결정에 도움이 되도록 하느님이 미리 알려주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정된 사항은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다. 함께 식별한다는 것은 함께 책임진다는 의미로 매우 중요"하며, 공동 식별의 결과는 공동 사명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는 구성원 모두 각자 성찰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성찰과 식별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면서 “오늘 하루 자신의 마음에 남는 사건을 돌아보며, 하느님이 어떻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 왔는지 살펴야 한다”며 영적 노트를 써 볼 것을 권했다.

평신도사도직연구소가 7일 ‘공동합의성, 권위주의와 다수결주의를 넘어서’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 제공 =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공동체 전체를 살피는 리더”, “사제, 수도자의 영적 동반” 필요

현 부소장은 공동 식별의 과정에서 “리더의 중요성”, “사제와 수도자의 영적 동반”, “제도 교회 내에서 평신도에게 더 많은 권한 부여”를 강조했다.

먼저 그는 “리더 그룹이 조바심을 내며 이끌어 가면 아무 소용이 없다. 동료들이 어떤 상태이고 함께 식별하려면 무엇을 더 제공해야 하는지, 이를테면 치우쳐 있다면 그러지 않도록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등 공동체 전체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식별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찾으려는 과정이라기보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요청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과정이며, 구성원들이 그것을 잘 인식하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평신도 리더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공동 식별이 잘 이뤄지지 위해서는 사제나 수도자의 영적 동반이 필요하고, 제도 교회에서 평신도에게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교회에서 미래세대는 단지 젊은이가 아니라 평신도이며, 평신도가 미래세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책임과 권한이 필요하고 이들이 실패, 실수하더라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창우 주교, “공동합의성 삶의 모든 차원으로 가져가야....”
이근상 신부, “공동 식별, 서로의 목소리에서 하느님 발견하고, 함께 책임지는 과정”
이미영 소장, “공동 식별, 평신도 의견 구하는 것에서 시작”

발표에 이어 문창우 주교(제주교구 부교구장), 이근상 신부(예수회), 이미영 소장(우리신학연구소)이 토론했다.

먼저 문창우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공동합의성과 식별의 핵심을 여러 차원에서 짚으면서 “공동합의적 과정을 위해 어떤 영적 도구를 쓰느냐보다 공동합의성을 가정, 개인, 공동체에서 어떻게 삶의 차원으로 내려가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자 앞으로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삶의 모든 차원에서 영성적으로 살아낼 때 교회의 본 모습이 드러나며, 이를 위해 공동체가 함께 식별을 구현해 나가라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근본 생각이자 초대”라면서 “자기중심성 안에서는 공동합의성을 삶의 차원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교회에 사랑의 모델을 절실하게 채워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창우 주교.(제주교구 부교구장) (이미지 출처 = Cpbc TV_가톨릭콘텐츠의 모든것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근상 신부는 흔히들 공동 식별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준비가 안 됐다, 자기주장만 하고 뭘 모른다, 조건이 갖춰지고 성숙해져야 한다, 똑같은 논의의 반복인데 결론이 나오겠나”라고 회의한다며, 오히려 이와 같은 “불편심”이 공동식별의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준비된 상태여야 공동 식별을 할 수 있다면 인류는 2000년 동안 못했을 것이다. 부족한 것부터 시작해 공동 식별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이고, 그래서 여정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근상 신부는 “공동 식별은 반복되고 많은 인내가 필요한 지난한 과정이며, 참아주는 누군가가 꼭 필요한 과정”이라면서 “식별은 깨끗한 답이 나오는 과정이 아니라 좀 더 지혜로운 사람들이 자기주장이 강한 이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견뎌 주는 과정이기 쉽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무엇보다 공동식별은 더 좋은 답을 찾는 의사결정 수단이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타당하고 실현 가능하지 않은 답이 나올 가능성이 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걸음 내딛는 실천이 꼭 포함돼야 한다.

또한 공동합의성은 “교회가 더 깊게 서로의 목소리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발견된 것을 교회가 함께 책임진다”는 뜻이다. “나는 한마디도 안 했으니 그 결정은 나와 상관없다”거나 “참여한 만큼만 나의 책임”이라는 것은 매우 세속적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근상 신부.(예수회) (이미지 출처 = Cpbc TV_가톨릭콘텐츠의 모든것 유튜브 화면 갈무리)

우리신학연구소 이미영 소장은 “우리가 공동합의성을 일종의 가시적 회의체로만 접하다 보니 단순한 의사결정 구조가 아닌 교회가 어떤 길을 가고,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큰 개념으로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 72항에서 언급된 교회 구성원 간의 “순환적 관계”가 촉진되려면 먼저 “공동 식별 과정에서 평신도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여기서부터 식별의 과정이 시작된다. 모든 구성원의 이야기를 듣는 경청의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사례로 그는 지난 2018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를 준비하며 교황청이 각 지역 교회에 의제에 관한 의견을 구하는 질문지를 보냈을 당시 각 교구에 문의 결과 교구청 담당 부서에서 자체적으로 취합해 주교회의로 보낸 사실을 들었다.

이에 대해 그는 “시노드 전 지역 교회가 논의에 참여하도록 초대한 것으로 관련 주제에 대해 신자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인데, 잘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면서, “현재 우리 교회에 공동체적 논의 구조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신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서로 대화하기는 어렵다. 교회에서 평신도가 의견을 내고 함께 식별하는 자리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 토론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미영 소장.(우리신학연구소) (이미지 출처 = Cpbc TV_가톨릭콘텐츠의 모든것 유튜브 화면 갈무리)

공동합의성, “다양성 존중, 모른다는 고백, 큰 형제애로 사는 것”

한편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문창우 주교는 공동합의성을 “매우 다양한 꽃이 있는 거대한 정원”에 비유했다.

그는 “그동안 보편 교회나 지역 교회는 정원에 수많은 꽃이 있는데도 하나의 꽃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해 온 것은 아닐까”라고 물으며, “우리 교회가 하나의 꽃에 집착하는 교회가 아닌 다양함의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보도록 교종께서 공동합의성을 통해 우리에게 도전을 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식별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면, 어떻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시대의 징표를 찾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에는 이근상 신부가 답했다.

이근상 신부는 “교회는 사실 이미 거의 모든 것에 답을 너무 많이 가졌다. 하지만 교회가 모든 문제에 즉각 답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곳일까란 질문도 필요하다”면서 “교회가 공동합의성을 산다는 것은 오히려 그 답을 아직 잘 모른다고 고백하고, 그 고백을 나누는 것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 교회, 소공동체에서도 우리가 아직 답을 잘 모른다고 진실하게 고백할 때 공동합의성, 경청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어 이미영 소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회칙인 '모든 형제들'을 살피는 한 세미나에서 “가톨릭교회는 너무 거룩해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 우리는 올바르고 좋은 것을 가졌다고 울타리를 치는 도성 같은 존재가 아닌가”라는 평가를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공동합의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배척하거나 적대하지 않고 더 큰 가족과 형제애로 살아간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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