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하나다

(마웅 보)

지난 11월 16일은 세계 관용의 날이었다. 이날은 우리가 위대한 비폭력의 사도인 마하트마 간디를 기억하는 날이다. “눈에는 눈으로 복수하면 전 세계가 눈이 멀 것이다”라고 말한 이가 바로 그였다. 국제연합은 그의 생일인 이날을 관용의 날로 선언했다.

올해 이날은 120만 명 가까이 이르는 사람이 코로나19로 죽어가는 눈물들 속에 있었다. 삶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에 곁에 아무도 없이 홀로 외롭게 죽었고, 그 장례는 울음소리나 장례성가도 없이 치러졌다. 그들은 안녕을 말하지도 못하고 떠났다.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눈물 속에 남겨졌다. 올해 관용의 날에 우리는 코로나19 희생자들 가족이 흘리는 한없는 눈물을 존숭하며 고통스럽게 되새긴다. 불관용을 피하라. 우리는 이 점에서 모두 하나다.

코로나19는 아무도 피해 가지 않는다. 초강대국의 지도자들도 전염되었다. 인종과 관련 없이 누구나 죽인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되새겨 준다. 여러모로 이 바이러스는 파멸의 예언자다. 증오, 외국인 혐오, 불관용은 인류 전체에 상처를 줄 것이다. 함께 맞서 인류를 구하라. 다양성 안의 존엄을 찬양하라.

수난받는 이들에 대한 자비는 이 무자비한 바이러스에 맞선 지구적 전쟁에 대한 유일한 백신이다. 우리는 자신의 눈물로 형제자매의 눈물을 볼 때 비로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눈을 들어 눈물을 존숭하라. 눈물에는 아무런 색이 없다. 종교도 없고 인종도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 도전에 처해 모두 하나다.

마스크를 쓰는 아주 간단한 행위도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다른 이를 생각해서 하는 것이다. 타인을 나의 적으로 대하던 시절은 갔다. 우리가 내 형제를, 그가 누구든, 그가 어느 종교에 속하든 간에, 구한다면 나는 나 자신을 구하는 것이다. 내 형제자매 없이는 절대 구원이 없다.

코로나19로 우리는 비탄 속에, 좌절 속에, 하나가 되었다. 각기의 눈물은 나의 눈물이며, 각각의 죽음은 나의 감소다. 나는 내 형제의 지킴이다. 예수는 관용을 설교하고 제자들에게 “너의 적을 위해, 너를 박해하는 이를 위해 기도하라”고 촉구하면서 좋은 모범을 보여 줬다. 그는 심지어 십자가 위에서조차 자신을 고문하던 이들을 용서하는 커다란 용기를 지녔다. 부처님은 사람뿐 아니라 심지어 나무와 모든 생물과도 하나임을 느끼라고 모두에게 촉구했다. 우리는 서로 의존하는 존재며, 깊은 뿌리에서 서로 연결된 존재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취약한 존재임을, 언젠가는 죽을 힘없는 존재임을 더욱 되새긴다. 삶은 짧다. 서로 미워하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쓸모없다. 우리는 요즘 최전선에 선 보건 전문가들의 특출하게 통렬한 증거들을 보면서 커다란 교훈을 배웠다. 격리 센터들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신성한 관대함을 실천하고 있다. 봉사가 이들의 종교다.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의사, 간호사들이 죽어 인간적 동료성, 자비를 위한 순교자가 되었다. 카루나(불교 보살의 모든 중생을 위한 자비)와 메타(자애)는 인류 가족의 두 눈이 되었다. 이들 남녀의 감동적 희생을 보는 우리는 서로서로를 커다란 존엄성으로 대하도록 하자.

마하트마 간디는 위대한 비폭력의 사도였다. (사진 출처 = UCANEWS)

다양성이 존엄성이다. 다양성 안의 일치. 미얀마는 주요 종족만 여덟에 작은 소수민족은 135나 되는 다채로운 나라다. 우리는 다양한 영적 전통에 속하며, 이 모두는 사랑과 관용을 가르친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람들이지, 진저리 나는 단일성을 복사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생명 없는 로봇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즐거움이 있고, 우리의 피부색과 말,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인류는 번뜩이는 아름다움이 넘치는 커다란 그림이 된다.

우리는 불관용의 상처들을 보아 왔다. 20세기만 해도, 인류는 불관용 속에 거의 1억 3500만 명을 죽였다. 두 차례에 걸쳐 세계대전을 치렀다. 불관용의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여전히 상처가 곪아 짓무른 상태다. 그리고 지금 21세기에는 더 문화적(종교적) 이유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인간종으로서 우리 존재는 위협받고 있다. 기후변화로 수백만 명이 죽을 수 있고, 팬데믹 폭발로 인류 문명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일치하지 않으면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우리를 싹 쓸어낼 수 있다. 사랑에 빠지고, 사랑 안에 머묾으로써 인류를 구하라.

사랑은 지고의 덕이다. 사랑은 모든 인간의 신분증명서다. 그리스도교는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이게 가장 커다란 삶의 율법이다. 우리의 적들은 우리에게 최고의 선생이다. 그들을 존경하라. 그들은 우리가 지녔던 편견들을 드러내 주었다.

미얀마는 지금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또 한 번의 선거가 평화롭게 치러졌다. 민주주의는 천천히 자라는 나무다. 불관용의 열기가 뻗치면 이 여린 나무가 탈 수 있고, 우리는 (민주주의 성장 도중에) 증오라는 어두운 구덩이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 지닌 차이를 놓고 싸웠기 때문에 지난 60년을 고생하며 보냈다. 이제 우리가 서로 비슷한 점을 보며 하나로 일치해야 할 때가 왔다. 황금의 땅이라는 (미얀마의) 꿈은 우리가 그간 치렀던 전쟁과 분쟁을 과거의 일로 치고 서로 용서할 때 비로소 이뤄질 수 있다.(역자 주- 미얀마는 거의 60년에 걸친 군부독재와 내전 끝에, 지난 몇 년간 아웅 산 수 치와 군부의 동거 아래 민주화를 향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모두에게 호소한다. 팬데믹으로 일어나는 비극과 눈물들을 직시하라. 그 아무도 피해 가지 않는다.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모두가 피해자다. 그 눈물은 누가 흘리든 같은 눈물이니,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잊어야 한다. 불관용을 절대 관용하지 말라. 우리는 하나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같은 눈물이기에.

(찰스 마웅 보 추기경은 미얀마 양곤 대교구의 대주교이며,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 의장이다. 이 글에 담긴 관점들은 필자의 것이며 <아시아가톨릭뉴스> 편집진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never-tolerate-intolerance-we-are-one-because-our-tears-are-the-same/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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