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급에는 여러 가지 구분법이 있지만 가장 흔하게는 응급(emergency)과 비응급(elective)으로 나눈다. 응급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자원을 즉각 배분해 흔히 말하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어떤 질환이 ‘응급’질환에 속하는지 공부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판단하는 것도 응급 여부다. 응급질환을 놓치면 환자에게는 다음 기회조차 없기에 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도 사실은 응급질환을 잘 치료하는 것이다. 누구나 응급질환을 오진하고 놓친다면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기본이 안 된 병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비응급질환은 상대적으로 자원 배분이 후순위로 밀린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 배분에는 공간, 인력, 시간 모든 것을 포함한다. 비응급질환은 응급질환에 투입한 다음, 여력이 있는 치료 공간, 치료 인력을 배분하는 게 상례다. 따라서 응급질환을 진료하는 병원, 특히 대형 병원이라면 응급진료에 매진하는 게 좋은 병원의 길이다. 응급질환 진료를 잘하려면 응급처치, 응급수술 이후의 진료체계도 중요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환자 진료체계다.

중환자 진료체계는 중환자실을 배경으로 필요에 따라 다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자원 배분을 말한다. 중환자실에는 인공호흡기, 체외막산소요법(ECMO), 투석기 등 생명유지장치가 대기하고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이 장비들을 사용해 환자를 꼼꼼하게 챙길 인력이 필요하다. 인력들은 응급, 중환자 상황에 익숙한 숙련된 이들이어야 한다.

응급진료의 중요성

이처럼 의료공급의 응급 구분은 실제로 큰 병원일수록 자원 배분 순위를 응급과 중환자에 놓는 걸 강제한다. 다시 말하면 의료공급 구분만 잘해도 좋은 병원이 될 수 있고, 좋은 의료체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도리어 대형 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중환자보다 비응급환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응급진료를 하는 의사, 간호사를 최소한으로 고용한다. 중환자실은 전체 병상의 2퍼센트 이상이라는 법정 기준에만 맞추다 보니 응급실은 항상 포화고 중환자실도 대기 병상이 거의 없다. 반면 외래진료에 기반한 각종 검사실, 수술실은 예약 검사와 예약 치료인데도 다수를 점유한다. 

문제는 이런 기형적 자원배분을 문제제기할 때마다 나오는 대안이 응급진료에 보상이 낮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소위 수가가 낮다는 말인데, 실제 응급진료는 의료행위를 만들거나 예약진료처럼 시간을 조절할 수 없어 보상을 웬만큼 올려 줘서는 비응급진료보다 수익이 있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보상과 관련없이 꼭 기본적으로 운영하도록 강제하고, 수익 여부와 상관없이 보상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대형 병원에 응급진료와 중환자 진료의 인력 기준이나 총액 보상을 해준 바 없다. 이국종 교수가 주장해 만든 외상센터 정도가 유일한 케이스다. 이러다 보니 최근 전공의 파업이 지속되어 응급, 중환자 진료에만 대형 병원이 집중하자 병원 수익이 40퍼센트가량 급감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pexels)
(이미지 출처 = pexels)

만성질환과 급성질환 구분

응급과 비응급 구분 외에는 급성과 만성을 나눈다. 급성질환과 만성질환에 따라 치료 계획이 달라진다. 앞서 살펴본 응급질환은 대부분 급성질환에 해당된다. 급성질환은 골절, 감염병, 갑작스런 배탈처럼 급박하게 증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아픔이나 통증이 오래된 것이 아닌 경우다. 따라서 비교적 짧은 치료 계획으로, 수술이나 처치를 통해 원인을 해결하거나 통증 원인을 제거한다. 코로나19로 인한 호흡기 질환도 급성질환의 상례다.

반면 만성질환은 급작스런 원인이 아닌 고혈압, 당뇨 같은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이나 퇴행관절염 같은 지속되는 병들이다. 이들은 일시적으로 약을 먹거나, 수술로 치료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이 질환들은 오랜 기간 관리할 수 있는 의료진이 필요하다. 그리고 퇴행질환으로 입원이 필요하다면 장기 입원할 수 있는 요양병원 등이 요구된다.

즉 만성질환과 급성질환을 구분하는 이유는 의료진과 환자의 관계 때문이다. 급성질환은 전문 진료에 특화된 의사를 짧은 기간 동안 만나면 된다. 하지만 만성질환은 장기간 높은 신뢰 관계를 가지고 만나는 의사와 병원이 필요하다. 때문에 주요 선진국들은 일차 의료체계에서 만성질환을 주로 관리하면서 주치의제를 도입해 환자와 의사를 오랜 기간 연결시켜 준다. 반면 한국처럼 만성질환 관리체계도 급성질환과 동일하게 놔두면, 실제 환자-의사 관계는 단편적이 되고 약물이나 처치도 그때그때 다르게 된다.

문제는 한국에서 만성질환을 외면하고 전문 과목을 표명한 급성질환에 집중하는 동네 의원을 방치한 결과, 국민들은 굳이 동네 의원을 가지 않고 대형 병원을 가는 게 편해졌다는 점이다. 거꾸로 대형 병원들도 만성질환 환자들을 외래진료하면서 앞서 이야기한 응급질환에 대한 가뜩이나 적은 자원조차 축소시키게 된다.

이처럼 원래 정상적인 의료체계라면 응급진료를 우선시하는 병원과 만성질환을 중심에 놓는 동네 의원 그리고 필요에 따른 여러 진료체계와 전문 과목이 덧붙여지는 게 맞다. 그런데 한국은 모든 의료공급이 대체로 급성질환에 맞춰 있고, 응급진료는 최소한으로 제공한다. 그 결과가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다. 이런 문제를 의사 증원으로만 해결할 수도 없고, 기본적인 의학적 구분조차 뒤틀어진 기형적 공급체계에 의사를 늘린다고 개선될 가능성도 낮다. 이런 문제는 근본적인 의료공급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의사 증원보다 중요한 건 의료 개혁이다.

‘만성 응급’

이처럼 한국에서 시장에만 의료를 맡겨 두고 돈벌이에만 의료공급을 맡긴 결과는 사실 급성기 진료와 비응급 진료 쏠림이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응급질환과 만성질환에서 주로 일어나고 있다. 또한 만성질환 대부분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급성질환과 응급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이들은 서로 연결된 문제다. 그래서 감히 말하자면 한국의 의료체계는 ‘만성 응급’ 상태다. 의료체계의 기형이 만성적인 응급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그렇다. 따라서 당장 필요한 해결책은 응급질환과 만성질환에 집중하는 공급구조 개편이다.

그런데 지금 전공의 파업으로 시작되고 있는 의료개혁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주치의 제도, 환자등록제 같은 일차 의료강화 내용이 없다. 또한 대형 병원도 전문의 전문병원이란 말만 있을 뿐 중환자, 응급진료체계의 손실을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나 일정 규모 이상의 응급진료체계를 요구하는 내용이 없다. 그냥 하나마나 한 수가 가산책과 환자들에게 이용 자제를 호소하는 정부 홍보방송만 있다. 이런 수준이라면 의사를 증원한들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런지 싶다. 지금 필요한 의료개혁은 ‘만성 응급상태’의 기형을 극복하는 것이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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