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신도림 성당 사순특강, "대한민국은 기업사회"라고 질타

독재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것이 정치 민주화였다면, 독점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것이 경제 민주화입니다. 경제 민주화의 길은 뜻밖에 쉽고 단순합니다. 먼저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지혜로운 투표가 절차 민주주의를 세웠듯이 현명한 소비가 경제의 민주주의를 가능케 합니다. 삼성이 그토록 말썽이라면 삼성제품을 쓰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그들에게 의사전달을 할 수 있습니다. 삼성이 나쁜 것은 돈을 가지고 사람들의 영혼을 오염시켰기 때문입니다.”

김인국 신부는 이날 강연에서 “존재의 넉넉함과 소유의 넉넉함, 즉 돈과 하느님 사이에서 예수님은 양자택일을 요구했다”고 밝히면서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마태 6, 24)

예수께서 돈에 대해 그토록 강도 높게 경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신부는 “좀처럼 사물을 신격화하거나 인격화하는 법이 없었던 예수님이 유독 돈에 대해서만큼은 그런 지위를 부여한 이유가 돈은 하느님과 능히 대적할 수 있으며 하느님과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적대적 영적 세력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부자들에게 '돈은 곧 존재의 크기'로 읽히고 통하는 시대이지만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주의 기도를 바치듯, 그와같은 태도로 살아갈 때만이 우리는 자유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김 신부는 "인생의 궁극 목적은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김인국 신부는 청주교구 금천동 성당에서 3시간 넘게 걸려 서울에 도착했다면서 파워포인트로 준비한 자료를 보여주며 차분하게 경제제국 삼성과 관련된 내용들을 풀어주었다. 경제민주주의에 대해 말하자면 ‘삼성’을 건너뛸 수 없기 때문이다.

▲ 사진제공/정의구현사제단

기업사회 대한민국, 삼성왕국 대한민국

한국은 옛날에는 반공사회였으나 "지금은 기업사회"라고 말한 김인국 신부는 시장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자율을 누리는 데 머물지 않고, 거꾸로 시장이 사회를 '식민화'한 상태가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빨갱이가 없어야 좋은 세상이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는데, 지금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진짜 좋은 나라"라고 말한다며,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들은 빨갱이 딱지를 무서워 했는데 그 아들, 딸들에게는 해고 통보 문자가 가장 무서운 세상이 됐다”고 현실을 개탄했다.

이어 “일종의 병영국가였던 대한민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매우 빠르게 기업사회로 탈바꿈했다”고 말한 김신부는 “적어도 전두환 노태우 정권시절까지 권력이 문제의 자본가 집단과 철저히 갑을 관계를 유지하였다면, 민주화 이후 그 전세는 역전되었다. 삼성의 경우 검찰과 법원 그리고 국회, 언론, 학계, 관계 등 과거 독재 권력이 수족으로 부리던 하수인들을 고스란히 접수했다”라면서 한국사회에서 대기업의 힘은 그야말로 무소불위라고 진단했다.

2007년 10월의 어느 날,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을 찾아왔다. 그는 삼성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였으며, 그 일부를 경영권 세습 관철을 위해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를 대상으로 한 불법로비에 사용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2007년 11월 5일 제기동 성당 기자회견에서 양심선언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2007년 말, 삼성특검이 시작되었지만 거대 권력의 힘을 입은 삼성은 면죄부를 연이어 받게 된다.

2009년 5월 29일, 문제의 신영철 판사가 가세한 대법원은 이건희 씨가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저가로 발행, 이를 아들 이재용 씨에게 증여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 날은 공교롭게도 "권력은 이미 자본의 손으로 건너갔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거행되던 날이었다. 반면 2009년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는 용산철거민 아홉 명에게 징역 6년 등의 중형을 선고했다.

김인국 신부는 작가 조정래의 장편소설 <허수아비 춤> 서문에서 밝힌 소감을 인용했다.

“정치에만 '민주화'가 필요한 것인가? 아니다. 경제에도 '민주화'가 필요하다. 경제 민주화? 정치 민주화에 비해 낯선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말뜻은 어렵지 않다. 이 땅의 모든 기업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투명경영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을 양심적으로 내고, 그리하여 소비자로서 줄기차게 기업들을 키워 온 우리 모두에게 그 혜택이 고루 퍼지고, 또한 튼튼한 복지사회가 구축되어 우리나라가 진정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 민주화'다.” (조정래, <허수아비 춤>, 문학의 문학, 2010년, 4-5쪽)

▲ 김인국 신부(사진/지금여기 자료사진)

경제 민주주의를 위한 교회의 소명

1987년 봄 대학생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적힌 쪽지가 감옥에서 새어나와 은밀히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전해지고 있었을 때, 이 독재의 만행을 고발할 자가 없어서 읽는 이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소식이 사제단에 들려왔다면서 당시의 상황을 소개했다. 

“누구라도 나서야 했지만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신부들마저 꽁무니를 뺄 순 없었습니다. 신부들은 역사의 소명을 생각하며 5월 17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년 기념미사에서 이를 폭로했습니다. 그 일이 도화선이 되어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드디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것입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김용철 변호사가 사제단을 찾아왔고 박종철 사건에서처럼 이번에도 진실의 쪽지는 이곳저곳을 헤맸는데 검찰은 물론이고 방송사와 주요 일간신문 데스크, 시민단체 그 어디서도 신흥독재자 삼성의 범죄사실을 귀담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손수 꾸민 일과 직간접적으로 가담하거나 목격했던 일들을 낱낱이 자백하고 증언하겠다고 했지만 가당찮다며 손사래 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결국 사제단을 찾아왔다.

“사제단은 깨끗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과시하던 기업이 그토록 무서운 범죄를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고 밝힌 김인국 신부는 “나서야하는 운명이 야속했지만 역사의 소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2007년 삼성에 관한 고백과 증언으로 경제 민주화를 위한 여정이 시작되기를 기도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누구를 위한 사회일까?”라고 반문한 김인국 신부는 “돈으로 매수한 엘리트들을 부려서 노동자들을 손쉽게 착취하고 이에 대한 저항은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다스리는 사회. 과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라고 성찰을 호소했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너의 예지를 포기하지 마라. 네 눈길이 재물을 향해 날아가려 하면 그것은 바로 없어지고 만다. 날개를 달아 독수리처럼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잠언 23, 4-5) 

신도림 성당 사순특강은 4월 15일(금) 저녁 8시에 함세웅 신부의 '역사와 현실을 바꾸는 그리스도인'이란 주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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