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원자력, FTA 등 정치가에 떠넘기는 것은 나태와 무책임

▲ 강우일 주교.

강우일 주교(주교회의 의장, 제주교구장)는 12월 11일자로 '세상을 사랑하는 소공동체'라는 제목으로 2012년 제주교구 사목교서를 발표하고, “교회는 세상의 가장 작은 이들이 겪는 굶주림, 헐벗음, 소외와 병고, 억울함과 슬픔을 함께 감지하고 나누기 위해 세상 한복판에 있어야 하며, 세상의 모든 불의한 제도와 구조, 죄와 악에 도전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연대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우일 주교는 “그리스도인들이 제자로 초대받은 것은 더 선하고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에 동참하는 길을 앞서가며 비추도록 초대받았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교회는 교회 구성원들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구원을 위한 선구자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며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세상이 나아갈 길을 비추는 등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의 정치, 경제, 노동, 복지, 생태, 국제관계 등 모든 분야에 무관심해서는 안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속에 이뤄진 하느님의 뜻을 ‘오늘의 역사’속에서 살아내려 애썼듯이 오늘 우리도 이 나라 역사 속에서 배우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위해 애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우일 주교는 특히 사목교서에서 제주 해군기지 사업과 원자력 발전, 한미 FTA 추진 등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 이후 세계의 여론은 원자력 발전의 안전신화에 종지부를 찍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의 통제와 제어가 불가능한 핵폐기물을 양산하는 원전을 다른 나라에까지 수출하여 국부를 축적하려는 부끄러운 정책이 여전히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신자유주의의 세계 경제 구도로 대기업만 살아남고 중소기업이 몰락하고 국민의 과반수가 비정규직에 몸담으며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곤층이 급증하는 양극화 가운데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문제 삼았다. 이어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인류의 생명과 생존에 직결된 사안이며, 짧은 임기로 정략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몇몇 정치가와 행정당국에 떠넘기는 것은 후손들에 대한 용서받기 어려운 나태와 무책임”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강 주교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회교리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면서, “교회 공동체가 인류와 세계 전체를 향해 열린 우주적 공동체로 운영되고, 구성원들 또한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사도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사목교서 전문]  세상을 사랑하는 공동체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것은 그들만이 선택받을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 인류가 하느님의 구원의 길로 나아가도록 그 길을 비추어 주는 선구자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초대받은 것도 우리가 신자 아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선하고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전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에 동참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앞서가며 비추라고 먼저 초대받았을 뿐입니다.

교회는 교회 구성원들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구원을 위한 선구자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며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세상이 나아갈 길을 비추는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과 유리되어 오로지 의인들만의 모임으로 담을 쌓고 살면 교회 본연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요한 3,16)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가장 작은 사람들이 겪는 굶주림과 헐벗음, 집 없는 설움과 외로움, 소외와 병고, 억울함과 슬픔을 함께 감지하고 나누기 위하여 세상 한복판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이 품고 있는 어둠과 불의에 대해서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인류가 어둠과 불의에서 탈출하여 하느님의 정의로 해방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하느님의 닮은 자로서 그 품위와 복을 누리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게 하는 세상의 모든 불의한 제도와 구조, 죄와 악에 도전하는 것을 교회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여 이 도전과 싸움을 함께 펼쳐 나갈 수 있도록 교회는 연대의 초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의 경치, 경제, 노동, 문화, 국방, 복지, 생태, 국제관계 등 모든 분야에 끊임없이 무관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오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고 선포하는 예언자로 살아가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고 역사 속에서 하느님이 베푸신 은총과 자비에 감사하며 하느님의 뜻을 ‘오늘의 역사’ 속에 살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나라 역사, 제주의 역사 속에서 배우고 오늘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이를 실현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불과 60여 년 전 이 제주 땅에 왜 수많은 우리 부모형제들이 피를 흘려야 했는지 기억을 되살려 내야 합니다. 그 희생과 참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이 비극의 역사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오늘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시는지 깨우쳐야 합니다.

제주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자연경관을 자랑합니다. 제주의 가장 큰 자산은 모두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것들입니다. 제주이 청정한 물, 바위, 오름, 만장굴, 곶자왈, 주상절리, 고사리, 억새, 흑돼지, 구럼비, 연산호, 붉은발 말똥게, 온갖 어패류 등 우리가 만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개발에 대한 무비판적인 욕심 때문에 농약을 쏟아붓고, 나무를 베어내고, 굴삭기로 파헤치고,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며 끊임없이 제주의 자연을 훼손, 파괴하고 멸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 이후 세계의 여론은 원자력 발전의 안전신화에 종지부를 찍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의 통제와 제어가 불가능한 핵폐기물을 양산하는 원전을 다른 나라에까지 수출하여 국부를 축적하려는 부끄러운 정책이 여전히 추진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 경제 구도로 대기업만 살아남고 중소기업이 몰락하고 국민의 과반수가 비정규직에 몸담으며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곤층이 급증하는 양극화 가운데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인류의 생명과 생존에 직결되는 사안이고 우리 모두가 결코 무관심할 수 없는 중대한 일들입니다. 짧은 임기로 정략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며 일하는 몇몇 정치가와 행정당국에만 책임을 떠넘기고 마는 것은 후손들에 대한 우리 모두의 용서받기 어려운 나태와 무책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회교리를 가르치며 모든 신자들이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관심을 갖도록 초대합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교회 공동체는 우리들 안으로 닫힌 폐쇄적 공동체가 아니라 인류와 세계 전체를 향해 열린 우주적 공동체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 속에 육을 취하시고 강생하셨듯이 여러분도 세상 속에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사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1년 대림 첫 주일에,
제주교구 주교 강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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