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의 복음과 세상 이야기]

일본 전후 세대 가톨릭 문학가 엔도 슈사쿠씨가 고희를 맞아 펴낸 소설 <깊은 강>이 한수산 씨의 부인 이성순 여사의 솜씨로 번역되어 1994년 섣달 고려원에서 나왔다. 소설 속에는 주로 이소베, 미츠코, 누마다, 기구치, 오오츠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바보스런 가톨릭 청년 오오츠 이야기가 단연 돋보인다. 아울러 오오츠와 무척 닮은 외국인 가톨릭 청년 가스통이 잠시 스친다.

츠카다의 최후와 가스통에 관한 이야기

우선 기구치, 그의 전우였던 츠카다, 그리고 가스통에 관한 이야기부터 눈여겨보자. 제 2차 세계대전 말엽 일본군이 미얀마에서 퇴각할 때 말라리아와 기아로 무수한 군인들이 미얀마 정글에서 죽었다. 그때 굶주린 츠카다는 인육을 먹고 기운을 차려서 말라리아에 걸려 몸져누운 기구치를 힘들여 구해 냈다. 그 후 츠카다는 동료의 살을 먹은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주정뱅이 폐인이 되어 중환자 병실에서 임종을 맞는다.

츠카다가 입원했을 때 외국어 학교에 근무하는 외국인 가톨릭 청년 가스통이 시간이 있을 때마다 병실에 와서 자원 봉사자로서 환자들을 극진히 간호한다(144~145쪽). 바로 이 외국인 청년에게 이끌려 츠카다는 마치 고해하듯 인육을 먹은 것 때문에 평생 괴로웠던 사실을 고백한다. 가스통은 극한 상황에서 인육을 먹고서라도 목숨을 구한 것은 당연하다면서, 안데스 산중에 아르헨티나 배행기가 떨어졌을 때 산 사람들이 죽은 남자의 살을 먹고 72일 만에 구출되니까 사자의 가족들 조차도 기뻐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155~156쪽). 작가는 가스통이 마지막으로 츠카다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과 츠카다의 최후를 이렇게 그렸다.

▲ <깊은 강>, 엔도 슈사쿠, 고려원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은 가스통의 모습은 못질하다 굽은 못같이 보였다. 그 굽은 못은 있는 힘을 다해서 츠카다의 굽은 마음에 자신을 거듭 얹어 그의 괴로움을 함께 이겨내려는 것만 같았다. 이틀 후 츠카다는 숨을 거두었다. 얼굴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해 보였다. 그러나 누구나 죽은 마지막 얼굴은 평화롭다. ‘마치 자고 있는 것 같아요’ 츠카다 부인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기구치에게는, 그의 편안한 데드 마스크는 가스통이 츠카다의 마음에서 모든 괴로움을 걷어낸 덕분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말하고 보니 그 임종 때 가스통은 없었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간호사들도 몰랐다(157쪽).

아마도 여기 가스통은 가톨릭의 전통적 표현을 빌리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현이요, 동양의 범신론적 표현을 빌리면 예수의 환생일 것이다(303쪽). 그리스도인 독자라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한 다음 홀연히 사라지신 예수 부활 이야기를 절로 연상하게 된다(루카 24, 13~35).

오오츠와 양파 이야기

이제 소설의 주인공 오오츠 이야기로 건너가자. 그는 동경 상지대학 철학과생이다. 동경 상지대학은 예수회에서 설립한 가톨릭계 대학이긴 하지만 가톨릭 학생은 극소수다. 본디 일본인들은 서양 기술은 부지런히 익히지만 그리스도 신앙만은 좀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지대학 철학과 남학생인 오오츠는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특히 여학생들과는 말도 걸지 않는 외톨이로서 대학 성당에 가서 기도하기를 즐겼다. 불문과 여학생 미츠코는 장난삼아 오오츠의 신앙을 시험하고 싶은 마음에서, 짓궂게도 그를 유혹하여 성당에 다니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고선, 그를 차버렸다(72~73쪽).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오츠는 결국 예수회 신학생이 되어, 프랑스 리옹으로 유학을 간다. 미츠코는 프랑스 파리로 신혼여행을 떠난 기회에 일부러 리옹에 까지 내려가서 오오츠를 찾아내어 그가 예수회원이 된 까닭을 꼬치꼬치 캐어묻자 오오츠는 무척 망설이면서, 어떻게 자신이 부르심을 받았는지 더듬더듬 이렇게 실토한다(94~97쪽).

“죄송합니다. 그러나 정말입니다. 난 들었습니다. 나루세(미츠코) 씨에게 버림을 받고 형편이 없어져서 ··· 갈 곳도 없고 어째야 좋을지 몰라서 ··· 방법은 없고 그래서 그 구루텔 하임(예수회 성당)에 들어가 기도하고 있을 때, 난 들었습니다.”
“들었다 ··· ”
“뭘?”
“ ‘오렴’ 하는 목소리를. ‘이리 오렴. 나도 너와 같이 버림받았다. 그러나 나만은 결코 너를 버리지 않는다’ 하는 목소리를.”
“누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그 소리는 나에게 ‘오렴’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 ‘가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오오츠 씨가 신학생이 된 게 ··· 내 덕이네요.”
...(중략) ...
“난 그 이후로 생각했습니다. 신은 마술사와 같아 무엇이던 변화시키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이나 죄까지도 그렇습니다. 마술 상자 안에 더러운 참새를 넣고 뚜껑을 닫은 다음 신호와 함께 뚜껑을 열게 되지요. 상자 속의 참새는 새하얀 비둘기로 변해서 날아오릅니다.”
“당신이 그 더러운 참새?”
“뭐, 비참하긴 해도 내가··· 그런 셈입니다. 나루세 씨에게 버림받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런 방법으로 살지는 않았겠죠.”
...(중략) ...
“많이 변한 것 같아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변한 것이 아니고 마술사인 신이 변하게 한 것이지요.”
“이봐요, 그 신이란 소리 그만둘 수 없어? ···”
“죄송합니다. 그 단어가 싫다면 다른 이름으로 바꿔도 좋습니다. 토마토라도 좋고 양파라도 좋습니다. ··· 양파는 움직이는 사랑의 실체입니다.”
...(중략) ...
“뭐, 양파의 힘이라기보다 당신 감정이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니겠어?”
“아니오, 그렇지 않아요. 그건 내 의지를 넘어선 것으로, 양파가 움직여 주었습니다.”

오오츠는 범신론적 신관 때문에(180쪽), 또는 요즘 말로 종교다원주의적 신관 때문에(290쪽) 리옹 예수회 윗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려 사제 서품을 받지 못하고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반 수도원에서 조용히 지낼 때, 이혼녀가 된 미츠코에게 다음과 같은 장문의 편지를 써보냈는데, 그 가운데서 예수를 양파라고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188~189쪽).

“나루세(미츠코) 씨는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라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도망가고 싶겠지요. 가능하면 예수라는 이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사랑이라는 말이 낡아빠진 느낌이 든다면 ‘생명의 따스함’, 이렇게 불러 주세요. 그것도 싫으면 양파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 나는 양파의 존재를 유대교도들에게서도 이슬람교도들에게서도 느낍니다. 양파는 어디에도 있는 것입니다.”

오오츠는 어찌어찌해서 사제 서품을 받기는 했지만 정상적으로 본당 사목이나 학문 연구에 종사하지 않고 뜻밖에도 인도 갠지스 강변 바라나시로 가서 골목길 여기저기에 쓰러진 천민들을 운반하는 일을 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은 강가의 수용소로 나르고, 이미 숨을 거둔 사람들은 화장터로 옮겼다. 마침 미츠코는 인도 여행 관광단에 끼어 바라나시에 갔다가 우연히 오오츠 신부와 재회하게 된다. 그때 오오츠는 온통 양파 이야기만 늘어놓는다(280~282쪽).

“양파가 이 마을에 들르셨다면, 그 분이야말로 길에 쓰러져 있는 이들을 등에 업고 화장터로 가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 생전에 십자가를 등에 지고 옮기셨던 것과 같이.”
“양파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 양파의 사랑과 그 의미를, 살아남아 있던 제자들은 그제야 겨우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양파를 버리고 도망가서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배반당하고도 양파는 제자들을 끊임없이 사랑했습니다. 때문에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참회하는 마음속에는 양파의 사랑이 각인되어서 양파는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양파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하여 멀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 후 양파는 그들 마음속에 계속 살아 계셨습니다. 양파는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속에 다시 태어나신 것입니다.”
“양파는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저의 가슴 속에도 살아 계십니다.”

오오츠는 기력을 잃고 쓰러진 불가촉천민들을 갠지스 강으로 업어 나르면서 이렇게 기도했다(294쪽). “당신은 등에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언덕 골고다를 오르셨습니다. 저는 지금 감히 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당신은 등에 여러 사람의 슬픔을 짊어지고 죽음의 언덕 골고다까지 오르셨습니다. 저는 지금 감히 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갠지스 강 화장터에선 절대로 사진을 찍어선 안 된다는 불문율을 무시하고 사진을 찍은 몰지각한 일본 청년 미조를 보호하려다, 그만 오오츠 신부는 힌두교도들에게 짓밟혀 목이 부러졌다(320쪽). 마침 현장을 목격한 미츠코는 오오츠를 대학병원으로 이송케 했다. 그런데 불가촉 천민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는 이들이 또 있었으니, 곧 마더 데레사 수도원 수녀들이었다. 미츠코는 불가사의한 이 임종 봉사자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양파는 옛날 옛적에 죽었지만 그는 다른 인간 안에 환생했다”(327쪽). 일본인 관광객들이 귀국차 공항으로 떠날 무렵, 대학병원에 입원한 오오츠가 매우 위독하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328쪽). 이로써 <깊은 강>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얼핏 보면 오오츠는 바보처럼 살다가 허무하게 죽었다. 그러나 실은 그리스도교의 성서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예수를 본받다가 예수처럼 죽었다(294쪽). 불교의 윤회설적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환생한 예수다(327쪽). 이 소설을 읽어 가노라면 베르나노스의 소설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에 나오는 저 청순하고 가련하고 바보스러운 촌놈 신부를 절로 떠올리게 된다.

엔도 슈사쿠와 구상

▲ 엔도 슈사쿠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일본 가톨릭 성직자들이나 신학자들 가운데 소설가 엔도 슈사쿠만큼 신앙을 두고 고투하는 이는 드문 것 같다. 우리나라 가톨릭 경우에도 사정은 매한가지여서 시인 구상만큼 신앙을 두고 깊이 성찰하는 이는 만나기 어렵다. 두 분 다 쥘리앙 그린, 폴 클로텔, 조르주 베르나노스, 프랑수아 모리악 등 프랑스 가톨릭 문학에 심취했다. 두 분 다 예수님에 대한 책을 썼으니, 엔도 슈사쿠는 <예수의 생애>를, 구상은 <나자렛 예수>를 펴냈다. 두 분 다 여러 차례 폐 수술을 받았고, 각기 제 나라에서 예술원 회원으로 뽑혔다. 요즘엔 두 분 다 병마에 시달린다. 두 분은 자기 지우이기도 하려니와 서로 몹시 닮았다. 굳이 한 가지 차이점을 든다면 엔도 슈사쿠는 소설가로서 무척 여행을 즐겨서 소설 이외에 많은 기행문을 남긴 데 비해서, 구상은 시인으로서 열심히 인간 내면을 관조하여 주옥같은 시편들을 남겼다는 것이다.

끝으로 종교에 관심이 많은 한 대학생의 독후감을 참고 삼아 덧붙인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슬픈 내용이 아니었는데도 목이 메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우선은 그토록 분명한 뜻을 소설이라는 알기 쉬운 형태를 통해 나타낸 작가에 대한 찬탄도 있었지만 내가 평소에 그리던 신의 모습이 이 속에 담겨져 있었다. 니체가 말했듯이 현대 사회 속에서 신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신을 버리고 이용할 줄 아는 인간들 속에서 신은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오히려 현대인들일수록 가슴 속에는 더 깊이 신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그리고 신은 우리 인간의 실수를 깨우쳐 주기 위해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 곁에 머물고 있으리란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정양모 신부/ 193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에서 유학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70년부터 2002년까지 광주 가톨릭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지냈다. 2005년부터는 다석학회 회장을 맡아 다석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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