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동성애자 육우당 10주기 추모기도회 열려

▲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가 축복기도를 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 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 죽은 뒤엔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은 동성애자다’라고요.” (육우당 유서 중)

10년 전,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교회와 사회에 절망하며 19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故) 육우당의 10주기 추모기도회가 열렸다. 25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추모기도회는 동성애자인권연대,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가 공동 주관했으며, 천주교 사제와 개신교 목사를 비롯한 200여 명의 추모객이 함께했다.

이날 기도회는 육우당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던 성소수자들을 기억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곽이경 활동가는 “이곳에서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본다”면서 지병과 자살로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과의 추억을 전했다. 곽이경 활동가는 “우리는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 친구들을 보냈건만 단 한 번도 성소수자의 얼굴로,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이름으로, 우리의 언어로 당신의 장례를 치러보지 못했다”며 “우리의 삶과 죽음이 진정 자유롭기를, 못 다한 삶을 더 이상 보지 않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곽이경 활동가는 추모의 글을 읽어 내려가다 이내 목이 메었고, 장내는 눈물바다가 됐다. 추모사의 끝에서 그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나의 슬픔을 모두의 슬픔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기도회 참가자들이 고(故) 육우당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메모를 남겼다. ⓒ문양효숙 기자

기도회에 참여한 천주교 사제는 강론에서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하셨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귀한 존재”라며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론이 끝난 뒤 추모객들은 육우당을 위한 위령기도를 올렸다.

기도회는 추모공연과 육우당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장 발표로 이어졌다. 이들은 “예수님은 언제나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 서 계셨다. 차별받던 사람들의 곁에 가기를 주저하지 않으셨고 그들에 대한 편견을 씻어주고자 노력하셨다”면서 “아직도 성경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폭력과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 우리는 폭력과 차별을 미화하는 데에 예수님의 이름을 쓰는 것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도회가 끝난 뒤 천주교 신자라고 밝힌 한 추모객은 “그동안 성소수자들에 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기도회를 함께하는 동안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었다”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도 이분들을 감싸기는커녕 배척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도회를 함께 준비한 천주교인권위 강은주 활동가는 “성적 지향은 물론 어떤 이유로든 차별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더군다나 육우당은 천주교 신자였다. 지금은 교회가 성소수자들을 적극적으로 위로하지는 않지만, 이들을 옹호하는 많은 신자들이 있으니 더딜지라도 서로 상생하는 방향으로 변화해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최근 군형법으로 성소수자를 처벌하려는 시도와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로 차별금지법이 좌절된 사건을 언급하며 “성소수자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공격받고 상처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기도회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육우당 10주기 추모주간 행사는 27일까지 계속된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시조 시인이 꿈이었던 육우당의 뜻을 기념해 제1회 육우당 문학상을 공모하는 한편,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인권조례 무력화 시도 중단과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인권 보장을 촉구했다. 추모주간 마지막 날인 27일에는 서울 대한문 앞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거리캠페인과 추모문화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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