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C 역사 아로새겨진 강화도에서 열린 인천교구 노동자주일 행사

▲ 1960년대 섬유공업 노동자였던 김명순 씨(오른쪽)가 굴뚝만 남은 강화도 심도직물 공장 터에서 당시의 노동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 씨는 “우리의 노동이 얼마나 값지고 보람된 것인가 말하고 싶다”면서 “여러분이 노동자들의 생활을 좀 더 좋게 만들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한 기자

“여기서 저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28일 오전, 인천교구 노동자주일 행사가 시작된 강화도 심도직물 공장 터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명순(일루미나타) 씨가 말했다. 그는 “우리의 노동이 얼마나 값지고 보람된 것인가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1967~1968년에 강화도에서 일어난 ‘심도직물 사건’과 관련된 기업 중 하나인 삼호직물의 노동자였다. 당시 김 씨의 나이는 18세에 불과했다. 그는 강화도 지역 섬유공업 노동자들이 “공장 걸레”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하루 12시간 노동, 심지어 일요일에는 24시간 노동을 할 만큼 비인간적 처우를 감수하며 일했다고 전했다.

“아직도 제 친구들은 과거에 그런 일을 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들의 노동의 결과로 다른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할 수 있었고, 편리한 생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값진 일을 하고 있는지 꼭 알아주세요. 저희보다 많이 배웠고 잘 아시는 여러분이, 노동자들의 생활을 좀 더 좋게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 28일 인천교구 노동자주일 행사에 참석한 이들이 강화나들길 걷기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한 기자

이제는 굴뚝만 남은 심도직물 터, 약 45년 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시 강화도 섬유공업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은 열악했다.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노동을 했고 5~6년차 숙련공이 월급을 6천원 밖에 받지 못했으며, 식사를 제때 못해 60% 이상의 노동자가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 소녀 노동자들의 참상을 목격한 강화본당 주임 전 미카엘 신부(메리놀외방선교회, 본명 마이클 브랜스필드, 1929~1989)의 지원을 받아 1965년 강화도에도 가톨릭노동청년회(약칭 JOC)가 만들어졌다.

1967년 5월 심도직물 노동자들이 JOC 회원 중심으로 전국섬유노조 심도분회를 결성하자, 이듬해 1월에 회사가 박부양 분회장 등 2명을 해고하고 작업을 중단하며 갈등이 심해졌다. 1월 7일 해고 경위를 듣겠다며 노동자 500여 명이 강화성당에 모이자 경찰이 출동해 신자 5명을 연행했고, 8일 강화도 소재 21개 직물회사는 “JOC 회원을 고용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이에 1월 28일 JOC 총재 김수환 주교 등은 ‘한국천주교주교단에 올리는 호소문’을 발표했고, 주교단은 2월 9일자로 ‘사회정의와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제목의 공동 성명을 내놓았다. 결국 심도직물이 속한 강화 직물업자협회는 2월 16일자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 게재한 ‘해명서’를 통해 “JOC 회원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결의 철회와 해고자 복직을 약속했다.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윤석 신부는 “이 심도직물 터는 노동사목의 시초라고 할 수 있으며, 인천교구 노동사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리”라고 평가했다. 이어 “1960~1970년대에 이곳에서 일했던 분들이 경험한 열악한 노동환경을 귀로, 마음으로 듣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내년에는 심도직물 관련 기념사업도 준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강한 기자

“모두가 잘 살아야 행복하지,
혼자 잘 살면 마음 놓고 돌아다니지도 못해”

2002년 이래 12번째 열린 인천교구 노동자주일 행사에는 노동사목 관계자와 후원자, 가족 등 200여 명이 참여했다. 또한 이날은 한국 교회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목적인 관심을 기울이자는 뜻에서 정한 ‘이민의 날’이기도 해 70여 명의 이주민들도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심도직물 터를 출발해 연미정까지 이어지는 강화나들길 1코스 일부를 걷고, 오후에는 갑곶순교성지 지하성당에서 기념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주례한 최기산 주교(인천교구장)는 본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신 것처럼 저희도 가난한 이들, 특히 철탑에서, 천막에서, 거리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애쓰고 있는 이들과 위로하고 연대하며 세상을 새롭게 하는 성령의 힘을 드러내게 하소서” 하고 기도했다. 미사에 참여한 이주민들을 위해 제2독서는 영어로 봉독했고, 이민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네 번째 보편지향기도 역시 영어로 바쳤다.

최 주교는 강론에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전세계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며, 또 우리는 비정규직과 실직자,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면서 “우리가 얼마나 감사하고 절약하며, 다른 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면서 사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잘 살아야 행복하지, 어느 집단만 잘 살고 사회 분위기가 어지러우면 마음 놓고 돌아다니지도 못한다”면서 “가진 것을 나누고 모두가 동반성장해야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노동자들이 대우받으며 모두가 함께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나라가 되도록 하느님께서 축복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자”고 청했다.

▲ 인천교구 노동자주일 미사를 주례한 최기산 주교는 “노동자들이 대우받으며 모두가 함께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나라가 되도록 하느님께서 축복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자”고 청했다. ⓒ강한 기자

▲ 인천교구 노동자주일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이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다. ⓒ강한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