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해효 몽당연필 대표

배우 권해효(요셉). 그는 지난 3월 새롭게 출발한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이하 몽당연필)의 대표를 맡았다. “조선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하는 권해효 대표에게 그와 조선학교, 그리고 몽당연필의 이야기를 들었다.

권해효 대표와 조선학교의 인연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한국 사회에서 재일 조선학교와 관련된 활동이 1990년대부터 진행되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교류가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권 대표는 2002년부터 조선학교에 대해 알게 됐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지원 활동에 동참하면서, 2007년 개봉한 영화 <우리 학교>의 김명준 감독과도 인연을 맺었다. 결정적으로 2011년 3월에 일어난 대지진은 그간 흩어져 있던 조선학교와 교류하는 단체들을 모았고, 권해효 대표는 가수 이지상, 안치환 씨와 함께 ‘몽당연필’ 공동대표를 맡았다.

“통일과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지진 피해라는 탈정치적 상황이 벌어졌지요. 금전적인 도움이 일단 절박했지만, 도움을 넘어 65년간 일본 사회에서 우리말과 문화를 지켜온 조선학교의 존재와 그들의 고통에 대해 알림으로써 또다른 응원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 권해효 ‘몽당연필’ 대표. 그는 조선학교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그저 만나는 그 순간에 이뤄진다고 했다. 어떤 대단한 가치 판단이나 명분이 아닌, 조선학교의 존재 자체가 가치이고 기적이라고. ⓒ정현진 기자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의 대표로
지난 2년 활동으로 맛본 기쁨과 행복이 나를 이끈다

지진이 일어난 다음 주부터 공연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2년간 꼬박 19번의 공연을 이어갔다. 서울의 소극장 공연이 12번, 각 지역 순회공연과 일본 도쿄 공연이 있기까지, 회원들은 물론,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기업체를 통해 목돈을 지원받을 수도 있었지만, 모금액 3억여 원은 그렇게 십시일반으로 마련됐다.

사실 몽당연필은 지난해 6월로 활동을 정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0여 년간 어렵게 이어졌던 소통, 그 기반으로 마련된 1년의 결실을 접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권해효 대표는 “굳이 자평하자면, 국내에는 물론, 일본 동포 사회에서도 몽당연필이 조선학교 연대체의 대표성을 갖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새로운 운동이라는 평가까지 받게 된 마당에 그 동력을 포기한다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고 말했다.

“고민을 하면서 뭔가 더 해봐야겠다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책임감보다는 기쁨 때문이었죠. 만 14개월간 공연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행복이고 기쁨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동포들을 만나고, 한국에서도 뜻을 공유하는 이들과 만났던 행복한 기억이 우리를 붙잡았어요.”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다시 시작한다고 했지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 본격적으로 조선학교를 알리는 계기로 일본 대지진이 있었기 때문에 이슈화할 수 있었지만,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쟁점화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65년간의 지속적인 차별, 고교 무상화 대상 제외, 보조금 중단으로 조선학교는 유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전히 본질을 가리고 있는 이념의 문제, 남북 갈등과 동북아 정세 등은 운영진조차 스스로 검열하도록 만들 정도다.

지난 여름, 몽당연필은 ‘임의단체’에서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로 탈바꿈했고, 새로운 출발을 맞았다. 올해 3월 총회를 열고, 정관과 사업계획도 마련했다. 사무실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전쟁과여성평화박물관에서 공간을 얻었다. 권해효 씨는 재일동포의 출발이 침략과 전쟁이었고,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소외된다는 점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과 닮아있다면서, 평화박물관을 공유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조선학교는 우리 역사와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2007년부터 시작해 2010년에 완공된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있습니다. 남한 사회와 일본 시민사회가 함께 모금운동을 벌여 만들었죠. 아주 좋은 선례이고 그런 사례를 복원해야 합니다. 이미 일본에서도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제외를 걱정하고 반대하는 일본 시민사회단체 350여 개가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이며 책임을 지닌 한국 사회는 어떤가요? 그나마 그들의 한국 파트너로서 몽당연필이 있어 덜 부끄러웠어요.”

조선학교가 갖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권 대표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 가치라는 게 말입니다. 조선학교를 개인적으로 접해본 사람이라면 특별한 가치로 환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요. 단순한 감성이 아니라, 그냥 뭉클해지는 그 순간입니다. 이역만리 외국 땅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우리말을 배우고 한국에서 어느 누구도 추지 않는 우리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그 순간이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그 모습 안에는 우리 사회가 한 번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해방과 전쟁 이후의 비극적 근현대사가 녹아 있습니다.”

▲ 몽당연필이 활동을 막 시작한 2011년 4월, 서울 은빛초등학교 학생들은 조선학교 후원을 위해 스스로 바자회를 기획했고, 수익금 100여만 원을 전달했다. 권해효 대표는 이날을 몽당연필의 공동대표로서 첫 행사에 나선 날로 기억했다. ⓒ정현진 기자

권해효 대표는 존재 그 자체 외에 어떤 근사한 명분이나 가치가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항변하고 있었다. 그는 조선학교를 일단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권 대표는 “우리가 근현대사를 제대로 몰라 놓쳤던 것들, 이데올로기로 인한 좌절과 고민, 2013년 오늘날 우리에게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있는가에 대한 성찰, 그 어린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이 사회에 대해 질문하는 것, 그 자체가 조선학교의 가치”라고 부연 설명했다.

“동북아 평화시대를 말하지만, 우리의 분단이 우리 뜻이 아니었듯이 우리의 평화 역시 우리 뜻만으로는 되지 않을 겁니다. 북을 조국으로, 남을 고향이라고 부르면서, 일본에서 나고 자란 조선학교 아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은 특별합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남과 북, 그리고 동북아 지역 안에서도 상당히 좋은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또 다분히 파편화된 대한민국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그들은 우리가 놓친 것들을 확인시켜 줍니다. 조선학교가 자기 자신과 그들의 부모, 차별받는 동포사회 속에서 구심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사는 아이들의 표정과 태도는 상당히 다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만날 수 없는, (민족적) 자부심이나 당당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어요. 그 모든 것을 지키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자 가치입니다.”

권해효 대표는 “그렇다고 재일동포들이 일본 사회에서 섬처럼 떨어져 배타적으로 사는 이들은 아니다”라면서, 재일동포와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오해를 경계했다. 그들은 엄연히 일본 사회에 적응하며 살고 있으며, 다만 조선학교의 존재를 통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36년 강제병탄, 끌려온 삶에 대한 배상과 사죄 문제, 그리고 완전한 독립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물음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해하고 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는 진짜 독립했을까? 우리의 역사를 스스로 써왔을까?” 하고 물었다. 또 권 대표는 “조선학교 구성원의 50% 이상이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법적 · 도의적 책임을 갖고 이 물음에 응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생각하게 되는 ‘부끄러움’
이 일을 하지 않고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권해효 대표는 유독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부끄러움이란 상대적인 감정이기도 해서 지치게 만들 법도 한데, 부끄러움이 어떻게 그의 동력이 되는지 물었다.

권 대표는 부끄러움에 대해 “단지 되물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일을 함께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이것 거절하고도 부끄럽지 않겠어?” 하고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몽당연필 대표직이 그랬다. 조선학교에 대해 알면서도 모르는 척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모르면 거절하기 쉽다. 하지만 알면 그럴 수 없다”며 “가장 편한 삶은 생각 없는 삶이다. 생각하는 순간 복잡해지니까”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면서 “하나는 제대로 생각하고 있는가, 또 하나는 외면하면서 얻는 편안함이 진짜 즐거울 것인가 하는 성찰”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그는 연기자라는 고유한 정체성 외에도 많은 직함을 가지고 있다. 호주제 폐지 운동에 참여했고, 북녘 어린이 영양 빵 사업본부 홍보대사, 한국여성단체연합회 홍보대사, 희망서울 홍보대사 등. 심지어 마라톤대회 홍보대사도 맡고 있으며, 여러 곳에서 재능기부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권 대표는 요즘 들어 부쩍 거절하지 않는 삶이 반드시 옳은 삶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면서 웃었다. 보기에 조마조마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연기자의 삶을 가장 우선시한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다만 요즘은 뭔가 한 가지에 집중하면 모든 것이 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인터뷰를 진행한 당일, 몽당연필 운영진 회의가 열렸다. 자체 공간 마련부터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가 분주하다. ⓒ정현진 기자

앞으로 이어질 몽당연필 활동에 대해서는 처음에 철저히 대중공연 중심이었다면, 새로운 출발을 맞아 이제부터는 회원들을 중심으로 보다 깊이 있고 친밀한 만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공연을 위해 애썼던 문화예술인들과 회원들을 챙기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것이라면서. 새로 만드는 문화 프로그램은 공연, 강좌, 영화 감상 등 소박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격월로 이어갈 계획이다. 그 사이에는 회원들이 스스로 꾸미는 ‘회원의 날’도 운영한다.

권 대표는 총회 때 발기인단을 만들었지만 아직 100명을 넘지 않는다며 “회원 확대도 중요하지만 가입서만 내미는 것이 아니라 조선학교의 역사와 우리 활동의 당위성을 알리고, 독자적으로 서기 위한 준비를 먼저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끝으로 25일에 열릴 첫 ‘문화살롱’에 초대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5월의 좋은 봄날, 작고 예쁜 파티가 열립니다. 그동안 몰랐던 조선학교 이야기와 음악, 좋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오셔서 따뜻한 봄날을 만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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