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인가

(윌리엄 그림)

코로나19에 대한 일본의 무능한 대응을 해외 언론들이 보도하자, 일본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친구들이 내게 묻는다. 말하자면, 일본은 효율성의 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인구 1억 2600만 명 가운데 백신을 맞은 사람이 4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부유한 나라들 가운데 접종률이 제일 낮다.

일본 정부 계획에 따르면 백신을 가장 먼저 맞기로 한 집단은 의료진 490만 명이었고, 이들은 지난 2월 17일 재의 수요일부터 백신을 맞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사순시기와 부활절을 지냈지만 아직도 이들 의료진의 60여 퍼센트가 백신 접종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대부분 나라들은 1차 대상인 의료진 전부가 백신 주사를 맞는 데 2-3주면 될 것이다.

65살 이상 주민은 4월 12일부터 백신을 맞기 시작했는데, 아직 200만회 분도 채우지 못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하루 접종 횟수를 현재의 3배인 100만 회로 늘리자고 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한 언론은 현재 약 5200만 회분의 백신이 저장돼 있지만 이 백신을 나눠 주기 시작할 시스템이 전무하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를 접하고, 한 정부 부서 대변인은 화를 내며 그 보도는 거짓이라고 부인했다. 그는 현재 보관된 백신은 2800만 회뿐이라고 설명하고 국민에게 비판을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사람들은 일본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묻는다. .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의원내각제를 갖춘 입헌군주국이다. 이 표현은 일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을 빠트리고 있는데, 바로 관료집단이다.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 ‘이키루’(1952)는 세계 영화의 고전 가운데 하나다. 제목인 “이키루”(生きる)는 대개 “삶”으로 번역되지만 “산다” 또는 “살 것이다”는 뜻도 있다. 와타나베 간지라는 한 공무원의 이야기다. 그는 관료제의 전형적 고질인 지루한 잡일을 하는 일본의 전형적 공무원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관료제를 유지하는 존재다. (역자 주- 그는 하루 종일 서류에 도장만 찍는다. 서류에 도장을 찍어도 진척되는 일은 없으며, 다만 무언가 했다는 증명을 위해 서류에 도장이 찍혀야 한다.)

결국, 그는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에 마주해 그간 자기가 해 오던 일이 얼마나 의미가 없던가를 깨닫고 관료제도가 실제로 대중에 봉사하도록 마지막 싸움을 벌인다. 그는 성공하고, 이에 동료들은 놀라지만 그것뿐이었다. 그가 죽은 뒤, 모든 것은 이전으로 돌아간다. 

유명한 영화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 ‘이키루’(1952)는 와타나베 간지라는 한 공무원의 이야기다. 그는 관료제의 전형적 고질인 지루한 잡일을 하는 일본의 전형적인 한 공무원인데,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 관료제를 유지하는 역할이다. (사진 출처 = akirakurosawa.info)

관료주의는 창조적 혁신의 적이다. 무엇보다도, (관료제에서) 승진이나 상은 그 제도를 알고, 유지하고 “돌아가게” 해야 따라온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은 관료들이 그에 관해 숙달되지 않은 그 무엇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변화를 막거나 지연시키면서 훼방 놓는다.

대체로 관료들의 문제는 (그들의) 적극 반대가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할 상상력이 없다는 것이 더 크다. 규칙과 관례를 따르는 것, 심지어 전례 없는 새로운 상황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 이것이 관료들의 사고방식에 가장 쾌적한 처리다.

보통 때라면 이것이 잘 작동할 수 있다. 사회가 원활히 움직인다면, 관료제의 바퀴에 기름을 칠하는 것이 그런 원활한 작동에 실제 도움이 된다. 일본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무능, 무지하고 심지어 부패함에도 일본이 그런대로 잘 작동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일본에는 똑똑하고 헌신적이며 정직한 공무원들이 있다.

하지만, 비상 시기와 상황에서는, 관료주의는 재난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은 당연히 비상 상황이다.

외국에서 백신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일본 관료들의 반응은 해외 의약품을 (일본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하는 통상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해외에서는 그 백신을 맞은 사람이 수백만이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절차를 따르면 일본인은 내년인 2022년 여름에야 백신을 맞게 된다. 그러자 항의가 빗발쳤고, 정부는 그 절차를 6주로 줄이고 200여 명에게 백신을 테스트했다. 달리 말하자면, 관료들은 약간 체면을 세우기 위해 필요없는 “테스트”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 승인된 백신은 단 한 종류뿐이었고, 다른 백신들은 더 긴 승인절차를 밟았다. 그나마 원래의 절차보다는 빨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유럽에서 일본으로 보내기로 했던 백신들은 일본의 승인을 기다리다가, 당장 급한 유럽 현지에서 쓰였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코로나19 환자가 얼마나 많이 더 나왔고, 얼마나 더 많이 죽었는가?

백신을 공급하고 관련 설비를 갖추며 인력을 배치할 시스템이 이제야 겨우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빙하가 움직이는 속도만큼이나 느리며 수많은 오류로 얼룩지고 있다. 비상 상황에 맞지 않는 움직임임이 분명하다.

또 다른 지연 요인은 백신 주사는 오직 의사나, 의사의 감독을 받는 간호사만 놓을 수 있다는 규정이다. 결국에는 치과의사들도 특별 훈련을 받은 뒤에 주사를 놓을 수 있다는 허가가 나기는 했지만, 치과 치료를 받아 본 사람이라면 치과의사들이 이미 주사를 놓을 줄 안다는 것을 안다. 지금은 약사들도 주사를 놓을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나는 주사 놓는 법을 배운 적이 있다. 그때, 한 간호사가 내게 귤과 주사기를 주고 연습을 시킨 뒤 환자들에게 주사를 놓도록 했다. 일본에는 귤이 많으므로, 주사 놓는 사람 수를 많이 늘리는 데 전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일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고 묻는 친구들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공무원들이 자기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을, 그러라고 월급을 받는 일을, 관료적으로 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친구들 가운데 일부는 관료들이 자신들의 통제권을 위협하는 모든 변화를 막고 관례에 의지함으로써 절실한 요구에 아무런 상상력도 없이 대응하는 기관들을 무능하고 어리석은, 때로는 부패하기까지 한 정치인들이 장을 맡고 있는 또 다른 체제에 익숙한 이들도 있다.

일본의 총리와 로마의 주교는 서로 같은 문제를 많이 안고 있어 보인다.

(윌리엄 그림은 도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이자 사제이며, <아시아가톨릭뉴스>의 발행인이다. 이 글에 담긴 의견은 필자의 것이며 <아시아가톨릭뉴스> 공식 편집진의 입장과 다를 수 있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people-ask-what-is-wrong-with-japan/92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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